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중고서점 수유점 오픈
커피프랜차이즈보다 중고서점이 더 좋은 이유.
요즘 거리에서 가장 흔한 게 바로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이다. 1999년에 처음으로 국내 상륙한 이래, 2007년까지만 해도 2,300개 정도였던 매장수가 작년에는 거의 50,000여 개에 달하며 폭발적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지금 어딜가나 눈에 띄는 편의점 점포수를 전국적으로 다 합쳐도 채 3만 개가 안 된다).
단 16년 만에 편의점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점포수를 자랑하게 된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은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지에서 특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인당 매주 12번 넘게 커피를 마신다고 하며(김치보다 더 자주 먹는단다), 커피 수입량은 매년 최대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제 커피는 단순 신드롬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앞으로도 사람들은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커피를 자주 마시며 살아갈 것이다.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에는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와 함께 책을 보는 사람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일도 할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는 도서관 형태의 매장이 교통 편리한 도심 곳곳에 생긴다면 어떨까?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O2O 서비스, 중고서점
예전에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오프라인(offline)에서 이뤄졌다. 인간이 직접 상점에 가서 물건을 샀고, 매장마다 상품을 진열해 놨다. 그러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online) 사업이 출현했고, 사람들은 굳이 상점에 가지 않고도 가상공간에서 쇼핑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가 급속히 발달하고 있다.
한마디로 '온오프라인 연결 비즈니스'가 바로 O2O인데, 주로 온라인에서 주문이나 조작으로 오프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든 걸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배달주문앱이나 택시호출 애플리케이션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오프라인의 활동으로 온라인 서비스 이용)도 역시 넓은 의미에서 O2O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온라인쇼핑몰인 아마존(Amazon)은 오프라인서점 '아마존북스'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기존에는 온라인에서만 책을 팔았지만, 이젠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아마존 회원들은 책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건 그냥 우리가 예전부터 흔히 봐오던 길거리 서점이다. 다만, 이곳은 아마존의 어마어마한 빅데이터를 이용한 O2O 서점이라는 게 다르다.
아마존은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확보한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최적의 서점 입지를 선정하고, 온라인에서 반응이 좋은 책들을 엄선해서 오프라인에 진열한다. 아마존 북스는 애플 스토어와 같이 아마존기기를 경험해볼 수 있는 장소의 역할도 하고, 당연히 물류거점의 기능도 갖는다. 아마존은 장기적으로 300곳이 넘는 오프라인서점을 개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내의 인터넷서점인 알라딘도 아마존북스와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중고서점을 통해 나름의 O2O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알라딘의 오프라인 중고서점은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일도 할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는 도서관 형태의 매장이다. 책의 순환이라는 중고서점 자체의 긍정적 의미와 함께, 직접 가보면 누구나 그렇게 느끼겠지만 웬만한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보다 환경이 더 낫고 또 웬만한 작은 도서관보다 더 다양한 책들을 볼 수 있다.
올해 5월에 새로 개장한 알라인 중고서점, COFFEE 수유점
알라딘 중고서점 수유점은 5월에 개장했다. 수유역 2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데, 수유역(강북구청도 여기에 있다)에 와본 사람들은 다 알듯이 이 주변은 유동인구가 많은 강북의 대표적 도심지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도서관은 역세권에서 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알라딘 중고서점 수유점은 지하철역 출구와 진짜 가깝다.
얼마나 가깝냐 하면, 비가 오는 날도 수유역 2번 출구에서 우산 없이 중고서점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절대 길을 헤맬 염려가 없고, 지하철만 타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아마 서울 시내에 있는 그 어떤 도서관보다 교통이 더 편리하지 않을까 싶다.
알라딘 중고서점 COFFEE 수유점은 2층에 있고, 개점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다. 건물 입구로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는 윤동주, 김유정, 이상, 헤밍웨이, 버지니아울프, 카뮈 등의 초상화와 함께 유명한 문장들이 줄지어 붙어 있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흰 문이 활짝 열려 있고, 깔끔한 매장과 계산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들어가자마자 왼쪽에는 센스 있는 안내판이 붙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매장내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바구니가 놓여 있다. 매장에 들어서는 바로 이 순간부터 알라딘 중고서점의 세심한 배려에 한껏 놀라게 된다.
