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사람, 남자 사람에 대한 오래된 질문, 새로운 대답!

혐오의 시대를 사는 청소년을 위한 젠더 이야기


『나의 첫 젠더 수업』 출간 전 연재를 읽고 기대평을 남겨 주세요.

추첨을 통해 책 선물을 드립니다. :)



우리 가족은 팀워크가 필요해


가부장제가 굳건한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어깨에 가족의 생계를 홀로 도맡아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얹히게 됩니다. 가부장제의 남성들은 ‘직장과 결혼’할 수밖에 없지요. 아버지들은 바깥에서 돈을 버느라 가족들과 친밀한 시간을 갖기가 어려워요. 새벽같이 출근해서 한밤중에 퇴근하니, 아이들과 대화하기는커녕 얼굴 보기도 힘들지요. 자식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으니 아이들도 아버지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되고요. 대화가 적다는 건 누구보다 아버지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랍니다.


게다가 가장으로서 열심히 돈을 벌 때는 괜찮지만, 은퇴한 후에는 가족과의 사이에서 갈등을 빚기가 쉬워요. 아버지들로서는 한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했는데 정작 가족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셈이지요.


여러분의 아버지는 어떠한가요? 여러분은 하루에 아버지와 얼마나 대화하나요? 국립국어원이 2015년에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36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하루 평균 아버지와의 대화 시간은 1시간 27분, 어머니와의 대화 시간은 2시간 9분이었어요. 어머니가 훨씬 길죠? 시간만 다른 것이 아니라, 대화 내용도 달랐습니다.


어머니와의 대화 내용은 ‘주변 사람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약 40%, ‘공부와 학업’이 약 31%, ‘취향과 관심사’가 약 16%였어요. 하지만 아버지와의 대화 내용은 순서가 좀 바뀌었지요. 아버지와는 ‘공부와 학업’에 대해서는 34%, ‘취향과 관심사’는 24%, ‘주변 사람에 대한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는 18% 정도로 대화한다고 해요. 어머니와 가장 많이 대화하는 주제인 생각과 감정을 아버지와는 별로 얘기하지 않고 있군요. 생각과 감정이라고 하니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내 속마음을 아버지에게는 잘 보여 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틀리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공부, 학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커지고 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줄곧 공부, 학업이 대화의 최우선 주제였습니다. 공부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된다면 아버지와의 대화가 별로 즐겁지 않을 것 같아요. 반면 어머니와는 중 2 때까지 ‘주변 사람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40%가 넘었고, 중 3 때 잠시 26%로 떨어지지만, 고 1 때 다시 40%로 늘어났어요. 아빠보다는 엄마에게 속을 터놓는 친구들이 많네요.


아이들은 또 “누구와의 대화가 중요한가?”를 묻는 질문에 어머니, 친한 친구, 아버지, 친하지 않은 친구의 순서로 답했다고 해요. “누구와의 대화가 즐거운가?”를 묻는 질문에는 친한 친구, 어머니, 아버지, 친하지 않은 친구의 순서였고요. 아버지는 친하지 않은 친구보다는 낫지만 어머니, 친한 친구에는 못 미치네요.


가족과 좀 더 친밀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은 가부장제 속에서 사는 남자들의 고충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아버지는 몇 번째 순서에 자리하고 있나요?


엄마가 힘센 자궁 가족


아빠와 대화하기가 부담스러운 친구들 중에는 엄마에게 ‘중간 전달자’ 역할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을 거예요. 아빠에게 직접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엄마에게 털어놓으면 엄마가 아빠에게 나 대신 전해 주지요. 같은 이야기인데도, 엄마한테는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아빠한테는 말을 꺼내기 어려울 때가 있잖아요. 또 엄마는 여러분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을 뿐 아니라 아빠에게 좀 더 손쉽게 허락을 받아 내곤 하지요.


그런데 이것이 정말 엄마가 나보다 협상하는 능력이 탁월해서 그런 것일까요?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아빠 입장에서는 자녀들의 상황을 잘 모르다 보니 웬만하면 엄마의 생각에 따라 줄 때가 많을 거예요. 여러분도 그 점을 살짝 눈치챌 때도 있지요? 그런 일이 잦으면 ‘아빠가 정말 우리 집 대장이 맞나?’ 싶을 때도 있고요. 아빠의 허락과 동의를 받아야 되긴 하지만, 어쩐지 아빠의 허락은 형식적이고 엄마가 실질적인 대장인 것 같아요.



