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 - 빗소리가 어떻게 풍경을 보여주는가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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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부터 솜사탕 색깔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색각이상이라고 구체적인 증상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신체검사 시간이었어. 색각이상(色覺異狀). 색각이상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증상이 있고, 증상의 정도에 따라 색맹이나 색약으로 분류되는데 나는 가끔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적록색약에 해당했지. 수경이도 초등학교 신체검사 시간에 한 번쯤은 색각이상 검사를 해봤겠지. 색으로 칠해진 점이 가득한 도형에서 특정한 숫자나 패턴을 읽어내는 것인데, 처음의 한 두 장은 손쉽게 읽었지만 그 뒤의 숫자들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어. 색각이상 여부를 검사하던 선생님은 내가 어떤 숫자를 말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어. 대다수의 아이들이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7이요, 13이요, 19, 라며 숫자를 연신 외치는데, 나는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거든. 몇 초 침묵이 이어지다가 간신히 12인가요, 라고 말하면 선생님은 색각검사지가 아니라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셨지.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는데 가끔 어려움을 느꼈지만 일반 생활에서는 불편할 것이 거의 없었어. 신호등 색이 바뀌는 걸 제대로 분별할 수 있으니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지. 물론 아이와 함께 공원을 찾았을 때 희미한 솜사탕 색이 하늘색인지 분홍색인지 분간하기 어렵다거나, 유니클로 매장에서 판매하는 옷의 다양한 색을 정확하게 비교하며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경우가 있었지만 삶을 재구성해야 할 만큼 심각한 수준은 결코 아니었지.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닌 증상이라 하더라도, 내 삶이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적록색약이라는 것이 무의식 중에 콤플렉스가 되었던 것 같아. 그래서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색깔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했지. 10,000가지 이상의 색을 체계화 한 팬톤(Pantone)의 색채 표현을 외우다시피 하며 이 색은 이 색이구나, 저 색은 저 색이구나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단다. 언제나 고통에는 정 반대 측면에서의 보상이 뒤따르는 법이었지.

색깔에 대해 이야기했지. 색깔이란, 사람 눈에 따라 보이는 여러 가지의 빛깔이라고 하네. 사람의 눈에 따라 지각되고 표현되는 것이 비단 색깔에만 해당될까. 아침에 일어나서 내 옆에 누워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을 때,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지적 사고가 가능하지만 어떠한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할 때, 피아노 악보의 음표가 전혀 낯선 것으로 읽힐 때, 혹은 수십 년 읽은 책이 익숙한 알파벳이 아니라 전혀 생소한 그리스 문자나 히브리 문자로 이해될 때, 그때의 당혹감은 얼마나 크고 깊을까. 지금껏 익숙한 방식으로 지각하고 표현하던 것,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이 파괴된다면 어떻게든 그 파괴 속에서 자신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할 거야. (229) 신경과 전문의인 저자가 2015년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 출간된 <마음의 눈(2010)>은 사람들이 어떤 손실을 겪으며 삶이 어떻게 파괴되었고 또 어떻게 극복하는지. 삶의 파괴와 부활에 대한 이야기야.

올리버 색스를 떠올리던 순간이 생각났어. 작년 5월 회사 점심시간에 근처 갤러리에서 작품을 관람하고 돌아오던 길이었어. 마을버스를 타고 회사로 돌아오는데 창 밖을 바라보며 그 즈음에 읽었던 그의 자서전 <온 더 무브 (알마, 2015)>를 떠올렸단다. 책을 읽는 내내 느껴진 따스한 정서가 5월의 날씨와 잘 어울렸지. 그는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면서 다양한 고통과 기괴한 상실 속에 살아가는 환자들을 마주했는데, 자신도 범속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니었어. 사람 얼굴이나 장소를 인지하지 못하는 어려움, 동성애라는 성 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죄의식, 마약에 탐닉해서 몸과 마음이 부서졌던 과거, 모터사이클을 타다가 발생한 큰 사고 ...... 나의 고통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거나, 빗소리로 풍경을 볼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처지에 감응(感應)할 수 있게 해주었을 거야. 삶이 부서진 이들에게 감응하고 귀를 기울였던 그는 실로 의학계의 계관시인이었어.

이번에 <마음의 눈>을 읽으며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면, 그건 환자들이 보여준 경이로운 생명력 때문일거야. 우리는 보통 아주 작은 상처에도 삶이 위축되고 더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그러나 지금까지 살던 방식을 버리고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할 만큼 낯선 환경에 처했을 때 나나 수경이나 과연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어. 올리버 색스라면 곁에 나타나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우리도 그렇게 계속해서, 어떻게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음표를 읽기 힘들어진 릴리언이 하이든 4중주곡을 여전히 머리 속에 기억하고 놀랍도록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릴리언이 특별한 건 아니야.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겠지. 우리 모두는 릴리언과 같아. 바로 그 때문에 우리 모두는 평범하지만, 동시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부활하여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계속 살아가게 될 거야. 그게 인간이 인간으로 규정될 수 있는 조건이겠지.


이건 불행이라고, 중얼거리면
모든 음악이 전쟁의 손으로 우리를 안아주는 그런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건 사랑이라고, 중얼거리면
모든 음악이 검은빛으로 변하는 그런 처참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손을 잡아달라는 간절한 몸의 부탁일 뿐입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내 기억을 가진 쥐가 당신에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내 손을 잡아줄래요?

- 허수경 시인의 <내 손을 잡아줄래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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