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된 만화가, 이현세 - 우리시대 마이스터 2
이현세 지음 / 예문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이.현.세.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나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영화도 그 당시 큰 성공을 거두며 흥행에서도 승승장구 했었다. 원작만화도 읽어보지 않은 채, 언니 손잡고 처음으로 영화관 나들이를 한 영화가 바로 <공포의 외인구단>이었고, 상당히 어린 나이임였음에도 큰 감명을 받아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난다.(나중에 나이가 들어 그의 원작을 접했는데 그 감동의 임팩트는 영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의 눈에 배우의 연기나 영화의 만듦새가 보였겠는가. 그저 큰 화면에 펼쳐지는 장면들이 신기하고, 지고지순한 까치의 슬픈 사랑에 눈물 흘렸을리라. 그러나 그때 내 나이 정도인 내 조카가 지금 그런 액션을 선보인다면.. 나는 아마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고 코웃음 치지 않을까. ^ ^;

어쨌거나 <공포의 외인구단> 이후로 '까치'는 만화가 '이현세'를 말하면 자연히 함께 떠오를 그의 분신이자 동반자처럼 각인되었다. 붓으로 찍어낸 특유의 까치머리는 이현세 만화의 가장 강렬한 캐릭터이자 상징이 되었고, 더불어 그의 작품 대부분엔 까치 오혜성과 엄지, 마동탁이 시대와 역할만 달리할 뿐 단골 주연배우로 출연했다. 그래서 한 때는 다른 이름의 주인공을 만났으면 하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했었는데, 역시~ 이현세의 만화에서 까치가 없으면 고무줄 빠진 팬티요, 팥소 없는 찐빵처럼 왠지 허전한 건 어쩔 수가 없더란 말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 주었지만 이현세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매작품 새로운 소재와 시도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갔으며 남들이 하지 않은 분야를 개척해 나가기도 했다. 현대물과 시대물, SF와 스포츠 영역까지 그의 작품들을 돌아보면 거침없이,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는 작가 이현세를 만날 수 있다.

 

<신화가 된 만화가, 이현세>는 그간 출간됐던 그의 작품 이름을 내세운 10 개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대중적으로 이현세라는 이름을 알리게 된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 <활>, <천국의 신화>, <국경의 갈가마귀>, <남벌>,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블루엔젤>, <아마게돈>, <지옥의 링>, <카론의 새벽>이 그것인데 각자 그 작품에 얽힌 비화와 함께 만화가로서 겪었던 에피소드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 중 특히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천국의 신화>에 대한 법정시비 이야기였다. 지난 세월동안 만화를 천시해 온 우리 사회에서(사실 지금도 만화의 위상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만화가로서 겪어야 했던 온갖 수난들은 둘째치고, <천국의 신화> 사건은 우리 사회가 만화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한다.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거라던 편견을 뛰어넘어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성인만화의 태동은 우리 만화가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논란거리였고, 그 와중에 검찰은 마녀사냥처럼 '음란죄'라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죄목으로 <천국의 신화>의 만화가 이현세를 법정에 세웠다. 6년 여의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고 그는 자유로워졌지만 그동안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고. 100권을 목표로 시작된, 우리의 상고사를 다룬 <천국의 신화>는 법정싸움과 함께 멈춰서 버릴 수 밖에 없었고, 그 동안 작품에 대한 열정과 시선 등이 바뀌어져 우여곡절 끝에 재연재를 시작했지만 원래의 의도했던 방향과는 많이 달라졌단다.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점은 가장 절정의 꽃을 피울 수 있는 40대를 그렇게 저당잡힌 것이 아닐까 한다. 만약 처음 의도대로 <천국의 신화>가 단군부터 발해건국까지 100권을 모두 채워서 출간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할수록 짙은 아쉬움만 배어나올 뿐이다. 

또한 <아마게돈>에서는 애니메이션 <아마게돈>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 당시 열악했던 우리의 애니메이션 현실이 다시 한 번 안타까웠고(사실 요즘이라고 별반 더 좋아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영화 <아마게돈>의 실패로 인한 후폭풍이 상당했다던 기사가 떠오르며 씁쓸했다. 작가의 바람대로 처음부터 TV시리즈물로 나왔더라면 좀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더불어 애니메이션으로 준비중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 <별빛속에>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현재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중인 천계영의 <오디션>은 몇 년째 개봉이 미뤄지는 상황이라 그 앞날이 걱정스럽다;;)

 

만화와 함께 한 지 30여년. 그간 그는 만화계가 겪어야 했던 온갖 좋고 나쁜 일들과 동고동락하며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그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나라 만화계의 질곡의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를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은 '대중적인 만화가'라고 지칭하는 이현세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훌륭한 만화가이지만 여전히 겸손하다. 자신에게 지적되는 문제점들을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안다. 또한 대본소를 통해 만화가 유통되던 시절, 문하에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분담체제로 작업을 하는 '만화공장 시스템'을 운영한 작가로서 그에 대한 문제점과 책임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만화가 이현세. 만화가 라는 길을 걸으며 그로 인해 행복했던 날들과 힘들었던 날들이 있었을 거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만화가고 만화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는 한 열심히 만화를 그릴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좀 더 오래, 좀 더 많은 작품을 보여주길 바래본다. 더불어 그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을 위해 이젠 술도 좀 줄이시고 건강관리 잘 하시라 당부드리고 싶다.

신화가 된 만화가,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적인 만화가 이현세.
이 시대에 그가 있어 기쁘고 행복하다. ^ ^

 

- 먼 길을 갈 때면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가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늘 자전거를 타고 가는 느낌이다. 페달을 노흐면 자전거는 그 자리에 선다. 꾸준히 밟지 않으면 멈추고 만다. 누구에게 의지할 수도 없다. 혼자 힘으로 줄기차게 페달을 밟아야 한다. 그렇게 힘차게 밟을수록 자전거는 더 빨라지고 힘도 덜 든다. 그래서 내 인생은 자전거와 닮았다. 어지간히 열심히 밟지 않으면 멈출 수 밖에 없었기에 쉬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먼 길을 넘어지기 싫어 달리고 또 달렸더니 여기까지 왔다.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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