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1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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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과연 그렇다면 당신은 과연 몇 초 이내에 소중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또 간신히 떠올린 기억이 다른 기억을 압도할 만큼 당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얼마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기억이라는 단어에는 사람, 사물, 공간, 시간 …… 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서 질문에 답하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였냐고 질문을 바꿔보자. 조금은 답을 하기 편해졌을까, 조금은 대답을 빨리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거다. 누군가를 특정하여, 당신이야말로 나의 삶을 이렇게 만들고 바꿔놓은 근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소중하다고 지목 당한 사람에 대한 책임감, 지목 당하지 않은 수 많은 인연에 대한 미안함, 두 가지를 수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감정의 지층을 파헤치고 고민하여 결국 가장 소중한 기억, 소중한 사람을 발견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내 그 지점에 당도한다.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삶이 한 점으로 귀결되는 무언가, 어딘가, 누군가는 있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히브리어로 글을 쓰는 아모스 오즈의 대표적이자 자전적 소설인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는 작가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야기 한다. 작품은 흡사 민족주의 정서가 가득한 족보를 들춰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며 시작한다. 작가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그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각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또 그 위로 수 없이 많은 선조들이 살다가 죽었을 것인데, 작가의 지금을 만든 핏줄의 근원을 따라 백 년도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수 없이 많이 제시되는 등장인물은, 그들 모두가 작가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이토록 기억하려 애쓰는 것일까, 의문을 자아낼 만큼 생생하고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몇 세대에 걸친 이들 유대인의 삶은 유럽에서의 홀로코스트, 몇 천년에 걸친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시오니즘,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무력 분쟁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결합되면서 생명력을 얻는다. 작가가 제시하는 등장인물은 실제 존재했던 사람이고, 작가는 실제 존재했던 시간을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잠깐 소설을 덮고 생각해보자. 이 작품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간신히 비껴간 프리모 레비가 그랬던 것처럼, 역사의 한 순간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증언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작품의 마지막 문단에 당도할수록 점차 이것은 유대인의 처연한 삶을 다룬 증언 문학이 아니라 작가가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작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란, 그가 열 두 살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의 어머니. 그녀가 우울증과 편집증을 견디다 못해 생을 마감할 때의 나이는 서른 여덟이었다. 그러니까 작가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그가 60년 전 떠나 보내야 했던, 지금 작가의 나이보다 30년이나 어린 나이에 머물러 있는 당신의 어머니를 추억하고 있는 거다. 작가의 어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 소설의 마지막 문단도 함께 끝이 났는데, 그제서야 왜 이토록 많은 등장인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웅성대며 작품 곳곳에 등장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라는 하나의 인물을 향해 집결되고 있었다. 어머니의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남편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사촌 형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머니의 자매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 그들은 모두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존재했고 사그라졌다.

 

투시 원근법은 3차원의 물체를 2차원의 평면에 묘사하는 회화 기법이다. 입체적으로 그려진 물체의 선을 연결하다 보면 모든 선은 하나의 점에서 만나게 되는데 선과 선이 만나는 점을 소실점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그림에 그려진 모든 물체는 하나의 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작가가 평생 살아온 삶은 당신이 열 두 살 때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라는 점으로 귀결되는 삶이었고, 어머니라는 소실점을 향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과 또 한편으로는 처연한 어둠으로 가득했던 것인지 그를 증명하기 위해 80년 가까운 삶을 바쳤던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시대를 기록하거나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였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한다고 외치는, 어쩌면 사랑의 증명에 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의 원근법으로 그려진 生 끝에는 단 한 사람이 서 있었고, 시간을 거슬러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없기에 이 증명은 상대로부터 맞는 답이라 채점 받을 수 없는 …… 끝내 종결될 수 없는 사랑의 증명이었다. 2018년에 생을 마감한 아모스 오즈 작가가 당신의 어머니와 꼭 다시 마주하기를 바란다. 열 두 살 소년과 서른 여덟의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 ▨

(2019.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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