학자들은 이런 현상에도 이름을 붙였어요.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이 자식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 나가는 가정을 두고 미국의 인류학자 마저리 울프는 1972년에 ‘자궁 가족’이라고 불렀지요. 표현이 무척 흥미롭지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자궁 가족이 많아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효를 무척 중요시해 왔기 때문에 자녀들이 장성해서 효를 다하려 할수록 어머니, 할머니의 권위가 더욱 높아지지요.


그러니 가부장제 사회라고 해서 여성들이 늘 약자의 자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가족들에게 헌신한 만큼 시간이 지나면서 친밀감, 유대감, 존경이라는 보상을 받게 되니까요. 어머니나 할머니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 더 친하게 여기는 마음, 존경하는 마음이 모이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권위와는 다른, 어머니만의 고유한 자리가 생겨나지요.


하지만 자궁 가족은 가부장제 가족 안에서 여성이 살아남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는 한계가 있어요. 여성이 여성 자체로 존중받는 가족,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고르게 평등한 가족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지요.


가부장제와 자궁 가족을 살펴보다 보면 이런 의문이 들 거예요. 

“꼭 남자, 여자 둘 중에 한 명이 가족의 대장이 되어야 할까?”



아빠는 힘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은근한 왕따’인 경우가 많고, 엄마는 자식들에게 영향력이 있다고 하지만 자식을 앞세워 만드는 자리이니 상당히 불안정해요.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가부장제를 벗어나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려는 변화를 꾀하고 있답니다. 일본은 ‘일터와 가정의 균형 잡기’(work-home balance)를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변화하려 하고 있고, 싱가포르도 ‘가족은 팀워크’(family as a teamwork)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요. 이 정책들의 핵심은 남편, 아내, 아이 등 가족 구성원 각각이 팀원처럼 가족 안의 일을 분담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유럽의 대표적인 복지 국가 노르웨이는 ‘노동자와 돌봄자(worker-carer) 모델’을 실험 중에 있어요.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해요. 남녀 모두가 생계를 위해 밖에서 일을 하고, 또 모두가 가족 안에서 자녀나 부모를 돌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거예요. 바깥일과 집안일을 성별에 따라 나누지 않고 모두가 함께하는 것이지요. 집안의 대장도 따로 있지 않아요. 그랬더니 일터에서도 훨씬 더 생산성이 높아지고, 삶도 더 행복해졌다고 하는군요!


- 출간 전 연재 7회에서 계속됩니다. -


<출간 전 연재>

11월 6일 ~ 12일 동안 매일 하루 한편씩, 총 7화로 연재됩니다.


<이벤트!>

출간 전 연재를 읽고 도서에 대한 기대평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추첨을 통해 2분께 소정의 선물을 보내 드립니다.


▷이벤트 참여 : 11월 6일 ~ 13일

▷당첨자 발표 : 11월 14일 (당첨자 개별 댓글 연락)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지맘 2017-11-11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가 은근한 왕따라는 문장이 정말 현실적이고 와닿네요. 많은 가정에서 아버지는 집에서의 돌봄노동을 하지 않는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고, 밖에서 얻는 사회적 인정을 집에서도 바라죠. 이 점에 대해서 아이들와 이야기해 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네요.

스탯 2017-11-1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부장제와 자궁가족에 대한 통찰력 있는 해석만으로도 좋았는데, 팀워크가족같은 해결책까지 알려주시니 더욱 좋네요! 가족은 팀워크! 정말 멋진 말이예요. 싱가폴도, 일본도 하고 있다면 우리나라도 할 수 있을거라고 봅니다.ㅎㅎ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많이 전할게요.

cocoa 2017-11-14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들어서 페미니즘에 관심이가게 되어 이 책 저 책 찾아보고있습니다. 짧게짧게 올려주신 책 내용에서도 요목조목 잘 따져서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짚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자궁가족이라는 비유에서 저 역시도 공감이갑니다. 기대됩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