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뮤지컬
이수진 지음 / 테오리아 / 202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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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관극 횟수 20 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뮤린이입니다. 

통장 사정상 아직은 대극장 뮤지컬이나 유명한 작품 위주로만 보고 있지만 

보고 싶은 작품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한가득 쌓여 가는 중입니다. 

뮤지컬을 10 번 정도 보고 나니 '나의 취향'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갈피가 잡히더군요. 

아무리 넘버가 좋고 멋진 배우가 나오는 유명한 작품이라도 

스토리라인이 탄탄하고 메시지가 의미 있지 않으면 만족도가 확실히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만의 취향을 찾아 헤매고 있는 뮤덕으로서 이런 뮤지컬 소개서는 몹시 반갑습니다만 

책장을 넘기기 전 이런저런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첫째, 내용 소개와 스포일러의 경계를 잘 지키고 있는가? 

둘째,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간략한 줄거리와 기본 정보 나열에 그치지는 않는가? 

셋째, 감상이 충분히 깊이 있고 의미 있으면서도 미래의 관극 경험에 지나친 영향을 주지 않는가? 


기대 반 걱정 반 책을 펼친 뒤 짧은 작가의 말을 읽고는 

얼마 전 관극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부분으로 바로 넘어갔습니다. 

스포일러를 경계하는 편이기도 하고, 극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니 작가분의 시선이 궁금했지요. 

그리고 그 꼭지를 후루룩 읽어 버린 뒤 앞선 모든 걱정이 의미없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비기독교인으로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솔직히 어려운 작품입니다. 

배경 지식이 부족한 데다, 성스루 뮤지컬이다 보니 덜 친절한 편에 속합니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지저스에 대한 태도와 그 동기를 이해해야 

작은 몸짓과 마디마디에 숨겨진 메시지들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첫 관극 때 이해도가 60%였다면 두 번째에서 85% 정도로 올라간 느낌이었는데요, 

이 책을 읽고 남은 15%가 속 시원히 채워졌습니다.

제가 찾아본 이 작품의 어떤 줄거리 요약보다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하고 깔끔했으며, 

관극 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인물의 감정선을 쉽게 풀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음으로서 제가 느끼는 뮤지컬의 작품성까지 한껏 올라 갔습니다.



그렇게 이전에 봤던 작품의 꼭지를와 나머지 작품들에 대한 부분도 모두 읽었습니다. 

그 다음 든 생각은 이 작가님이 쓰신 다른 글도 전부 읽어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의 일부는 제목도 들어보지 못한 고전에 가깝지만 

그마저도 모두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글 솜씨입니다. 

작품의 배경 지식과 줄거리를 사족 없이 알차게 풀어내면서 

독자가 그 넘버를, 나아가 그 작품과 그 배우, 그 창작진을 궁금해하게 만듭니다. 

특히 작품 속 여성 캐릭터와 그 의의를 짚어내는 부분을 읽으며 

이런 2차 콘텐츠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문정 감독님, 정성화 배우님의 추천사가 한 자도 틀리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책입니다.

또한 각 뮤지컬의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넘버를 꼽는 대신 

작가가 사랑한 한 곡만을 중심으로 뮤지컬의 본질을 풀어나가는 구성도 너무나 완벽했습니다. 


뮤지컬을 향해 보내는 작가님의 러브레터를 내내 훔쳐 읽고 싶은 기분입니다. 

뮤지컬에 입문하고자 하는 관객부터 뮤지컬 애호가까지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면 뮤지컬을 더욱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객석에 처음 앉았을 때, 막이 오르기 전의 두근거림을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슬프게도 공연을 보면 볼수록, 이 두근거림은 점점 줄어든다. 두근거림이 사라진 자리에 취향이 자리잡는다. 나는 바로 그 즈음부터 나 자신을 씨어터고어로 인식하게 되었다. 꾸준히 평생 극장에 가는 사람. - P5

수업이 끝난 교실에서 혼자 칠판에 끄적여 보는 소심한 사랑 고백 같은 글이다. 훗날 온갖 공연 프로그램 책자들과 공연 음반들 사이에서 발견될 고백. 뮤지컬이여, 받아주시기를. - P6

인간의 입장에서 유다와 마리아는 예수의 마음속 분량을 두고 싸우지만 둘 다 그의 마음을 얻기에는 실패한다. 육신을 떠난 예수는 다시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리니 말이다. - P40

이 노래에서 광대를 들여보내라는 가사가 반복될 때마다 데지레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며 상대방과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을 계속해 나간다. - P53

대부분의 뮤지컬에서 이토록 강력한 노래들은 대대로 남성 인물들의 전유물이었다. 여성 인물 하나를 두고 사랑의 라이벌이 되어 대립할 때나, 전쟁을 치르거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울 때 등, 대치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노래들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두 여성이 각자의 다른 애정관을 두고 물어뜯기라도 할 듯이 자신의 사랑법이 옳다고 주장한다. - P79

누구보다 큰 질곡을 겪으면서도 쓰러지지 않은 강한 인물이건만 송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그를 망가뜨리면서도 사랑한다고 부르짖던 그 사람들의 시선 안에 갇힌다. - P115

그리고 이 노래 ‘롤라의 세상‘은 롤라가 세상을 향해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포효하는 노래다. - P132

크리스티안이 눈먼 사랑을 노래할 때 사틴은 사랑이라는 말에 삶 그 자체를 담았음을 크리스티안이 어찌 알까.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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