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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 외 지음, 정재곤 옮김 / 세상사람들의책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그라민 뱅크(Grameen Bank in Bangladesh)
언젠가 "Sothern innovation & Northern adaption" 의 일례로 소개된 그라민 뱅크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라민 뱅크는 담보가 필요 없는 소액대출을 통해 생활과 창업을 가능케 하였고, 집단적 연대책임을 통해 없는 사람들도 체납없이 빌린 돈을 꼬박꼬박 잘 갚아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담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금융기관의 위험도를 가중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늘이 열린 이래로 고리채 빼고 가난하고 담보도 없고 빽도 없는 사람들에게 돈 빌려 준적 없었는데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와 그라민뱅크는 그 일을 가능케 했다. 작년 유누스와 그라민뱅크는 그 동안의 빈곤구제 업적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비판들도 만만치 않다.
소액대출을 통해 가능해진 생활들이 - 볍씨를 사고 농사를 짓고, 마을에 우물을 파고, 닭과 염소를 키우고 그 소출로 자녀를 교육시키는- 여성들에게만 전가 되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문화와 더불어 남성들이 낮은 교육수준과 장기실업,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해 여성노동의 강도가 오히려 강해졌다는 비판이다.
한편, 소액대출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은 프로그램의 철학이나 가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자본주의 시장의 언저리에 속하게 할 뿐 소득재분배나 부의 재분배에 기여하지 못하는 비판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소득이 아니라 자산을' 늘여가야 한다는 이른바 자산개발정책 (Assets-based development policy) 전반에 걸친 비판과 교차된다.
자산개발?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사회정책이 소득보장정책(income security policy) 이라면 자산개발정책 (Assets development policy)은 소득보장정책의 미비점을 보완하고자 하는데 있다. 같은 소득이라도 주택이나 금융자산를 가진 사람이 경제적 안정성이나 사회적 만족감, 자녀 양육에 있어서 유리하다는 것이 많은 연구들에서 지적되고 있다. 퇴직, 실업, 건강상의 이유로 인해 소득이 없어지거나 불안정해질 경우의 충격을 막아주는 것이 자산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대도시의 중심지가 공동화, 빈곤화, 슬럼화로 마치 '제3세계화' 되어 간다는 상황인식은 기존의 대빈곤전쟁과 같은 사회정책적 개입을 역사적으로 꺼려하는 미국사회에 새로운 접근 방식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에 자산개발을 중심으로 한 사회정책들이 90년대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제도에 편입' 된다는 말은 속한것과 속하지 않은 것을 가르는 말이다. ''학교'라는 제도에 속한 사람과 속하지 않은 사람들, '시장'이라는 제도에 속한 사람과 속하지 않은 사람들 간에는 가치와 행동의 차이가 발생한다.
많은 경우에 이 차이는 속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고 속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차별로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자산개발중심의 정책은 '자본주의'에 배제된 사람들을 자본주의로 '편입' 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낯설지 않은 그림: 행동은 의도의 표현이다"
지금 세대에 가난한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다음 세대에는 가난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행동을 바꾸라고 과감히 이야기하는 IDA (Individual Development Account) 프로그램은 자산을 늘리는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은 '저축'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 엄밀히 이야기 하면 저축 그 자체 보다 저축하는 '행위'를 강조하는 것인데, 일정한 금액을 본인의 계좌에 저축하면 matching rate 에 따라 더한 돈을 프로그램에서 인센티브로 제공해서 프로그램 참여자의 저축행위(Savings behavior)를 장려하는 것이다. 아울러 집세, 제세공과금을 미룸 없이 제때에 납부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
계획된 행동'(Planned Behavior)은 행위에 대한 태도 (저축 하러 은행에 가는 것은 좋은 것이다), 주관적 규범 (저축은 해야 한다), 그리고 인지된 행동을 통제(사케 사는 대신에 저축해야 하는데)를 통해 형성된 개인의 의도가 표현된 것이다. 개인의 부적절한 행동과 그로 말미암은 부적적한 결과는 개인의 부적절한 의도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낯설지 않은 구도는 빈곤의 원인은 개인의 무책임과 나태, 부적절한 행동 때문이라고 당당히 주장한 엘리자베스 구빈법과 다름없을 수도 있고 행동은 의도에 개입함으로서 강화된다는 점에선 파블로프의 행동수정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의도와 행동을 둘러싼 맥락이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모든 프로그램은 의도와 행동에 영향을 주는 사회경제적 변수들을 고려해서 운영, 평가되고 있겠지만 미필적 고의를 넘어서는 희생자비난(victim blaming)은 대중적으로 드물지 않다. 근본적으로 자산개발중심의 정책들은 불평등의 뿌리에 대해 침묵한다.
