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 개정판
김훈 지음 / 푸른숲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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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에 책을 읽으면서 김훈 작가님의 이름을 한 번도 못 들어봤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칼의 노래'라는 책으로 김훈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고, '남한산성'을 고등학생 때 읽었었다. 당시에는 병자호란 때 인조를 비롯한 조선이 겪은 치욕적인 역사적 사실이 크게 다가왔었고, 글 자체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도 10년이 더 흐른 뒤 박웅현 작가님의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김훈 작가의 이름을 다시 마주하였다. 박웅현 작가는 김훈 작가를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탐사와 관찰에 최선을 다하는 김훈 작가에 존경을 표하며 사실적이면서도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대단한 그의 글과 문체를 좋아한다. 정말 그런지 궁금해서 김훈 작가님의 책을 읽어보았다.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딱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김훈 작가는 정말 미친 사람이다.'

이 책은 진돗개 '보리'의 시점에서 쓰인 책이다. 보리가 바라본 세상 속 사람들과 동물들의 이야기다. 진돗개 수놈으로 태어난 보리가 엄마의 젖을 먹던 시절부터 무럭무럭 성장하여 성견이 된 후 주인 가족들과 많은 일을 겪으며 함께하는 시간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개의 시점에서 서술되었기에 사람들이 봤을 땐 당연한 사실들에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생각들이 참으로 솔직하고 순수하다. 사랑스러운 보리가 사람과 다른 동물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한 것은 김훈 작가의 글 그 자체다. 그의 글은 정말 간결하다. 형용사와 부사를 최대한 쳐냈으며 미사여구는 거의 없는데도 정서와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없이 순수하고 맑은 감성이 느껴지며 매 순간순간이 반짝이며 눈앞에 어른거린다. 아이들이 웃는 소리를 개울물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내리는 것 같다고 표현한 구절은 덩달아 나의 웃음도 자아내게 한 구절이었다. 새하얀 눈밭에 흰 털로 뒤덮인 암컷 개 '흰순이'를 보고 새까만 눈과 코가 별처럼 보인다는 보리의 마음을 읽으니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듯 선명하게 다가왔다.

미소가 지어지는 아름다운 묘사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문장들도 제법 많다. 개의 시점을 빌려서 사람들에게 말하고픈 메시지 같은 느낌이다. 똥을 먹는다고 해서 똥개가 아니라 도둑이 던져주는 고기를 먹는 개가 똥개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서늘함은 꽤 차갑다. 개도 알아보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정작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는 보리의 일침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말하고픈 일침과 같다.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때까지 짖고 또 짖을 거라는 작가의 말이 보리에게 투영된 것이지 않을까?

소설의 길이는 길지 않아서 푹 빠져서 읽으면 금방 다 읽을 수 있다. 내용은 직관적이고 술술 읽히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수려해서 곱씹어 읽게 된다. 단순한 배경 묘사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어촌을 포함한 자연 배경 묘사에 놀라고 보리의 심리 묘사에 웃음 짓다가 감정 묘사에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문장의 수려함이 이토록 강한 흡입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을 계기로 저자의 다른 소설과 산문집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책을 다 읽으니 정말로 김훈 작가는 미친 사람이 맞다. 본인의 글로 독자들을 미치게 하는 사람이 맞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저의 주관적 견해를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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