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 > 문장과의 그 질기디 질긴 사투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물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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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산문을 읽지 않았던 건, 아주 오래 전 잡문 수준의 '산문'을 '산문'이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비판했던 글을 읽은 영향도 있었다. 결국 난 산문을 좀 폄하하는 편견에 사로잡혔고, 이 책을 읽었을 때 이제라도 산문을 폄하해서는 안되겠다는 반성도 하게됐다. 그만치 이 책은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사실 산문도 글을 쓰는 수준이나 취향이 제 각각이라 내가 좋아할만한 수준의 책을 고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 정도라면 고급한 산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작가의 깊은 사유와 사물에의 성찰이 돋보인다. 작가 자신은 무교라고 말하지만 불교에 꽤 심취해 있는 것 같다. 이 만한 문장을 구가하려면 얼마만한 책과 깊이있는 사고를 해야하고, 문장과의 질기디 질긴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일까 의문스러워지기도 한다.

물론 일시적이긴 하지만, 어떤 글은 읽고 있으면 내가 글을 쓸 때 언젠가 모르게 그 문장을 흉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남의 것을 정령으로 하여 쓰고 있을 때 묘한 안정감이 느껴지곤 하는 건 뭘까? 결국 글발도 무당처럼 신이 내려야 쓴다는 말이 맞는 얘길까? 하지만 나는 이내 그 정령을 떨쳐 버리고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 과연 문장이 누구의 것을 흉내내서 될 일이란 말인가? 잠시 흉내는 낼 수 있어도 내것으로 도용하거나 차용할 수는 없다. 누구는 누구 같이 쓴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문장은 그 사람의 생각을 표현해주는 도구일 것이다. 나는 알라딘 서재를 쓰면서 내 글이 참 많이 허접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정리도 안된 글들을 마구 토해낸다. 어떤 땐 내 스스로의 글에 창피함을 느끼고 앞으로 안 쓸까도 생각해 본 때도 많이 있다. 내가 산문에 관심을 갖으려한 것도 어떻게 하면 내가 내 글에 책임을 지고, 조금이라도 나은 글을 구사해 볼까 얍삽한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선우의 문장을 대하면서, 문장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사람처럼 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문장은 사유의 깊이에 비례할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때론 문장이 사유의 깊이를 쫓아 갈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작가들은 피를 말리는 문장과의 사투를 서슴치 않기도 하는 거겠지.

작가에게 있어서 문장을 다듬는다는 건 어떤 글을 쓸 것이냐 못지 않게 자기 살을 깍는 아픔과 같은 것이리라.

무엇이 산문 정신일까? 좀 더 심사숙고 해 볼 일이다. 단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문장의 명징함과 유려하다 못해 장중함 또한 느껴졌고, 사유의 깊이에 천착하는 작가의 성실함에 마음 속 깊이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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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Just Do It 아니 Just Read It
탐서주의자의 책 -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사.철 기록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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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작년만해도 나는 그를 일주일에 한번씩 볼 수 있었다. 모 지상파 방송 독서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러로 나와 그 시간에 다룰 책에 대해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참 인물이다 싶었다. 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날카로움 또한 가지고 있어 젊은 패기가 느껴진다.  그의 직업이 하도 다양해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 많은 직업을 통폐합해 '매문가(賣文家)라고 규정한다고 한다. 매문가라. 나는 그를 출판칼럼니스트로 알고 있었는데...하지만 그는 기획도 잘한다. 매문가답게  이 한권의 책을 어떻게 하면 독자로 하여금 읽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그나름의 실력을 한껏 발휘했다.

책에 대해 또 그 책의 저자에 대해 독자가 흥미롭게 느낄만한 부분들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매끈하게 뽑아냈다. 역시 그답다란 생각을 했다. 내가 흥미를 느낄만 첫부분은, 일본의 작가 가네하라 히토미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일본의 주요 문학상을 거머쥔 작가인데,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교 등교 거부를 했다고 한다. 문제아는 문제아였나 보다.

내가 그녀를 흥미롭게 느꼈던 건, 나 역시 학교를 지독히도 싫어했었기 때문이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 툭하면 학교를 빼먹어었더랬다. 그런데 우리 엄마 그것에 대해 별로 나무라는 기색이 없었고, 선생님 조차도 왜 학교에 오지 않았냐고 지적하신 적이 없었다. 여느 엄마나 선생님 같았으면 몽둥이 들고 야단을 치고, 선생님은 왜 안 나오는지 면담을 하자고 했을텐데, 나는 왜 그 시절 엄마와 선생님이 그걸 묵인해 왔는지 가끔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독서를 본격적으로 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내가 책 읽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고 생활통지표에 그렇게 적었으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4학년 때부터 책에 빠져있었다는 걸 알면 도대체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적으셨는지 궁금하기 짝이없다.

