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포럼이라는 다소 정체불명의 모임이 만들어낸 근현대사 교과서는 대안교과서란 부제를 달고 있다. 대안이란 말이 원래 지배이데올로기를 대체하기 위한 노력에다 붙인 좌파적 이름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참 아이러니다.

한국 사회를 근 오십년간 지배해온 세력이 불과 십년간의 자신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정치세력의 집권에 대해 느끼는 알레르기는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언어적 계열체에다 자신들의 노작?을 바치면서도 모순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깊다.

정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써낸 근현대사란 것도 대단한 아이러니다. 앙시앙 레짐의 시대 프랑스에서도 구지식인들은 이런 식으로 움직였을까. 남의 나라 사례가 궁금해진다. 학자가 아니라 교수들이라고 누가 옆에서 정정해준다. 교수들.

읽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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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2008-03-2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팀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반격이라 할 수 있다. 재인식 서문에 보면 이영훈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이 운운 하면서 환청을 들은 기록이 나온다. 대전제가 착각일 때, 객관성, 증거, 엄정함 운운의 그 학자적 양심이란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곳도 다 있군요. '나의 서재'라지만, 제가 만든 것 아닙니다. 저는 적응하려고 애쓸 따름입니다.--로쟈

내가 즐겨찾기 해놓은 첫번째 서재가 바로 이 로쟈님 서재다. 서재 설명글이 정말 내 생각과 꼭 닮았다. 나도 이렇게 써놓을까 하다가, 베껴쓰기에 뒤따라오는 해석의 결이 귀찮아서 그냥 저렇게(좋아하는 책이야기 하는 곳 서점, 필자, 독자에 대한 이야기도 틀림없이 할 곳) 평범하게 썼다.

알라딘 서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참 적나라하다. 그가 좋아하는 책들을 통해 가장 높은 정신에서 가장 낮은 취향까지 다 드러난다. 아, 그 반대인가? 어쨌거나! 무슨 상관이람. 다들 어쨌거나 책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가만, 책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말하고 쓰기의 정열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람들을 이렇게 대량으로 만나는 기쁨도 알라딘의 장점이다. 글과 사람을 매개해주는 것이 책이란 점에서 더 부담이 없다.  문제는, 난 요즘 쓰는 게 귀찮아서 죽겠다는 것.찜해놓거나 즐겨찾기 하거나 하려면 서재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좀 당황했더랬다. 만들어놓고 보니, 상당히 재미있는 사회생활이 될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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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쓰던 네이버 블로그나 최근 들어 둥지를 튼 야후 블로그하고 알라딘 서재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무래도 책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첫번째 리스트는 다행히? 구매리스트가 있었다. 이게 없었더라면 난 아마 책을 중복해서 사면서도 모르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그 리스트가 서재를 꾸미는 데 기초공사를 해주었다. 두번째 작업은 교보에 있는 구매리스트를 어떻게 옮겨올 것인가 하는 것과, 내가 산 책 또는 이미 가지고 있는 책과 아직 가지지 못했거나 읽지 못한 책을 리스트로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하는 거다.

리스트 만들 때 나나름으로 범주란 걸 만들었는데 흡사 보르헤스가 읽었던 중국사람 사전 같은 리스트지만, 어쨌든 지금 나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내겐 편리한 리스트. 그러나 요즘처럼 기억력이 꽝인 상태가 앞으로는 점점 심해질 것이 틀림없는 터에, 읽고 싶은 책과 이미 만들어놓은 범주들이 겹치는 부분을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가 문제다.