에스핑-엔더슨의 분류에 따른 영연방국가들 -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에서 자산개발중심의 정책들이 널리 각광받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산개발중심의 정책들이 가진 정치경제학을 그대로 드러내는 예라 할 수 있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시장의 개입을 극대화 시키는 시장연계 사회정책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그러기에 자산개발중심의 정책은 명실상부하지 않은 사회정책이다. 사회적인 이름에 가려진 실제는 개인에게 강요된 자본주의 성공신화의 집단최면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 급 오르면 좋아하고 복권 맞는 상상도 하면서 자본주의 성공신화를 부정하는 것은 껌은 롯데~껌 하면서 자이리톨은 껌도 아니다 라고 하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자산개발 정책들의 효과는 단기적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혹은 다음세대에서 기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소액대출이라는 종자돈으로 심은 나무 한 그루처럼 말이다.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이 우리에게 드리워진 불평등의 그림자를 걷어낼지, 심은 한 그루의 나무가 쉬기 좋은 넉넉한 그늘을 마련해 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는 것 자체도 기득권이라고 했으니 가지게 되면 이해관계가 생기고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분투한다. 그중에서도 내집마련은 주류사회의 문턱을 넘고 자기의 진지를 구축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교육, 인종, 건강, 소득,차별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게으름 등의 이유로 빈곤의 올가미에 걸린 사람들이 합리적 선택과 정책을 통해 빈곤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와 전망을 가지고 한푼 두푼 하나씩 쌓아나가 마침내는 전망 좋은 창가에 앉아 옛일을 이야기하거나, 우리 부모는 가난 했지만 나에게 자활의 의지를 가르쳐 주어서 드디어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는 한담을 나누는 장면은 자산개발정책이 추구하는 쉽지 않은 해피엔딩 스토리의 한 장면이다.
오늘 아침도, 문득 눈떴을 때
우리 집이라 부를 집이 갖고 싶어져
세수하는 동안에도 그 일만 공연스레 생각했지만
일터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 후 차 한 잔 마시며, 담배를 피우노라면
보랏빛 연기처럼 자욱한 그리움
하염없이 또 집 생각만 마음에 떠 오른다. --------
하염없이 또 서글프게도
장소는, 기찻길에서 멀지 않은
푸근한 고향 마을 변두리 한구석 골라 본다.
서양풍의 산뜻한 목조 건물 한 채
높지 않아도, 그리고 아무 장식 없어도,
넓은 계단이랑 발코니, 볕 잘 드는 서재------
그렇다, 느낌이 좋은 안락한 의자도.
이 몇 해 동안 몇번이고 생각한 것은 집에 관한 것.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바뀐 방 배치 등을
가슴 속에 그려 보면서
새하얗게 바랜 전등 갓에 시름 없이 시선을 모으면
그 집에 사는 즐거움이 또렷이 보이는 듯,
우는 애 옆에 누워 젓 물리는 아내는 방 한구석 저 쪽을 향해 있고,
그것이 행복하여 입가에 속절없는 미소마저 짓는다.
그리고, 그 마당은 넓게 하여 풀이 마음껏 자라게 해야지
여름이라도 되면, 여름날 비, 저절로 자란 무성한 풀잎에
소리내며 세차게 흩뿌리는 상쾌한 기분.
또 그 한구석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심고
하얗게 칠한 나무 벤치를 그 밑에 두어야지------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은 그곳에 나가
저 연기 그윽한 향 좋은 이집트산 담배를 피우면서,
사오 일 간격으로 보내오는 마루젠의 신간
그 책 한페이지를 접어 놓고,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꾸벅꾸벅 졸기도 할 테지
또 모든 일 하나하나에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넋 잃고 듣는
동네 꼬마애들을 모아 놓고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줘야겠지------
하염없이 또 서글프게도
어느 사이엔가, 젊은 날에 이르러
세월 사는 일에 지쳐만 간다.
도시 거주자의 분주한 마음에 한번 떠올라서는,
하염없이 또 서글프게,
못내 사무쳐 언제까지고 지워 버리기 아까운 이 생각
그 많은 갖가지 못다한 바람과 함께
처음부터 덧없는 일인 것을 잘 알면서
여전히, 젊은 날 남 몰래 사랑을 속삭이던 그 시선으로
아내에게도 말 못하고, 하얗게 바랜 전등 갓을 응시하고서
나 홀로 살그머니, 또 열심히 자꾸만 마음속에 되새겨 본다.
(이시가와 타쿠보쿠,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