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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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공감은 훼손되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느낄 때 

당신은 가장 무지한 상태일 수 있다.

 

책의 뒤표지에 적힌 문구입니다. 묵직하고 강렬한 제목, 그리고 한국장애인인권상을 수상한 작가의 책이라는 말에 끌려 서평단을 신청했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길보라 작가님에 대해 검색해 보았고, 이전에 쓰신 책들도 꼭 읽어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어디까지 공감할 수 있을까요? 그 누구도 100% 같은 인생과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니 어쩌면 공감이라는 개념은 판타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정말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요? 많은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제목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첫째는 다수에 속하지 못한 소수자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착각, 그리고 둘째는 자신이 그 고통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이길보라 작가님은 당사자의 시선에서 쓰이고 찍힌 작품들을 소재로 진정한 공감을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시각과 감수성을 제시하고 연대의 힘을 강조합니다.

 

긍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납작하다라는 표현을 참 좋아합니다. ‘너의 의견은 충분히 입체적이지 못해. 좀 더 다각적으로 생각해 봐. 고차원적으로, 깊이 있게 생각해 봐.’라고 할 때는 모호하기만 하던 것이 그건 납작한 생각이야!’라고 할 때 더 충격적으로 와닿았던 경험이 있거든요. 단순하고 직관적인 표현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해준 말입니다. 내 생각이 납작한 거였다니! 자존심이 팍 상하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많이 읽고 공부할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말입니다. 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이 단순하고 납작한 착각을 넘어설 때인데요. 작가님은 책의 제목과 프롤로그의 제목만으로 이미 독자 한 명을 사로잡으셨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와 르포·에세이 문학을 지도 삼아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익혀왔다. 좋은 작품들은 다름과 상실, 고통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고통을 납작하게 바라보기보다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배웠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단순하고 납작한 착각을 넘어설 때 비로소 더 깊고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 (pp. 10-11)

 

이길보라 작가님은 작가로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서, 또 코다로서 자신의 경험을 풀어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농인과 코다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작가님이 경험한 농인 사회와 청인 사회에서의 경험을 시작으로 이 책은 미나마타병 환자들, 재일조선인, 미등록 이주아동, 재일조선인, 페미니스트, 장애학생 부모, 이동권 투쟁을 하는 장애인, 전쟁 난민에 이르는 다양한 집단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2부에서는 창작자로서 작가님이 겪은 고민들과 함께 로드스쿨러, 가족 제도, 가부장제, 영 케어러, 여성 정치, 기후 위기 등의 의제를 다루는 작품들을 소개하며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매체는 작가가 사랑하는 르포, 에세이 문학과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뒤표지에 빼곡이 적힌 작품들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이 많은 작품을 다 다룬다고?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책을 덮은 지금은 작가가 사랑하는 작품에 나온 목소리들을 엮어 진정한 연대로 이어지는 훌륭한 한 장의 지도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적 다큐멘터리에 대한 마지막 꼭지의 내용이 인상 깊습니다.

 

이제는 안다.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형식적 분류로 나의 영화의 가치를 폄훼할 수 없다는 것을. 애정하고 지지하는 사적 영화가 관습과 체제라는 어렵고 복잡하고 감히 건들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개념을 가장 거세게 흔들 수 있는 도구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pp. 201-202)

 

사족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저는 선천적으로 왼쪽 귀의 청력이 없습니다.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는 한쪽 귀가 안 들리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 큰 불편함이 없어서 다행이라고요. 나도 아예 불편하지 않은 건 아닌데, 큰 불편함은 뭐고 작은 불편함은 뭐지? 어렸을 때에도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매년 3월 담임 선생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리 배정 때마다 짝꿍의 왼편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이 사실을 알았지만, 굳이 학급 전체에 알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대학교에 가기 전까지 한 번도 저 스스로와 장애인을 연결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학교 때 우연히 장애 인권에 대한 스터디를 하며 처음으로 나는 장애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어요. 그제야 청각장애인의 기준을 검색해 보고, (국가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제가 청각장애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묘한 기분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열정적으로 썼던 글은 엉성하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아끼는 글 중 하나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몇몇 이야기에 저의 경험이 어느 정도 겹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분명 어느 정도의 불편을 동반하지만, 매 순간 고통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저는 집에서 가족들과 있을 때는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저의 상태를 알고 습관적으로 제 오른편에서 서거나 제가 잘 못 듣는다 싶으면 조금 소리를 높여 말해 주니까요. 이는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당연한 규칙이기에 미안함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친한 친구 몇 명과의 모임에서도 마찬가지이고요. 하지만 매번 새로운 반, 새로운 학교,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는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왼편에 앉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편지를 쓸 담임 선생님은 이제 계시지 않습니다. 특히 시끄러운 공간,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이야기하는 회식과 같은 상황에서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합니다. 대화의 절반 정도는 알아듣지 못한 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방금 한 말이 웃어도 되는 말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다 보면 귀에 대한 이야기를 편히 꺼내지 못하는 제 자신이 미워질 때가 많습니다. 지금 여기서, 이 사람에게 저 사실 왼쪽 귀가 안 들려요말을 해도 될까, 너무 놀라거나 당황하면 어쩌지,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는 것도 싫은데.... 진 빠지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곤 합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왠지 제 이야기도 하고 싶어져서 풀어놓아 보았습니다.