4학년 때부터 책을 읽었고, 6학년 때 상습적으로 결석을 했으니, 그 많은 남아 돌아가는 시간을 무엇으로 매꿨겠는가? 바로 독서만이 나의 힘이었던 것이다. 테오도르 몸젠은 독서삼매경에 빠져 자기 머리가 불에 타들어 가도 몰랐다고(266p)하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어도 틈만나면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 때 책을 읽었다. 그때는 내가 생각해도 집중력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많이 읽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워낙에 느리게 읽는데다가 정독을 해야했기 때문에 나는 그 쉬는 시간까지도 책을 읽지 않으면 진도가 안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지금도 난 통독은 몰라도 속독법을 그다지 선호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 그렇게 속독을 해서 머리에 남아있을까 해서 말이다. 모름지기 독서의 능력은 사유와 함께 깊어지나니!

중학교 시절 <만딩고>란 영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는 모르겠는데, 책으로나와 한창 선전을 하고 있었는데, 꽤 괜찮을 것 같아 아버지께 그 책을 사겠으니 돈을 달라고 했다. 그때만해도 나는 일일이 아버지께 용돈을 타 써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딸이 뭘 사는데 얼마를 쓰겠으며 하물며 책을 사는 것조차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야 했다. 근데 왜 하필 그때 아버지는 책 제목을 물으셨던 걸까? 그런 적이 거의 없으셨는데. 그리고 나는 순진하게도 곧이곳대로 말씀을 드려서 결국 그 책을 사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 책은 소위 말하는 검열 대상의 성인 소설이었던 것이다.

사실 아버지는 검열대상의 책일지 모르나, 나는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에 버금가는 책일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 책은 아마도 지금 살 수 없으니 확인이 불가능해졌으리라. 그 검열 대상의 책이 나와서 말인데, 그 시절 하이틴 로맨스가 붐을 이루어었다.

중학교 2학년 땐 선생님은 어느 날 갑자기 소지품을 다 책상위에 올려 놓으라고 하시더니 그 검열 대상의 책들을 다 압수해 가셨다. 그때 나도 한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 거기엔 야한 장면은 하나도 안 나온다. 그것을 반장 아이를 시켜서 거둬가버리니 나는 "야, 그 책 왜 가져가?"하다 선생님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그런데 그 시절 동시에 T. H 로렌스의 책이 나왔다. 그의 책이 어떤 책인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리라. 명작이다. 근데 국어 선생님은 그 책을 읽는 나를 범상치 않은 눈으로 바라보셨다. 독서 수준이 높다는 거다. 야하기로 치자면 그게 더 야했는데 나는 그 책을 압수 한번 안 당하고 버젓이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읽었던 것이다. 읽고난 느낌은 아름답다란 인상 밖에는. 아마도 성애에 대해 로렌스만큼 아름답게 쓰는 사람은 없지 않나 싶다.

검열 대상의 책은 도색 잡지 밖엔 없다고 생각하는 게 나의 지론이다. 어느 날 막 사춘기에 접어든 오빠가 도색잡지를 방안에 숨겨둔 걸 엄마한테 발각되었다. 그것도 오빠가 없을 때, 사실 사춘기 때 도색잡지 한 번 안 보고 자란 남자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이건 정말 검열 대상이다. 근데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을 얘기한 하이틴 로맨스가 검열 대상의 책이라니. 그 기준이 너무 애매모호하지 않나?

이 검열 대상의 책이 국가의 감시체계하에  놓였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80년 대 민주화 때 공산주의를 표방한 책들은 모두 '불온한' 책으로 분류됐으니 책의 수난 시절이지 않은가? 지금은 그런 책들은 서점 한귀퉁이에 놓여 주인을 찾아가길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국가는 일개의 소녀가 하이틴 로맨스를 읽건 말건 관심도 없는데, 이 불온 서적이 영원히 사라지느냐 마느냐가 더 중대사안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책은 죽지 않았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책의 종말을 예견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하다.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무슨 SF 영화를 본적이 있었는데, 내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장면은 주인공이 서기 몇 천년 인지도 모를 미래에 왔다. 시대는 정말 유토피아 그 자체였는데 한가지 의문은 책이 없고 도서관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찾아 헤메고 헤메다 지나가는 청춘 남녀 한쌍에게 왜 여기엔 책이 없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그 둘은 갸웃거리며 그걸 찾는다면 박물관을 가 보라고 하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주인공은 박물관을 갔다. 정말 들은대로 거기엔 책이 있었다. 근데 그 책을 집어든 순간 그 책은 바싹마른 나뭇보다 못하게 건드리는 순간 가루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시대는 더 이상 책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주인공은 그 시대를 한탄하며 울분에 못이여 그 책들을 박살을 내고만다. 공중엔 가루가 된 책들이 흙먼지처럼  뿌옇다. 나는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정말 그런 시대가 오면 어떻게될까?

