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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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마다 텅 빈 아쿠아리움을 청소하는 70대 할머니 토바와 아쿠아리움에 사는 거대태평양문어 마셀러스. 수조를 탈출했다가 전선 더미에 몸이 끼인 마셀러스를 토바가 구해 준 다음부터 둘은 비밀스러운 우정을 키워간다. 마셀러스는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지능을 가진 문어이지만 아쿠아리움의 좁은 수조에 갇힌 신세인 데다가 살날이 160일밖에 남지 않았다. 토바는 아들과 남편을 잃고 고독에 침잠하여 살아가고 있는 노부인이다. 인간과 문어, 너무나 다른 이 두 존재는 어디인지 모르게 닮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앞에 껄렁해 보이는 30살 남성 캐머런이 등장한다. 인간의 지문과 열쇠의 패턴을 모두 기억하여 구분하고 유전자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마셀러스는 토바가 전선에 얽힌 자신을 구해 주었던 것과 같이 과거의 아픔에 얽매여 있는 토바를 구해 줄 수 있을까?

 

이 책은 인간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부분은 내지가 일반적인 하얀 종이인 반면 마셀러스가 화자가 되는 장에는 색깔이 있다.(내가 읽은 것은 가제본이라 옅은 회색인데, 실제로 출판된 책에서는 더 예쁜 색일 것이라 믿는다.) 전자에서는 현실적이고 보편적이지만 흥미진진한 인간사가 빠르게 전개된다면, 똑똑한 문어 마셀러스가 독자에게 말을 거는 부분은 그러한 일상을 낯설게 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며 우리에게 짜릿한 깨달음을 준다. 독자는 이러한 소설의 호흡에 녹아들어 어느 순간 하얀 페이지를 읽을 때에도 마셀러스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하게 된다.

 

"완벽하지 않고 엉망진창인 인간들이 비슷한 문제로 얽히고설켜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쿠아리움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실제로든 비유적으로든 어딘가에 갇혀 있거나 무언가에 얽매여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켰습니다." (pp.7-8, 한국 독자들에게 중)

 

이 책은 작가 셸비 반 펠트의 데뷔작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전달하고자 의도한 바를 이렇게 잘 표현해냈다니 놀랍다.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이라는 제목과 표지만 보아서는 꼭 박물관이 살아 있다처럼 마법 같은 세계가 펼쳐지는 판타지 소설일 것 같지만, 사실은 너무나 평범하고 지나치게 일상적인 사람 사는 이야기가 내용의 주가 되는 소설이다. 아들과 남편을 잃고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청소에 전념하며 살아가는 할머니,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해고당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해고를 당하다가 동거하던 여자친구의 집에서 쫓겨난 캐머런, 작은 마트를 운영하며 동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수다 떠는 것을 낙으로 삼는 할아버지 이선까지. 어쩌면 모두 어떤 영화의 조연으로 등장할 법한 별볼일 없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거기에 한 스푼의 낯섦을 추가하는 것이 괴팍하지만 매력적인 문어 마셀러스이며 이 소설의 매력이다. 퉁명스럽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문어 마셀러스를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를 법하다.

 

평소에 두꺼운 소설책을 찾아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만큼은 뒤 내용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아직 출판되지 않은 책이 내 손에 들려 있다니 처음에는 신기하고 들뜨는 마음이었는데, 가제본 서평단이 이렇게나 가혹한 일이었다니. 이렇게나 중요한 시점에 이야기를 끊어버리다니... 아침 드라마보다 더하다. 호락호락한 두께는 아니지만 작가가 의도한 바와 같이 따뜻하고 유쾌한 이야기이기에 손에서 놓을 새도 없이 가볍게 읽힌다. 읽다 보면 어느새 미소가 피어나고 위로가 되는 신기한 소설이다. 토바와 캐머런이 각자 원하는 해답에 닿을 수 있을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우리 마셀러스의 탈출 시도는 계속될지 무척 궁금하니 서점에서 이 책을 마주치는 분들은 꼭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비매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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