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사람, 남자 사람에 대한 오래된 질문, 새로운 대답!

혐오의 시대를 사는 청소년을 위한 젠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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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은 위대하다, 우리 엄마만 빼고?


어떤 사람들은 모성이 본능이라는 근거로 호르몬을 들기도 해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에 대해 들어 보았나요? 옥시토신은 출산과 모유 수유를 돕기 때문에 ‘모성애를 관장하는 호르몬’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호르몬은 만삭의 산모가 아기를 낳기 직전에 산모의 자궁에서 분비돼요. 자궁의 수축 정도를 조절해서 아기가 안전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돕지요. 출산 후에는 모유가 잘 나오도록 촉진하고요. 


옥시토신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쥐를 대상으로 실시된 실험이 있어요. 쥐의 뇌에 옥시토신을 주입하자, 출산 경험이 없어서 새끼 쥐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쥐가 새끼 쥐들을 돌보았지요. 이 실험을 보아도 옥시토신은 모성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여요. 게다가 여성의 자궁과 가슴에는 옥시토신 수용체가 있다고 해요. 옥시토신은 확실히 여성에게 더욱 특별한 호르몬인 것 같아요.



그럼 옥시토신은 일종의 ‘여성 호르몬’일까요?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어요. 옥시토신은 남성의 뇌에서도 여성과 비슷한 양이 분비되거든요. 옥시토신은 남성과 여성의 몸 모두에서 혈중 염분의 농도를 조절하고, 중추 신경계에서는 사랑, 학습 및 기억과 같은 정신적인 행위에도 관여해요. 모성애를 관장하는 것은 옥시토신의 유일한 기능이 아니라 여러 기능 중 하나인 셈입니다. 그러니 옥시토신만으로 모성애를 다 설명할 수는 없어요. 게다가 모든 엄마에게 옥시토신이 분비되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모성의 정도나 표현 방식이 다르잖아요.


옥시토신이 나온다고 해서 한순간에 슈퍼우먼처럼 엄마 역할을 척척 해낼 수는 없어요. 엄마 역할을 온전히 해내려면 호르몬의 도움뿐만 아니라 경험하고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갓 낳은 아기를 품에 안는다고 해서 아기를 어떻게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지까지 한 번에 꿰뚫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누구든 하나하나 배워서 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도 엄마만 할 수 있는 임신, 출산, 수유가 엄마와 자식을 특별한 관계로 만드는 것 아니냐고요? 맞아요. 힘들고 아프고 위험하지만,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여자와 남자의 큰 차이예요.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어요. 남자도 아내가 임신을 하면 몸에 변화가 생긴다는 거예요! 남자도 입덧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나요? 아내가 임신을 하면 아내를 따라 임신부처럼 체중 증가, 입덧, 음식 섭취 증가, 불면증 등의 증상을 보이는 남편들이 있어요. 이를 ‘쿠바드 증후군’이라고 해요. 임신도 하지 않은 남편이 입덧이라니! 정말 신기하지요.


더 신기한 것도 있어요. 꼭 쿠바드 증후군에 걸리지 않은 남자라도, 임신한 아내를 따라 몸에 변화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보통 남자들도 예비 아빠가 되면 체중이 증가하고 코르티솔과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 수치가 높아진대요. 이 호르몬들은 엄마와 아빠에게 아기의 울음에 더 잘 반응하고, 자신의 아기 냄새를 구별할 수 있게 한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요? 이에 대해 정신과 의사 정성훈은 2011년에 재미있는 해석을 내놓았어요. 남성들이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부러워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정성훈은 남성이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성의 마력에 매혹되어 왔으며 동시에 지독히 질투해 왔다고 보았어요. 여성이 피를 흘리며 낳은 아이는 평생 동안 어머니와 이어져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생명의 신비에 동참하지 못하니까요. 정성훈은 아버지와 아이의 관계는 사회적 제도로만 보장받을 뿐, 언제 부인될지 모르는 위태로운 관계라고 보았습니다. 요즘에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누가 아버지인지 명확히 알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직접 아기를 낳은 어머니만큼 확실할 수는 없지요. 조금 과감한 해석이기는 하지만, 이런 생각도 어딘가 일리 있어 보이지요?


어쩌면 남학생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분석일지도 모르겠네요. 힘이 되는 연구 결과도 하나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는 마세요. 이스라엘의 심리학 교수 루스 펠드먼은 대리모의 도움을 받아 자녀를 출산한 남자 동성애자 부부의 뇌와, 아이를 출산한 이성애자 부부의 뇌를 비교해 보았어요. 동성애자 부부와 이성애자 엄마는 모두 동일한 양상으로 뇌의 양육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었답니다. 반면에 아기가 있어도 육아에 별로 참여하지 않은 이성애자 아빠의 뇌는 달랐대요. 그러니까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자는 엄마와 동일한 방식으로 뇌가 활성화된다는 것이지요. 꼭 여자처럼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아도 육아 경험이 있다면, 아빠의 뇌도 엄마의 뇌와 비슷해질 수 있어요.



이러한 연구들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예요. 모성애나 부성애는 아기를 낳기만 하면 호르몬이 펑펑 나와서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빠가 엄마를 질투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엄마만 육아를 할 필요도 없겠지요? 모성이 본능이라는 믿음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해요.


- 출간 전 연재 5회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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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탯 2017-11-12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성도, 부성도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 핵심이 있다니! 모성애에 대한 환상, 성화로 고통받을 일도, 부성애는 있냐없냐 따질 일도 없는 확실한 결론이네요. 육아에 동참할 때 비로소 진짜 부모로서의 자격을 가질 수 있는게 아닌가싶습니다. 육아는 어머니, 아버지 모두가 책임져야 할 몫이니까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나유타 2017-12-1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필수적으로 딸려오는 것이라는 보편적인 생각을 깨우쳐주네요. 함께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정이 샘솟듯 사랑이 솟아나는것 같아요. 혼자 감당하기 보다 함께 해야 더 돈독해지는거겠죠.

비로그인 2017-12-2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성애 신성화를 제대로 뒤집어 주셨네요. 읽으면서 무척 통쾌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접하게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