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렇다. 목적이 있어서 사는데 그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살아내는 데 있다.” 말씀대로 살아 내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뚜렸한 길이 하나 존재하는데 “바로 예수님이 계시 하신 길이다.” 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바로 말씀이니까.

“예수님이 계시하신 길” 이란 무얼까. 이것과 “이 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세세한 일에 유심히 주목하는 작업” 이라는 “영성신학”과 어떤 관계일까?!

예수님는 결국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는데 이 길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을까?!

12월 책으로 선정된 “다윗, 현실에 뿌리 박은 영성”과 같이 읽을 책이다.

우리는 끝(end)에서 출발한다. "내 끝에 내 시작이 있다" (T. S.Eliot). 결말이 시작보다 앞선다. 우리는 먼저 종착지를 정한 다음여정을 시작한다. 우리는 앞두고 있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정보를모으고 상상력을 발휘한다. 삶은 삶이 목적(end)이다. 우리는 살기위해, 더욱 풍성히 살기 위해 산다.

기독교의 모든 신조와 순종, 증거와 가르침, 결혼과 가정, 여가와 일, 설교와 목회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살아내는 데 있다. 즉, 더욱 풍성히 사는 데 있다. 만일 목적지가 없다면, 우리에게 모든 길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목적지가 존재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삶이 우리 삶의 목적이라면, 거기에는 뚜렷한 길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예수님이 계시하신 길이다. 영성 신학(spiritual theology)이란 바로 이 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세세한 일에 유심히 주목하는 작업이다. 영성 신학은, 하나님 에 대한 정보로 추락해 버린 비인격화된 신학에 대한 항의다. 영성신학은, 하나님을 좌지우지하려는 전략적 계획 프로그램으로 추락 해 버린 기능화된 신학에 대한 항의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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