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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계단을 보라
윤대녕 지음 / 세계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한다. 하지만 일상을 탈출하는 것은 언제나 자의에 의한 것. 마치 자살과 같이.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갑자기 순식간에 다가온 일탈에 대한, 아니 일탈이 아닌 미끄러짐, 이 세상이 저 세상으로 당신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주인공은 하늘색 여인을 만나기 전에는 뭔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과 불안으로 밤을 지새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 같은 일상. 오히려 주인공은 집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단풍나무가 가로수로 있는 그 거리를 사랑하고, 기뻐하면서 직장으로 향한다. 다만 보통 때와 다른 것은 밤을 지새운 피로감정도?
하지만 하늘색여인을 만났을 때, 그는 말한다.
'이를테면 그때부터 나는 <세계>의 십 분앞이거나 혹은 십 분뒤인 장소에 버려졌다는 묘한 생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남들은 아홉시에 존재하고 있는데 나만이 아홉시 십분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하는. 문제는 앞이거나 뒤가 아니라 <세계>와 <나>사이에 간격이 발생했다는 것일 터였다.'
일상에서 그는 10분이 미끄러져버렸다. 처음에는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동창을 만나면서 그의 불안은 강해진다.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보이지않는 간격으로 굴러떨어져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는 불안감. 이 불안감은 그에게 세희를 찾게한다. 마치 강박증환자처럼. 반드시 만나야 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그의 동창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니, 어쩌면 일상으로 벗어난다는 것이. 그 일탈이란 미지의 영역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마치 저 세상, 정말로 저승이라도 가버릴 것처럼.
그러나 세희조차도 미끄러져있었다. 아니 서서히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결혼하자고. 그 질리도록 일상적인 곳으로 그 둘은 도망가자고.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일탈이라는 것은 세상이 내몰아버리는 일탈. 익숙한 것과의 결별선언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이었다. 마치 숙명처럼. 운명처럼.
그래,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 다른 삶을 원했다. 하지만 일상이란 것은 언제나 익숙하다. 마치 먹는 밥처럼. 편해져버린 것이다. 마치 하늘색여인처럼. 조금 철이 빠른 듯. 그렇게 일상은 순간 안녕을 외치면서 세상은 갑자기 우리를 내쫓는다. 명예퇴직을, 졸업을, 수많은 일들이 갑자기 어이없게 끝이 나버린다. 언제나 다른 삶을 바라고 있었건만 두려워한다. 두렵다. 그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 지 모르기 때문에, 그 미지의 영역을 가야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역시 하늘색 여인은 매력적이다. 바라볼 수 밖에 없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그저 바라보기만 바랄뿐이다. 그녀와의 격렬한 연애라, 몸짓이라. 오히려 주인공처럼 침대의 모서리로 도망가지 않는다면 그것이 다행일지도.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다행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