 

다큐멘터리도, 르포도, 에세이도 모두 누군가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이길보라 작가님은 그런 면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이를 조각조각 잘 정리하여 멋진 한 권의 책으로 우리 앞에 가져다 주신 것 같습니다. 무거운 주제일 거라 걱정했었는데, 명쾌하고 가끔은 유쾌한 작가님의 필력에 책장이 술술 넘어갔습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 문제과 당사자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싶은 모두가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와 르포·에세이 문학을 지도 삼아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익혀왔다. 좋은 작품들은 다름과 상실, 고통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고통을 납작하게 바라보기보다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배웠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단순하고 납작한 착각을 넘어설 때 비로소 더 깊고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 - P10

그들 사이에서 우리 부모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보라네 부모님’이었다. … 내가 속한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모님의 얼굴은 사라졌다. 눈썹과 얼굴 근육을 움직여 말하는 ‘보라네 부모님’이 아니라 가정 설문지 내의 ‘고졸’ ‘자영업’ ‘특이사항: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 P19

"우리는 모두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이 고통은 우리 자신의 다른 경험들에 대한 부정을 뜻하지 않는다." - P50

모국어는 "근대 국민국가에서 국가가 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가르쳐 국민으로 만드는 장치로 기능"하며 "모어와 모국어가 일치하는 경우는 국가 내부의 언어 다수자들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어느 곳이든 모어와 모국어를 달리하는 언어적 소수자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 P57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라는 말 사이에 지워진 존재를 바라본다. 모어와 모국어 사이의 간격이 끝도 없이 벌어지고, 모국어가 가지는 권력이 모어가 가지는 권력과 판이하게 다를 때 벌어지는 일을 마주한다.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인 미국 시인 오드리 로드는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썼다. 나는 모어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모어와 모국어를 오가며 기존의 집을 무너뜨린다. - P59

나는 부모의 농(Deafness)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들리지 않는 게 뭐 어때서, 말 못하는 게 뭐 어때서, 대신 우리는 수어로 말해, 눈으로 세상을 읽어. 그러나 파트너의 우울증에 대해서는 함구해왔다. 그의 우울은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그의 남성성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 P75

앤드류 솔로몬은 "가족은 차이를 둘러싼 관용과 불관용의 시험대이며, 차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이런 과정이 강조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시급한 장소"라고 쓴다. - P91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누구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재현해왔는지 묻게 된다. 전쟁에 대한 논의와 담론을 전유해왔던 남성의 시각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자 당사자, 여성이자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전쟁을 말함으로써 무겁고 거대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전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보편적인 관계성을 통해 전쟁을 말하는 행위는 곧 가장 개인적이면서 가장 정치적이다. - P108

학교 밖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했다. 글을 썼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그 과정을 책으로 엮었다. ‘로드스쿨러’(Road-shooler)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학습공간을 넘나들며 공부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청소년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다. - P116

주관적 자아와 객관적 자아 사이를 오가며 나와 세상 사이의 연결 고리를 발견할 때 이야기는 비로소 사회적 담론이 된다. - P127

작가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에서 "나는 효자가 아니라 시민"이라고 선언한다. 아버지와 나는 부모와 자식이 아니라 시민과 시민으로 관계 맺을 것이며 자신의 돌봄이 비가시적인 소모가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P148

정치하는 사람은 타고나지 아니한다. 몫을 찾기 위해 택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여성은 몫을 찾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한다. - P160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그레타와 같은 다음 세대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그런 어른들에게 그레타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대멸종이 시작되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음 세대가 바꿀 수는 없다고 말이다.
- P166

그러나 언제까지 이들은 결정권이 없는 다음 세대이자 청소년, 청년이어야 하나? 대멸종의 시대를 살아갈지도 모르는 이들이 권력을 가지고 의제를 선정하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 문제에 있어 그 누구보다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그레타가 환경부 장관이거나 대통령이어야 한다. - P169

멋진 작품을 만날 때면 가슴에 손을 얹게 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내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홀로 살아가며 섬의 변화를 기록하는 행위가 도리어 가장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꺠달았다. - P178

정수은 감독과 함께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라는 여성 신진 감독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 남순아 감독은 유독 여성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로 분류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담론과 연결되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지적하며 "사적 다큐멘터리라는 분류는 젠더화되어 있으며, 은연 중에 그 다큐멘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덜 중요한 것’ ‘사소한 것’으로 만든다"고 쓴다. - P193

김옥영 작가는 "좋은 다큐멘터리는 ‘좁은 창구멍을 통해 넓은 세계를 내다보는 것"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를 다룬다 하더라도 ’나‘의 현실이 얼마나 ’우리 모두의 현실‘을 환기할 수 있느냐, 얼마나 문제의식을 확장할 수 있느냐에 그 성취가 달려 있다"고 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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