예전에 중고서점에서는 책 찾는 게 그리 녹록지 않았지만, 알라딘 중고서점에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요즘의 대형서점과 마찬가지로 편한 검색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고,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원하는 책을 찾을 수도 있다. 역시 인터넷서점에서 출발한 O2O 서비스의 진가가 여기서 발휘된다.
그리고 공식 명칭에 중고서점과 COFFEE가 함께 들어간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알라딘 수유점의 가장 큰 특징은 '도서관+카페'다. 카페만큼 분위기도 좋고, 가격대도 딱히 더 비싸지 않다. 그냥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일반 커피 프랜차이즈보다 중고서점 카페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더 친절하고 표정이 밝은 것 같다.
특히, 커피 또는 음료 주문시 쿠키 1개를 같이 준다는 게 참 마음에 들었다. 이곳은 그 특성상 책을 읽으면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러다 보면 오랜 시간 앉아 있는 경우가 자주 있을 것이다. 덤으로 주는 쿠키는 이를 위한 특별한 배려 아닐까.
다른 커피 프랜차이즈와 마찬가지로 주문을 하면 알림벨을 주는데, 알라딘 램프가 새겨진 게 아주 귀여웠다. 아마도 알라딘의 이름을 내걸고 직접 운영하는 카페여서 가능한 일일 테고, 책을 보는 사람도 아무런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마음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
주문한 카모마일 차와 함께 멋진 트레이(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알라딘 굿즈'다)에 담긴 쿠키가 나왔다. 갓 구운 쿠키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참 맛있었다.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더 먹고 싶을 정도로 맛이 괜찮은 쿠키였고, 여름의 시원한 카모마일도 좋았다.
그 자리에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채광이 일품인 넓은 창이 보인다. 알라딘 중고서점 COFFEE 수유점은 지하가 아니라 2층이어서 채광이 특히 훌륭하고, 해가 지면 지하철역을 분주히 오가는 도시인들의 저녁도 구경할 수 있을 테다.
각 자리에는 모바일시대에 걸맞게 일반 콘센트 충전구와 USB 충전단자가 다 설치되어 있다. 간혹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에 가도 제대로 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곳들이 있는데, 이번에 새로 개장한 알라딘 중고서점은 이런 부분까지 다 세심하게 신경을 써놨다.
그리고 중고서점 본연의 역할에도 충실하게 책마다 정가와 중고 판매가가 친절하게 다 붙어있다. 자기가 원하는 책을 검색해서 찾은 다음에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서 읽을 수 있고, 또 그 자리에서 곧장 가격을 확인해서 구입할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어쨌든 시작은 중고서점이라 카페에는 좀 소홀할 수도 있을 텐데, COFFEE 수유점은 '오늘의 커피'까지 제공하는 꼼꼼함을 보여준다. 아마도 처음 기획단계에서부터 커피 프랜차이즈 못지 않은 서점을 준비한 게 아닌가 싶고, 확실히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도서관 콘셉트는 탁월했다.
인터넷서점의 O2O 서비스답게, 중고도서의 구매 및 매입은 적립금과 직결된다. 내부 카페에서 차를 마셔도 간단한 회원 확인 절차를 거치고, 여타 온라인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이메일을 통해 이용 내역을 알려준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 앞서 말한 '온오프라인 연결 비즈니스'의 대표적인 형태인 셈이다.
알라딘 중고서점 COFFEE 수유점에서는 책뿐만 아니라 각종 음반과 DVD·블루레이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알라딘이 직접 매입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그 상태도 퍽 준수하고, 꽤나 다양한 상품들이 구비되어 있다. 밝은 매장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중고 물품들은 일단 믿음이 간다.
