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평점 :
이 책은 자전거 도둑조차 없는 조용한 작은 도시에서 갑자기 발생한 인질극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인질극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진행된다. 사건은 은행에서 6천5백 크로나를 훔치려 하는 은행 강도로부터 시작된다. 배우자의 바람으로 이혼 당하고 아이들과 생이별한 것도 억울한데 월세 6천5백 크로나조차 없어서 제대로 된 집에서 거주를 못하고 아이들도 만날 수 없다는 답변을 받는다. 삶이 절벽의 끝자락으로 내몰린 느낌을 받은 은행 강도는 총을 들고 절박한 심정으로 은행에 가서 6천5백 크로나를 요구하지만 그 은행은 현금 없이 운영되는 은행이었다. 경찰이 출동하자 도망쳐 나온 강도는 당황한 나머지 얼떨결에 옆 아파트 오픈하우스로 들어갔고 거기서 부동산 중개업자를 비롯한 아파트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총을 들이밀며 잠시만 인질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은행 강도와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반박하는 인질들의 이야기가 이제 시작된다.
이 소설에는 인질극과 관련된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초반부에는 인질극을 수사하고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경찰관 야크와 짐의 이야기가 나온다. 야크는 짐의 아들로서 부자지간이지만 사건 수사 내내 부딪힌다. 의견 충돌이 잦아지며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아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은행에 가서 푼돈인 6천5백 크로나를 달라고 강도 짓을 한 은행 강도의 과거 이야기는 꽤 서글펐다. 물론 범죄를 시도한 것만으로도 범죄는 범죄이고 과거 이야기로 무마시켜서는 안되겠지만 우리 모두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기에 그들의 사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법률 용어에도 정상 참작이라는 단어가 있지 않은가?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은행 강도의 이야기는 많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외에도 자기만의 가치관이 확실하고 말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는 은행 고위 간부 '사라', 은퇴 후 낡은 아파트를 산 뒤 리모델링해서 판매하는 부부인 '로게르'와 '안나레나',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집을 고르는 신혼부부인 '로'와 '율리아' 등 오픈하우스에 있다가 인질이 된 이들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각자의 사연이 사건의 이야기와 교차로 구성되어 서서히 드러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 읽으면서 느낀 점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정신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소설을 읽는 내내 정말로 정신이 없다. 이야기는 이쪽 저쪽을 오가며 스피디하게 진행되며 등장인물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쉴 새 없이 말한다. 기본적으로 제정신인 사람들이 별로 없다. 경찰서에서 목격자 진술을 하는 인질들의 대화를 읽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나 의문이 들 정도인데 신기한 건 읽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에게 스며든다. 인질극이 벌어진 당시의 상황이 퍼즐 한 조각씩 맞추어지듯 이야기가 천천히 완성되어간다. 인질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처음에 보이지 않았으나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작가의 놀라운 필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소설은 한 편의 연극 같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정신없이 따라가는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마음 약한 강도와 더럽게 말 안 듣는 인질들이 만나면서 심각한 인질극이 아닌 대 환장 소동극이 되면서 더욱 연극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정신없고 왁자지껄 웃으면서 보다가 마지막에는 모든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감동의 메시지를 주는 완성된 연극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서로 관계없는 삶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작가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 삶을 함께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지 않았을까?
.
.
책을 읽을 때 연극을 보듯이 한 번의 호흡으로 쭉 읽는 것을 추천한다. 처음에는 스피디한 이야기 진행을 따라가는 데에 급급할 수 있지만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공감하면서 절정으로 치닫는 인질극의 결말이 궁금해질 것이다. 결말이 주는 교훈과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진하게 스며들 것이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 준 좋은 소설이었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저의 주관적 견해를 담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