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주의는 야만이다
이득재 지음 / 소나무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없는 돈 쪼개가며 이십 년을 훨씬 넘게 꼬박꼬박 바쳐왔다 나는

그 사람들이 티비 수상기 안쪽에서 훌쩍거리는 눈물에

반 년을 넘게 모은 돼지저금통 배를 찢은 적도 있었다

유치원 적인가 국민학교 적인가 중학교 적인가 고등학교 적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베풀어야만 하는 善이라 배워왔다

그러면서 나는 절대 가지지 못한 자의 편에 서는 불상사에 처해지고 싶지 않았다

가지지 못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이십 년을 훨씬 넘게 꾸역꾸역 살아왔다 나는

그 사람들이 티비 수상기 안에서 훌쩍거리는 눈물은 뭐가 쏟게 한 것인가

그 눈물은 그 가난은 그들의 무능력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 쉬 믿어왔던가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에 다닐 적에도 아 그랬었던가

그 사람들의 눈물 앞에 손쉽게 벌어드린 돈 몇 푼 던져주며 나는 희희낙락했었다

가지지 못한 자의 편보다 가진 자의 편에 더 가까이 서있음에 안도의 한숨 내쉬었다

언젠가 케이비에슨가 뭔가에서 수재민 돕긴가 뭔가 하는 특별방송을 한다는 데

김피딘가 이피딘가 박피딘가 하는 작자가 지나가는 사람 불러다 놓고는

봉투 한 장씩을 나눠주고서 카메라 돌아갈 때 모금함에 넣는 척 하라고?

매스컴의 힘을 빌려보겠다는 속셈이었고 그 속셈에 발라당 넘어갔다 우리는

― 그렇다고 엠비씬가 뭔가나 에스비에슨가 뭔가가 좀 더 낫다는 건 아니다

그들을 왜 우리가 도와야 하는 거지 그것도 언제나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정작 누구인지 무엇인지 국가 그래 국가권력 아니었나

부강한 나라를 위해 평생 뼈빠지게 일한 대가로 명예퇴직 실직한 우리 아버지들과

부강한 나라를 위해 평생 가족 뒷바라지에 눈물뿐인 인생을 사는 우리의 어머니들

우리는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어쩌면 당연시했던가 오 아니 강요했던 것은 아닌지

오늘, 네놈들이 던져주는 달콤한 쌀밥과 뜨끈한 고깃국을 과감하게 내팽개치고 말겠다

꽁꽁 언 아랫목에서 솜이불 달랑 덮고 온전히 내 체온만으로 내년 봄 분연히 일어서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네놈들에게는 단 한 푼도 내어주지 않겠다 나는

···

"들뢰즈와 가타리 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그것을 '아빠-엄마-나'라는 가족주의의 틀 안에 가두어 놓았다

이득재 교수 曰, 그러한 가족주의 가족 신화가 절대시 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의 탈주를 꿈꾸며

나 曰, 이제부터 부지런히 국가권력에 딴지를 걸며 그간 병들고 다친 내 가족들을 보살필 랍니다"



2002. 10. 31. 카오스.에이.디.



note. cafe <목요 북까페>에 새긴 [저자와의 대화(4):『가족주의는 야만이다』(이득재 著)]
後記



<웹습작실 "단상斷想, image, 어느 날의 나"> 구경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