알라딘의 전매특허, 다양한 알라딘 굿즈도 현장에서 직접 살펴보고 구입할 수 있다. 알라딘을 이용해 본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겠지만, 알라딘 굿즈는 그 퀄리티가 남다르고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저 대충 만들어 사은품으로 끼워주는 허접한 물품들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한다. 오죽하면 알라딘 굿즈를 받기 위해(매달 증정 이벤트가 열린다) 인터넷으로 얼마 이상의 책을 구입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알라딘 중고서점의 섬세함이 또한번 빛을 발하는 지점이 있다. 중고책 팔기가 생소한 이들을 위해 관련 안내 표지도 붙어 있고, 매장 한 쪽에 전용 창구가 마련되어 있다. 은행에서처럼 순번대기표까지 받을 수 있으며, 중고책 구입과 판매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일반 대형서점 수준의 직원들 여러명이 계산대에서 도움을 준다.
여기까지는 COFFEE 수유점의 좋은점만 얘기했지만, 물론 옥의 티도 있다. 매장 끝에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있고, 그 뒤편에는 화장실이 보인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이곳에서 유독 화장실만은 상당히 불편했다. 매장 규모에 비해 너무 작았고, 바로 앞에 책 읽는 테이블이 있는데도 문이 열려 있었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전까지는 전부 만족스러운 이미지였는데, 이용 후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하나 하나 다 섬세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지만, 비좁은 화장실만은 칭찬을 해줄 수가 없다. 중고서점에서 오랜 시간 책을 보고 차를 마시다 보면 당연히 화장실을 가게 될 텐데, 수유점의 화장실은 향후에라도 어떤 식으로든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커피 프랜차이즈만큼이나 중고서점이 많이 생긴다면?
알라딘 중고서점 COFFEE 수유점을 이용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일단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한마디로 참 잘해놨다는 거다. 전체적으로 웬만한 커피 프랜차이즈보다 나은 환경이었고, 각종 도서와 음반 및 블루레이까지 저렴하게 구입하고 팔 수 있으니 사실 훨씬 더 장점이 많은 셈이다. 그리고 책의 순환을 이루는 중고서점 본연의 유익함도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서도 모두 다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커피 프랜차이즈에서는 도서관처럼 책을 찾아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반대로 도서관에서는 일반적으로 책을 보면서 차를 마실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서관 내의 카페테리아로 자리를 옮겨야 하고, 보던 책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둬야 한다.
게다가 기존 도서관에 비해 교통도 훨씬 편리하고, 채광이나 인테리어 등 내부 환경도 더 나은 편이다. 물론 규모 면에서는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될 수도 있지만, 인터넷서점의 특성상 최근에 나온 책의 상대적인 비중은 별로 부족하지 않을 듯하다. 그러니 알라딘 중고서점은 커피 프랜차이즈와 도서관의 장점을 모아놨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상상도 한 번 해봤다. 만약 도심에 커피 프랜차이즈만큼이나 중고서점이 많이 생기고 사람들이 자주 이용한다면? 위에서 말한 바대로 편의점보다 점포수가 더 많은 게 커피 프랜차이즈인데,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매장들이 중고서점의 역할도 한다면 뭔가 사회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수준이 좀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자는 게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도심지 카페가 그저 커피만 마시기보다는 평소에 쉽게 보기 힘든 다양한 책을 접하는 장소로 변모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어차피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한 건물 건너 하나씩 커피 프랜차이즈가 자리잡고 있는데, 극심한 포화상태에 이른 현재 상황에서 그 방향성 자체를 좀 전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O2O 서비스는 첨단의 IT 흐름이고,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알라딘의 중고서점과 같은 사업모델이 더 발달해서 곳곳에 유사한 매장들이 생길 수도 있고, 책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문화콘텐츠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진다면 우리 모두에게 긍정적인 일 아닐까? 알라딘 중고서점을 통해 그런 가능성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 앞으로도 COFFEE 수유점에 자주 방문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