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창비시선 203
허수경 지음 / 창비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허수경이란 이름은 들어봤었지만 허수경의 시는 처음 읽었다. 갈색에 가까운 붉은빛, 혹은 검정에 가까운 보랏빛.. 그래, 후자쪽이 내가 느낀 허수경의 시인 것 같다. 지금 내 머릿속을 헤짚은 생각 말이다. 시집 한 권에 담긴 그 시들이, 꼬챙이 하나에 꽃힌 어묵같다고 하면 너무 장난스러울까..? 아직, 어리기만한 나는 작가가 무엇을 보면서 어떤 것을 듣고, 그리고 생각했는지를 이 작은 머리 속에 다 담을 수가 없다는 생각.. 처절하리만치 강하게 들었다.

철저한 금욕과 고찰, 끊이지 않는 생각에서 시가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는, 향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도 특별나지 못한, 오히려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시인이란 무리의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을 또 다른 언어로 전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자아이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집을 묻는다'라는 시가, 이 시집에서 작가의 시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지 않나 싶다. 작가가 본 것은 무었일까.. 솔직히 나로선 작가의 생각을 어림잡는 것도 매우 힘이든다. 좁고 얕은 나의 생각 속에서 작가가 보고 듣고 그리고 생각한 것은..

허수경이란 사람은, 작가는 어쩌면 고여서 썩기 시작한 웅덩이 속의 달팽이를 본게 아닐까.. 끝이 있는 그 귓바퀴같은 껍질에는 사실 끝이 없는.. 휘돌아 감기우는 그런 무늬가, 그런 그것이 한 장의 사진마냥 우리를 찍어낸 것이 아닐까.. 작가가 보아온 것을 나도 보고 싶다. 작가가 생각해 온 것을 나도 조금 엿보고 싶다. 한권의 시집으로만, 그 '훔쳐보기'를 멈춘다는 것이 사뭇 섭섭하다. 어쩌면, 모두가 알면서도 쉬쉬하는 것들을, 조용히 까발라 버린 작가는 용감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추천하는 세 작품은 '여자아이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집을 묻는다' '아이가 달아난다' '聖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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