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드라마나 영화를 잘 보지 않게 되었다. 내게 드라마나 영화는 그저 머리를 비우고 보는 휴식의 의미일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아마 아이를 키우면서) 등장인물의 상황에 과하게 몰입하게 되면서 그 감정들을 지켜보기가 버거웠다. 또 나는 멍 때리며 보고 나면 내용을 까먹는데, 남들이 주인공의 심리를 분석하고 복선을 찾고 개연성을 따지는 걸 보고 있자니 내가 학습부진아처럼 느껴졌다.그래서 예능만 보게 되었다. 몰입하지 않아도, 잠깐 놓쳐도 이해하는 데 아무 지장 없는. 아무 때고 나를 웃게 해줄 수 있는. (<무한도전>의 특집기획들은 예외였지만)남의 약점을 공격하고 희화하며 웃음을 끌어내던 프로그램들은 이제 그래서는 안 되는 시절이 되자 웃기지 못하게 되었다. 점점 이게 예능인지 다큐인지 모르겠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다. 그냥 연예인의 일상, 연예인의 여행, 연예인의 놀이를 보면서 웃음 포인트를 찾아야 했다. 혹여나 웃음을 놓칠까 봐 모든 대화와 상황을 자막으로 처리해주는 친절도 베풀어준다.이제 예능이 갖춰야 할 기본 미덕은 ‘웃음과 감동‘이 된 듯하다. 하나 더하자면 힐링까지. 그래서인지 전처럼 예능이 재밌진 않다. 어쩌면 요즘 재밌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나의 상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라디오를 켜듯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는다. 없으면 조금 허전하지만, 있어도 딱히 집중하지 않는. 그냥,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