내가 20대 초반만 하더라도 책장에 책이 쌓여가는 것이 너무 좋아 책권수를 세었더랬다. 20대 후반으로 접어 들면서 400권 넘어가는 것을 세고 더 이상 세지 않았다. 그중 이사를 앞두고 오래된 책들은 버릴려고 했는데 교회 친구가 버리지 말라고 해서 약 150권 정도를 덜어주고 그러고도 지금까지도 나는 정확히 몇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박스에 넣어둔 책들 상태가 어떤지 알 수다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 책들을 다 읽었느냐면 반도 채 읽었을까 말까다.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오는 누구처럼 한 개인이 5만권 넘게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집 한채에 해당하리만치 귀한 희귀본만을 밝히는 그런 사람도 못된다. 그래. 난 역시 책이 좋아 책을 사서 모은다. 엄마는 그 책 좀 갖다 버리라고 성화시다. 난 도무지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다 없다.

내가 앞으로 몇년을 더 살 수 있으며 몇권까지 책을 사 모을 수 있을까? 이젠 책을 사 모르는 것도 부담이 된다. 압사당할까 봐 겁이난다. 그래도 책을 사 모으는 건 중단하지 못할 것 같다. 이만하면 나도 탐서주의자가 될 수 있으려나?

오늘도 나는 신문에 난 책기사들 알라딘의 서재 주인장들 중 잘쓴 리뷰들을 부지런히 긁어 모은다. 막상 사서 읽지도 못하면서 책을 사 모르는 것만큼 그 책을 읽고 소화하는 처리속도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큰 일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모으는 것이 남는 것인지 읽는 것이 남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래도 후자쪽이 아닐까?

* 이 책은 수니나라님이 이벤트 때 선물하신 책이다. 다시한번 수니나라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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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코마개 > 일상의 너절함, 그러나 어쩌랴 그게 현실인걸
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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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화가 울린다. "어, 왜?" "개명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법원에 개명허가신청 내서 허가를 받아야지."
"그거 쉽냐?" "아니 쉽지 않지. 이름을 바꾸려는 이유가 뭔데?" "애가 밥을 안먹어서 점쟁이가 이름 바꾸면 밥 잘먹는다 그랬대." "뭐?? 택도 없는 소리하네. 그런걸로는 죽었다 깨도 개명허가 안나."
"너 아는 판사 없냐?" "있어도 그게 그 사람한테 배당되지도 않고, 안된다니까." "그래도 말이라도 해주면..."

항상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무슨 일에 처하면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떠올린다. 닭털같은 나날은 바로 이런 „œ시(關係)에 관한 이야기다. 중국에서는 모든게 과계로 요약된다 한다. 관계로 문제가 생기고 관계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래서 사업을 하더라도 이 관계가 없으면 실패 한단다.

이책의 주인공 임(林)은 집에서 너무 멀리 출근하는 아내의 직장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부국장에게 '관계'를 이용해 로비하고, 임의 고향사람들은 그가 북경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출세를 하였다 생각하여 온갖 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관계로서 임을 찾아오고, 임의 스승은 북경의 병원을 소개해 달라고 임과의 관계를 이용하며, 임은 그의 딸을 원하는 유치원에 넣기 위해 이웃의 관계를 이용한다.

정말 너절하게 살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데 너절하다고 비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내가 결혼 준비하면서 우리 시어머니가 이용한 '관계'를 생각해 보자.
맨 처음 한복을 맞추러 간다 했을때 나에게 당신의 시집 동서의 올케가 하는 바느질 집에 가서 하자 했다. '아는 사람'이니 더 잘해 줄거라고. 동서의 올케를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두번째 예물을 맞추러 가자 할때는 당신의 고등학교 선생님의 같은 성당에 다니는 대녀의 금방에 가서 하자 했다. 아는 사람이니 싸게 해줄거라며. 결국은 후진 디자인에 바가지 옴팡썼다.
세번째 예식장을 고르러 가자 했을때 동네 예전 시의원하던 사람이 하는 부페가 있는데 아는 사람이니 가자 했다. 잘해 줄거라며. 다를거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코트 하나 산다 했을때 동네 아줌마의 딸이 모피 공장을 하는데 거기 가서 사면 쌀거라 주장했다.
보험 하나 든다 했을때 교회에 아는 집사님이 보험 회사 다니니 잘해 준다 했다.

닭털 같은 나날은 이런 너절한 이야기를 마치 남 얘기처럼 능청 스럽게 풀어가고 있다. 그리고 조금 안스럽게까지 하다. 관계가 잘 풀리지 않자 임이 홀로 밤에 벌이는 행위는 글쎄...이걸 슬프다 해야 할지.

그날 저녁 아내와 아이가 잠든 뒤, 그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주 어두운 밤에 스스로 따귀를 때렸다. "너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냐! 너는 왜 이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냐구!" 그러나 그는 아내가 깰까 걱정이 돼, 세게 때리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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