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인 A를 카페에서 만났다. A는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는데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합당해서 통합진보당이 될 때 받아들일 수 없다며 탈당했다. 그래도 국민참여당계에서 저지른 선거 부정의 책임이 언론에 의해 민주노동당계에게 뒤집어 씌워질 때 울분을 토했고 통합진보당이 해산될 때 안타까워했다. 지금은 당원은 아니지만 진보당을 지지한다고 했다. 진보당이 포스트모더니즘에 휩쓸려 신좌파 행세하는 꼴이 매우 거슬리지만 그래도 내년 대선에서 진보당의 김재연을 지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집권하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면서 민주당의 이재명을 찍을 거라고 했다. 그럴 가능성은 1%도 안 된다고 보지만 혹시나 이재명이 민주당 후보가 되지 못한다면 그냥 김재연을 찍겠다고 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B를 호프집에서 만났다. B는 전두환 때가 제일 살기 좋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대학물을 먹은 뒤에 B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혐오하게 됐다. B는 보수의 얼굴이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2012년 대선에서 B는 안철수를 지지했지만 안철수가 민주당의 문재인에게 양보해서 어쩔 수 없이 문재인을 찍었다고 했다. 2017년 대선에서 안철수를 찍었던 B는 내년 대선에서도 국민의당의 안철수를 찍고 싶지만 정권 교체를 위해서 국민의힘의 윤석열을 찍을 거라고 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윤석열이 국민의힘 후보가 되지 못한다면 그냥 안철수를 찍겠다고 했다.



그들의 정치적 신념과 어긋나는 선택이기 때문에 아쉬울 순 있어도 지금의 선거제도 밑에서 최악의 후보를 막기 위해서 차선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건 나름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찍는 게 민주주의란 얘기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생각이 결국 썩어빠진 두 기득권 정당 체제를 억지로 유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후보를 막기 위해서 차선의 후보에게 투표하기에 앞서 최선의 후보에게 투표할 기회는 보장돼야 한다. 지금의 선거제도 밑에서 확인되는 득표율로는 유권자의 정치적 신념을 확인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정치가 바뀌길 바란다면 정치인 개인보다 제도화를 통한 정치 개혁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선거제도가 개혁돼야 하는데 최선의 후보에게 투표할 기회를 보장하려면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선거에서 모두 결선투표제가 도입돼야 한다. 이미 프랑스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참고 대상도 있다. '선거제도의 이해'는 선거제도에 대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벌써부터 대선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는데 정치인 개인의 시시콜콜한 것들에 관심을 쏟을 시간에 이 책을 읽는 게 대한민국의 정치를 더 좋아지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선거제도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비례대표 확대를 주장한다. 나도 예전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독일 같은 연방국가가 아니어서 독일식 선거제도를 그냥 도입하긴 어렵다. 그리고 갈수록 비례대표제에 대한 내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비례대표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유권자가 계속 늘고 있는 것 같다.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유권자들은 비례대표제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렇게 된 건 비례대표 의원들의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비례대표를 없애는 게 낫겠단 생각을 하게 되는 유권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의 꼴을 보면 비례대표를 없애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선거법을 다시 바꾸는 게 어렵다면 지금보다 더 늘려선 안 된다.

 

내각제는 선거제도의 문제라기보단 권력구조의 문제지만 비례대표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내각제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같이 얘기해보겠다. 내각제는 유럽의 입헌군주제 국가들이 선출되지 않은 왕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그래서 총리가 왕 대신 행정을 책임지는 내각제는 비례대표제와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 왕은 없고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한민국에서 내각제는 검토할 필요가 없다.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절대 다수의 유권자들이 대통령제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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