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유치원 - 너와 내가 함께라면 길을 잃더라도
정일리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서울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엄마 '혜림' 이 한국 사회에서 자녀를 키우고 교육하는 과정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조기 교육과 사교육에 눈을 뜨면서 내 자녀만큼은 최고로 교육하겠다는 욕심이 점점 자기 자신을 잠식해가고 이 과정 속에서 겪는 내적 갈등의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자기 자식을 저렇게까지 교육하고 싶을까? 주인공을 욕하다가도 막상 내가 저 입장이 되면 나도 주인공처럼 사교육에 목맬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공감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보다 앞서나가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조바심이 안 날 부모가 어디 있으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지만 어떤 방향으로 사랑해야 하나 고민하는 주인공의 심정에 공감하며 책을 끝까지 읽었다.

소설 속 세계는 너무나도 익숙한 대한민국 교육 사회이다. 그러나 저자는 친절하게도 맨 첫 페이지에 이 소설의 세계관(?)을 지도 한 장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이 판타지였으면 별 감흥이 없었겠지만 한국의 교육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지도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흔히들 말하는 SKY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고등학생 때 만 열심히 공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중학교,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보다도 이전인 어린이집을 어디로 가느냐부터가 SKY 대학을 가는 첫걸음인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을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지고 공립초와 사립초의 갈림길은 거의 대학의 갈림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도 나름 특목고를 나와서 교육의 열기는 어느 정도 맛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세계에서 나는 명함도 못 내미는 '흙 수저'인 것이다. 교육 전쟁이 고등학교가 아니라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는 최근 사회적 현상은 아직도 낯설고 무섭다. 내가 낯설고 잘 모른다 해도 그건 내가 무지한 것이고 유치원 때부터 경쟁하는 사회는 이미 도래하였다. 이것이 현실이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첫째 딸 '지혜'를 유치원에 보내려는 엄마 '혜림'의 탐색전이 주를 이룬다. 경기도 광명시의 예그린 유치원을 나온 나로서는 강북의 사립 유치원들만 봐도 입이 떡 벌어졌다. 혜림의 정보 수집에 나도 흥미를 가지고 술술 따라갔다. 요즘 유치원들 세계도 장난 아니구나, 체험학습에 특활비에 이게 다 뭐지? 혜림의 안내에 신세계를 탐험하던 나는 영어 유치원을 마주하고 나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혜림도 영어 유치원들의 이름을 듣고 낯설어하는데 나는 오죽했을까. 이때부터 교육의 본질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이 교육들은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가?

나와는 달리 혜림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남의 자녀 교육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마음이랑 내 자식 교육을 시키는 부모의 마음은 비교조차 안 될 거다. 혜림은 결국 강북의 영어 유치원을 넘어서서 강남 교육의 메카인 D동 입성까지 꿈꾸며 오직 자녀의 교육만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기회를 자녀들에게 줄 수 있음에 기뻐하는 그녀이지만 과연 자녀들도 기뻐할까? 자녀에게 물어는 봤을까? 이처럼 대한민국의 교육 문화 속에 교육 당사자의 의견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아직 어려서 판단할 줄 모른다는 허울 좋은 변명 아래 교육의 방향은 전부 부모의 통제 아래 있다. 이 시점에서 진정으로 자녀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데 앞만 보는 부모들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잠시 걸음을 멈춘 다음 내 자녀의 두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한 채 진솔하게 이야기 나눠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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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백미는 후반부 혜림의 내적 갈등 심리를 읽어나가는 데에 있는데 소개하지 못해 아쉽다. 소설의 시점도 처음에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어서 이야기를 멀리서 바라보는 느낌인데 후반부에서 혜림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뀌며 심리 묘사가 상세히 나타난다. 처음에는 시점이 바뀌는 것에 의문이 들었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작가의 의도적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녀를 키우거나 키울 예정인 어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주인공에 공감하면서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거라 생각한다. 처음엔 이야기에 푹 빠져 술술 읽다가 후반부에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 것이다. 재미와 교훈 둘 다 잡은 유익한 소설을 오랜만에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너무도 강력한 교육 열기에 살짝 열도 받았지만...)

※ 이 서평은 작가님께 책 선물을 받아서 읽은 뒤 저의 주관적 견해를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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