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고래잡이 - 라말레라 부족과 함께한 3년간의 기록
더그 복 클락 지음, 양병찬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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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도네시아 사우 해의 화산섬에 사는 '라말레라'라고 불리는 부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라말레라 부족은 오늘날 명맥을 이어가는 수렵채집 사회 중에서 가장 작고 갈수록 점점 위축되는 집단이며 고래 사냥으로 연명하는 유일한 부족이다. 이들은 1년에 평균 스무 마리의 향유고래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데, 50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나무 작살과 테나라는 목선을 이용해 고래를 사냥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현대화와 물질문명이 라말레라 마을의 신세대들에게 밀려들면서 부족의 전통적 생활 방식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과연 라말레라 부족은 현대 문명 속에서도 그들만의 생활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이 책에는 라말레라 부족의 과거 부족사회 시절부터 현재의 일상생활까지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1장에 나오는 1994년 라말레라 부족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으며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함축적으로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테티헤리라는 배를 이끄는 이그나티우스와 케나푸카라는 배를 이끄는 이그나티우스의 매부, 프란스가 향유고래를 잡기 위해 바다로 떠났으나 태풍을 만나 좌초될 위기에 처한다. 모든 배는 줄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테티헤리의 선원들이 연결된 줄을 끊고 홀로 폭풍의 난기류를 뚫고 탈출한다. 연결이 끊어진 케나푸카는 망망대해로 표류하게 된다. 함께 살고 함께 죽어야 한다는 조상들의 가르침이 있었지만 테티헤리의 선원들은 자신들이라도 먼저 탈출해서 구조를 요청하겠다는 허울뿐인 변명을 핑계 삼아 동료들을 버리고 섬으로 대피한다. 테티헤리의 선장 이그나티우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반대로 케나푸카의 선장 프란스는 분노에 휩싸인다. 동료들이 라말레라 부족의 정신을 위배하고 도망친 것도 화가 났지만 처남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은 이미 다 떨어졌고 죽음을 맞이하고자 마음을 비웠을 즈음에, 어디선가 스파이스 아일랜더라는 글씨가 새겨진 금속선이 케나푸카를 향해 엔진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들은 선원들을 구조하여 치료해 주고 의식주를 제공해 주었다. 섬에서만 생활했던 라말레라 부족 선원들은 처음 보는 문명의 이기에 당황하였으나 이내 편안함과 편리함을 느끼며 회복한다. 그러나 프란스의 마음은 회복되지 않았다. 섬으로 다시 돌아왔으나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라'라는 조상님들의 명령을 어긴 테티헤리 선원들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이후 수십 년이 지나도 서로를 껄끄럽게 하는 요소로 남는다. 부족의 정신은 무너지고 현대 문명의 이기를 접한 라말레라 부족에게 물질문명의 세상이 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프란스는 이 모든 것들이 걱정되었다.

위의 이야기가 향후 라말레라 부족의 미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함께 살고 함께 죽어야 한다는 정신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개인화가 만연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공동체 의식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현대 문명의 이기들을 접하면서 더욱 가속화된다. 실제로 프란스가 걱정했던 것처럼 바깥세상의 문화와 물건들이 라말레라 마을로 꾸준히 들어왔다. 그들의 생활방식을 바꾸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부족의 정신까지 바꾸려고 한다. 라말레라 부족의 신세대들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부족의 정신을 받들어 조상님들의 방식을 따를지, 아니면 현대 문명을 받아들이고 다른 세상으로 들어갈지. 욘이라는 청년은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자신의 꿈을 결정했다. 작살잡이인 '라마파'. 라말레라의 남성 사회에서 가장 높은 영예를 지닌 라마파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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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이야기는 욘이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라마파가 되어가는 과정과 이제는 중년이 된 아그나티우스와 프란스의 일화, 그리고 라말레라 부족들의 고래잡이 과정 등을 담고 있다. 욘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신세대들만의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사랑 이야기와 라마파로서의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또한 고래를 잡는 과정은 읽는 내내 진땀이 날 정도로 치열했고 또 처절했다. 고래를 잡는 그들의 삶을 보니 현대 문명이 라말레라 부족에게 스며들더라도 그들의 부족 정신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부족의 정신을 가슴속에 새긴 채 오늘도 목숨을 걸고 배에 올라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라말레라 부족에게 위기는 찾아오겠지만 그때마다 공동체 의식을 발휘해서 서로를 위하고 지켜주며 부족의 정신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저의 주관적 견해를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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