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줄리엣 1
에무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수능 후, 책방에서 알바를 하다 보니 실제로는 어떤 만화책이 베스트셀러라 불릴만 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인터넷 서점이나 일반 서점에서 집계하는 '잘 팔리는 만화책'은 소장하기 위해 매니아들이 사는 것이고, 정말 잘 나가는 만화책은 '잘 빌려가는 만화책'이었기 때문이다. 매니아의 수준은 아니지만, 남들과 취미가 조금 다른 관계로 '잘 빌려가는 만화책'과는 거리가 제법 있는 나였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미친 듯이 '빌려나가는'만화책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우연히 얻어 걸린 것이 이 책이었다. 줄리엣까지는 별 의미 없이 받아들였는데, 문제는 의문의 w였다. 뭘까, 뭘 나타내는 철자일까.. 타고난 학자 체질인 나는 먹고 싶은 것 만큼 알고 싶은 것도 많은 녀석이었기에, '그럼 그냥 다 읽어보지 뭐'라는 무대포로 읽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호기심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낳기도 하는 법. 12권까지 돌파한 후에 남는 것은 왠지모를 허무함. 그것이었다. 짤막하게 내용을 말한다면 사정이 있어서 고등학교 시절을 여장을 하고 보내야 하는, 중국 권법 도장의 후계자인 남자 주인공 마코토. 누가 봐도 남자지만, 알고 보면 여자인 가라데 도장의 셋째 이토. 두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위기와 고난을 극복하며 숨어서 러브러브 하는 그런 이야기라고 한마디로 압축시킬 수 있다. '아름다운 그대에게' '열혈강호' '이 소년이 사는 법'등으로, 성별을 속인다는 아이템은 이미 너무 친숙하다. 친숙하다는 것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도 된테지만 그만큼 식상하다는 말도 될 수 있다.

소재가 참신하지는 않았지만, '속인다'는 말 자체를 좋아하는 음흉한 나는 이런 것 쯤은 용서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장을 한 마코토가 예뻤기 때문이다. 미리 말해놓고 가지만, 나는 예쁘면 뭐든 용서하는 그런 속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주는 스토리가 못난 그림은 커버할 수 있지만 예쁜 그림이 허접한 스토리를 커버할 수 없다는 진실이 나를 돌아오게 했다. 애초에 이 만화는 단편으로 실리고 끝날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독자의 반응이 좋아 그냥 이어서 하게 된 것이었다고.. 그래서 일까? 1회에서 이야기 전개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란 던 것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된 만화가 한 회에서 한 에피소드를 쏟아낸다. 우스갯 소리처럼 사용하는 '대 서스펜스 로망'이라는 말과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서사극'이라 불릴만한, 소름돋게 완벽하고 기가 죽을 만큼 커다란 스케일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건강을 위해 피하라고하겠다.

기본적으로 이 만화는, 1화를 보고 대충의 배경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그 후에는 12권까지 전개되는 그 수십 회의 어느 에피소드를 본다고 해도 이해하는데 별다른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건이 너무 쉽게 끝나는 만화는, 그 다음권을 보고 싶다는 의욕을 불태워 주지 못한다. 그 와중, 그래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여자 주인공 이토의 형제들이다. 위로는 쌍둥이 오빠가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환상이다. 남자 형제는 보통 '골때리는'존재일 때가 많지만, 이 책에서처럼 스타일 죽이고 여형제를 챙기는 착한 녀석들이라면 한트럭을 가져다 준다 한들 그저 고마울 따름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곰살맞은 재미가 있고,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 뭔가 좀 허전하고 허무한 기분이라서, '중독 보장'이라는 도장을 찍기에는 많이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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