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키우는 방법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89
테리 펜.에릭 펜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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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를 몇 장 넘기지 않아 '아, 그분들 책이구나' 하고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림책 덕후이지만 훌륭한 작가님들의 이름을 바로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까지는 아직 오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 선입견 없이 표지를 넘기다가 그림 속에서, 이야기 속에서 익숙한 흔적을 발견하였을 때의 반가움은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어쩌면 약간의 무지는 더 큰 반가움을 주는 것일까요?


한창 상수역 어느 그림책 카페의 단골이던 시절 매번 손이 가는 책이 있었습니다.

<한밤의 정원사>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아이와 함께 멋진 나무 조각에 감탄하게 되곤 했지요.

그때 본 나무들이 이 책에서도 보이더군요.

나무에 풍성히 피어난 반듯한 나뭇잎의 모양이 작가의 사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멋진 일인지!

테리 펜, 에릭 펜. 펜 형제의 <구름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리지처럼, 저 역시 설명서에 적힌 마지막 주의사항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때가 다가와서야 어렴풋이 깨닫고 페이지를 되돌아가 설명서를 다시 들여다 보게 되죠.

펜 형제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호흡과 방식은 이렇게 숨쉬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만듭니다.


리지는 평범한 구름을 데려와 다솜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이제는 특별해진 그 구름을 정성껏 보살피죠. 

사실 리지는 구름을 좁은 곳에 가둔 적이 없습니다.

리지의 방은 똑같은데, 구름이 점점 자라 방이 좁아졌을 뿐입니다.

구름이 자라는 걸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비를 쏟아 붓고 잠시 작아진다 한들, 구름은 계속 자라날 겁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내줄 때를 아는 것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갈 사람은 가는데, 보내는 이가 영영 보내주지를 못하는 경우도 많지요.

원치 않는 이별 앞에서 사람의 마음은 울며 떼 쓰는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다솜이와의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작은 리지가 참 대단하고 대견해 보입니다.


이 책은 마음 속에 어린아이를 품은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줍니다.

연필 자국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그린 듯한 무채색의 그림도 포근한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 대 사람의 이별뿐 아니라 붙잡고 있던 시간을 놓아주는 일과도 통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별이란 무엇 하나 쉽지 않지만, 함께 보낸 시간과 기억은 어느 곳에나 있는 구름처럼 우리 곁에 머물 것입니다.



덧붙여,

길거리 간판들에 숨겨놓은 북극곰 출판사의 낯익은 이름들이 반가웠습니다.

다만 리지와 다솜이라는 이름의 번역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다솜이의 원어 이름을 그대로 쓰기에는 영 이상했던 걸까요?

다솜이라는 예쁜 우리말 이름을 만들었다면, 리지에게도 새 이름을 붙여 주면 어땠을까요.

작은 아쉬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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