(발견했다. 코멘트 다는 란이 있더라. 아직 안 산 책 또는 안 읽었음 하고 표기해놓으면 되겠구나^^)

아침부터 책과 서재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내가 지난 삼십년동안 살았던 세계는 마지막 5년간을 제외하고는 책과 저자들 사이에서 헤엄치기였구나 하는 새삼스런 느낌이다.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건데, 시인이란, 자기 시의 생산자이자 남의 시의 독자이며, 시인들의 세계에 시인이 아닌 독자는 없다는 것이었다. 비평가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엄밀히 말해 시를 읽지 않는다. 이명원의 말처럼 시라는 도구를 통해 자기자신을 은폐하면서 드러내려는 또 다른 종류의 글쟁이들일 뿐. 시를 읽는 것, 남의 시를 읽는 사람은 시를 쓰는 사람들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쓰기라는 배고픈 일이 어쩔 수 없이 내 인생을 지배할 것이라는 막막한 예감에 눈물났던 적이 있다. 

배고픔. 난 한때, 정신의 곤궁과 영혼의 궁핍을 육체적 고통으로 착각한 일이 있다. 그래서 살이 쪘다. 아니다. 육체적 고통에 몰두하면 정신이나 영혼의 문제는 덜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 착각은 적어도 80% 정도는 유용하다. 몸이 아프거나 몸을 혹사하면 정신을 사용할 기회가 즐어든다. 일단 절대시간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 자신에게서 내면이 요구하는 허기와 갈증을 외화시킬 기회를 거듭 빼앗는다 해서 그 배고픔이 사라지나?

옆으로 살짝 샌다. 서재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도서관을 헤엄치는 착한 물고기가 된 느낌이다. 이게 한때 나의 꿈이었지. 책을 좋아하는 친구 두어 명과 창이 큰 방에 둥글고 큰 탁자에 둘러앉아 같은 책을 읽으며 나른한 오후의 햇살 속에 커피향 속에 앉아 조는 꿈.

평생 졸면서 살아놓고서 또 조는 것이 꿈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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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나의서재를 하나 만들어볼까 생각하게 된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지난 이삼년동안 내가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한 책들을 대강 세어보니 교보에서 구입한 책이 알라딘보다 다섯배는 많다. 직접 교보 가서 산 책까지 포함하면 아마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일요일마다 갈 데가 없으면 교보 가서 소일했던 덕분이다. 따라서 만든다면 교보문고에 만들어야 할 텐데, 여기다 만들려고 한 이유는 단순히 알라딘 서재를 이용하는 독서광들이 더 많다는 이유때문이다. 이제는 소수파의 취미가 되어버린 책읽기와 책이야기하기. 비록 더불어 수다떨면서 꺄아 이책 좋아 하고 수선을 피우지 않더라도, 내가 읽은 책을 틀림없이 읽었을 누군가들과 함께 한 공간에 거주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지.

어쨌든 그래서 마이리스트를 만들어보았다. 이미 구입한 책 가운데 목적성을 지니고 샀던 책들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묶어본다. 알라딘에서 사지 않은 책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좀 거북하다. 좀 있다 생각해 보기로 하고.

알라딘이 문을 연 뒤 처음 사용하던 메일 주소를 잃어버렸다.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왠지, 그때 샀던 책들까지 잃어버린 느낌이다. 정리벽이 별로 없는 나의 나쁜 습관을 교화하기라도 하듯, 기록은 사라졌다. 기왕 나의 서재를 만든 김에, 내가 가진 책들을 정리해서 올려볼까 싶다. 허공에다 매달아둔 나의 정신의 편력은 이삿짐 속에 이리저리 떠돌다가 고물상 아저씨의 리어카 속으로 책 그 자체가 사라진 다음에도 남아있겠지.

그나저나,

공부하지 않기로 한 다음에도 내가 이렇게 많은 책을 사고 또 읽었구나.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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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8-03-22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캣츠아이님 반갑습니다. 우연히 들어와 봤는데 눈에 익은 분이군요?!^^;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를 참 인상깊게 보고 배운바도 많습니다. 외람되지만 님의 수선이 기대됩니다. 그럼 담에 또 들르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고양이 2008-03-22 12:02   좋아요 0 | URL
푸하님, 제가 수선을 피고 싶다면 아마 푸하님과 함께라야 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