열혈여아 1
황미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전에, 황미나 대가의 만화 '레드문'이 18권으로 완결이 되었을 때, 국내 순정만화 중에서는 최장편이라는 기록을 새웠다며 대가의 화실에서는 파티를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18권이나 되는 분량을, 그것도 순정만화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만화계의 토양이 척박한 우리나라에서 순정만화는 살아남기 힘든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18권의 대작을 뛰어넘는 권수의 순정만화가 나타났다. 비록, 내용과 노력은 대작에 비할바가 전혀 못되지만, 권수만큼은 열권을 우습게 아는 만화들. 대표적인 작가가 황미리 이고 이 황미리의 최장편이 바로 열혈여아다. 제목에 열혈이란 말이 들어갔다고 해서 이것을 절대 무협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저, 싸움을 즐기는 여자아이라는 단순한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황미리 만화에서 여주인공이 싸움을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사랑SOS란 만화에서의 여주인공은 일본의 학원 무림계를 평정한 여제였다.)

만화는 몇개의 포인트에 맞춰 돌아간다. 첫째는, 혼이 바뀐다는 설정. 두번째는 여주인공의 변치않는 단숨함. 셋째는 잘나가는 남자주인공들이 여자주인공에게 목을 메어 처절하게 변한다는 설정. 대단히 진부하면서도 순정에서는 빼놓을 수가 없는 고전적인 설정아래, 24권이나 되는 만화를 그려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한 것이고, 또 어떻게 보면 뻔한 스토리로 독자를 괴롭히는 일이다.

열혈여아의 경우는 이 두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 이 만화는 처음에 혼이 바뀌었던 부분과 또 다시 혼이 바뀌면서 과거의 일을 잊는 부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걸 다 알고 일이 생겨나는 부분인데, 두번째 단락까지는 내용이 지루하지 않았고 나름의 재미도 있었다. '황미리표 만화는 유치함의 극치이다'라는 말을 어느정도 깰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작가가 공을 들였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세번째 단락이었다. 처음에 만화를 읽으려 했을 때 주변에서 '끝이 좀 이상해'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 스스로가 매니악한 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말은 간단히 무시했다. 사실, 남들이 말했던 만큼 이상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좀 얼토당토 않고, 뭔가 좀 대중적이지 못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독자인 나로서는 느낄 수 없는 여주인공의 매력에, 잘난 남자캐릭터들이 너무 깊이 빠져버리면서 목숨을 내놓는 혈기를 불사지르게 된 것이다.

만화 초반에 혼이 바뀌는 부분부터 저승사자 '모야'란 캐릭터를 등장시켜 나름의 복선을 깔고 있었는데다, 만화의 돌아가는 모양새가 '안봐도 다 안다'는 식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대단한 엔딩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숨까지 걸면서 불사질렀던 혈기에 비해서는 너무 쉽게 엔딩에 도달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황미리 만화 특유의 여주인공과, 주인공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남자 주인공. 그리고 철저하게 악역만을 위해 태어난, 그야말로 악역. 캐릭터의 색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반전의 재미는 없었다. 스토리와 재미에 비해서는 권수가 좀 길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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