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 옛이야기를 통해서 본 여성성의 재발견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오랜만에 책 읽을 여유가 생겼다. 논술과 관련해서도 아니고, 순전히 읽고 싶어서 읽었는데 자습 감독 서너시간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글이 특별히 아주 쉬운 것도 아니었다. 재미있어서라고 해야 하나. 요즘 전문적인 주제를 이렇게 자기 목소리로(즉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는 필자들이 많이 늘었다.
올바른 것, 명분 있는 것을 향해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본 사람들, 기존의 사회적 가치에 고지식할 정도로 충실하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더욱 와 닿을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잃은 것은 무엇이며, 과연 내가 추구했던 것들이 전부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면 더더욱.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감탄하고 혼자 웃기도 하면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을 만난다. 내가 애써 잊어버리려 했고, 스스로 하찮게 여겼던 것들이 가장 소중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인류사에 일찍이 존재했으나 지금은 먼지 쌓인 유물로 혹은 잊혀진 유전자로서만 흩어져 있는 여신의 시대, 어머니 대지인 가이아의 시대를 만나고. 양성성이 살아 숨쉬는 온전한 사회, 온전한 인간을 꿈꾸게 되었다.
아프로디테로 표현된 여성성의 생명력, 정면 대결하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자신을 찾아가는 여성적 가치를 만나고.
이분법으로 얼룩진 가부장제 경쟁 문화로 상처받고 시들어가는 생명력을 되살리는 여성성의 놀라운 힘을 바라보게 되었다.
신화에 등장하는 상반된 특질을 가진 트릭스터, 권위에 짓눌린 시대에 체면과 권위를 조롱하며 해학과 순발력으로 기존의 가치관을 뒤엎는 매력적인 존재 역시 내 안에서 되살아났다.
그러니 읽어갈수록 이 책은 마치 나 자신인 듯했다. 필자가 원한 것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남녀를 불문하고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있었으되 내가 모른척 버려두었던, 오히려 스스로 짓밟고 억눌러 상처 입혔던 어머니 가이아의 심장이 나의 일부로 찬란히 되살아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
마지막으로 책에 실린 재미있는 우화 하나를 옮겨 본다.
남성성의 논리와 여성성의 논리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 주는 단순한 우화가 있다. 어느 성인(聖人)이 지구 남반부에 있는 대륙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해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검은 정장을 하고 나와서 성인을 환영하는 모습이 보였다. 감동한 성인은 이들 모두에게 신의 은총을 내렸다.
그러나 대륙 가까이 다가간 성인은 자신이 은총을 내린 대상이 펭귄임을 알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하늘나라에서는 신학자들 사이에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다. 영혼이 없는 펭귄에게 은총을 내렸으니 이제 펭귄에게도 영혼을 주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쟁점이었다. 논쟁이 끝도 없이 지속되던 중 누군가 테레사 성녀에게 물어 보자고 했다. 성녀는 펭귄에게도 영혼을 주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보다는 조금 작은 걸로
이야기 속 성녀의 대답은 단순히 해결책만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그들이 심각하게 논쟁했던 문제가 사실은 매우 가볍고 사소한 것임을 지적한다. 불필요한 권위가 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유쾌하게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영혼을 주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 싸우고 또 싸우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 많이 존재하는 사회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우화는 조금만 유연함을 발휘하면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주제들이 사실상 가벼운 해답과 해결책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제 모든 것을 무겁게 만드는 그들의 엄숙함을 조롱하며 신나는 대안을 더 많이 찾아내고 당당히 추구해 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