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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핵심 강의 - 최소한의 중국 인문학
안계환 지음 / 나무발전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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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중국인은 왜 실리에 강한가’라는 질문과, ‘현대 중국의 기원을 만나다’라는 표식이 있다. 그러니까, 저자는 ‘왜 중국인들은 실리에 강하지?’라는 질문을 가지고 중국사를 탐구하다가, ‘오늘은 현대 중국의 기원을 만나게 되었어’라는 말을 일기에 쓰는 것으로 탐구를 마친다는 말이다. 저자의 시작하는 말을 보면 이 책의 목적이 ‘중국인이 가진 인문주의와 실용주의 정신은 어디에서 왔는지’에 있다고 한다. 이제, 다시 표지와 시작하는 말의 맥락을 합쳐 보자면, 저자는 ‘중국인이 가진 인문주의와 실용주의 정신’과, ‘현대 중국의 기원’, 그리고 ‘중국인의 실리’를 주제로 잡고 있는 듯 하다.




이렇게 저자의 의도를 처음에 이해하고, 그 후로 ‘왜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데요?’라고 질문하고, 그 이유를 듣는 과정은 재미있다. 중간 중간에 ‘음, 그 생각은 좀 아닌 것 같은데.’라던가, ‘오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즉 ‘대화하듯 책을 읽는 것’ 이다. 강의는 이러한 방법이 정말 필수적인 정보 전달 방법이다. 강연자가 혼자 수업하는 강의는 별로 재미가 없다. 그 강의 속에서 청자는 강연자가 주입하는 모든 정보들을 흡입하는 스펀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 고등학교 때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를 생각해보면 쉬울 것이다. 도발적인 질문과 논리적인 대답은 오만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돕는, 열린 창이다. 그리고 인문학의 목숨과 같은 것이다. 오랫동안 인문학자들은 책을 통해 그 창을 유지하려 노력해 왔다. 그 외의 부가적인 사실들은 기본적인 상식 외에 팩트 체크를 할 때 필요할 뿐이다. 그러한 부가적이면서도 상당히 전문적이어야 하는 사실은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팩트 체크는 최대한 정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점점 읽으면서 이 책의 목적이 자신이 가진 질문을 해결하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중국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 전달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시작하는 말’을 보니,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말 알뜰하게 쓸모가 많은 중국 핵심 지식들을 모아 두었다고 자부합니다.’ 그 순간, ‘아, 이 책은 알쓸신잡의 중국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인문학적 마음보다는 상경학적 마음으로 쓴 책이 된다. 경영학 교수님이, 내 사업계획서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렇다면, 네가 이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말이야, 지금껏 나온 동업계의 다른 사업들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으며, 그 메리트는 어디에서 나오는 거냐?’ 그러니까, 이 책을 입문자를 대상으로 했다고 가정하고, 알쓸신잡의 깊이로 내용을 구성했다고 했을 때, 이 매체는 종이책이기 때문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므로 가지고 있었던 알쓸신잡의 정보 전달 방법과는 다를 것이다. 이 때, 종이책의 매력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로 하여금 그 종이책을 소유하고 싶게 만들 것인가?


읽으면서 이 책은 차례와 내용의 구성을 통해 그 길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목차를 보면, 그래도 살면서 한 번씩은 들었던 말들이 차례에 있다. 청나라의 역사보다는 공자가 있었던 춘추가 친숙하고, 마르코 폴로도 어디에서 한 번씩은 들어 봤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정확히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소유한다면, 조금은 알지만 구멍이 숭숭 뚫려 있던 지식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는 이 방식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우연히 마주한 어딘가의 대화에서, 공자에 대한 지식을 꺼낼 때가 올 때, ‘어 나 그거 알아’ 하고 그 대화를 더 들어보거나, 그 때 이해가 잘 안 되었던 부분을 대화 과정에서 질문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지식을 소유하는 방식으로는 알 수 없는 인문학의 중요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pp. 408 ~ 409 를 보면, 공자가 연애 이야기인 시경을 좋아했으며, 그 모습이 ‘요즘 관점에 따르면’ 체통이 떨어져 보일 수는 있지만 인간답다고 기술되고 있다. 


엄숙하게만 느껴지는 「시경」이라는 시집에 남녀 간의 사랑을 나누는 시가 첫 머리에 실려 있다니 놀랍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가 이런 사랑의 노래를 책에 실었다는 게 우리의 기존 관념을 깹니다.(...) 음악의 명인이었던 공자는 거문고나 비파 등 당시 악기를 뜯으며 이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요즘 관점으로 보면 조금 체통이 떨어져 보이기는 하지만 훨씬 편안하고 자연스럽지 않은가요?


pp. 408 ~ 409

여기서 요즘 관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만약 공자가 힙합을 했다면 유학자로서 섬길 작정이 아닌가? 아니, 기본적으로 학자는 왜 체통을 지켜야 하는가? 학자는 그렇게 고고히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또한 결과적으로 아무 근거 없이 이 책은 공자를 두둔하고 있다. 만약 이 두둔의 이유가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두둔해왔기 때문이 아니라면, 저자는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공자 두둔은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이 사실 법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은 진정한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 체통이 떨어지는지 떨어지지 않는 지는 인문학 강연에서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왜 유학을 창시한 공자가 연애 이야기를 중시했냐는 거다. 유학과 연애가 어떤 연관이 있는 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강연자의 몫이다. 인문학 강연자는 청중으로 하여금 인문학의 세계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인문학의 세계에서 한 인간의 체통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의 생각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생각이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 지도 중요하다. 저자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날개에 썼듯, ‘역사 속에서 세상을 읽는 통찰력’을 전달하는 것 말이다.



정말로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인문학의 깊이 또한 진정으로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그 깊이는 관심 없는 친구들은 잘 모르게 된다. 좀 오랫동안 기다려야 나오는 게으르지만 사랑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랑스러움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관심 없는 친구들에게도 알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관심 없는 친구들은 참을성이 부족하다. 이득이 될 것 같지 않으면 빠져나간다. 그러니까 인문학 강연자의 인문학 세계로의 흥미로운 인도는 필요하다.

 

지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수동적이어야 하는가, 능동적이어야 하는가. 문제는 그 과정에서 ‘옳은 것에 대해 정말 옳은 지’, 즉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옳은 지’에 대한 겸허나 숙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것을 그다지 허락하지 않는다. 이 세상 알쓸신잡이 그렇듯이 말이다.


다시 한 번 외치고 싶다. 인문학은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정말 중요한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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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핵심 강의 - 최소한의 중국 인문학
안계환 지음 / 나무발전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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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안에 다 있다. 

가장 나쁜 놈도, 가장 선한 자도, 

가장 슬픈 이야기도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도...

1. 어릴 적, 집에는 고우영 만화 시리즈가 있었다. 삼국지, 초한지, 십팔사략, 심지어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열국지까지 모두 있었다. 특히 초한지를 좋아했다. 아무도 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우영 화백의 그림 속에서 그려진 이들은 다들 결점이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그 결점 가득한 사람들이 하는 짓들을 보고 웃고, 울고, 싫어해 보기도 하고, 좋아해 보기도 하면서 '나'를 확립해 갔던 것 같다.


그래서 중국 '역사'는 나에게 이야기의 근원지에 가깝다. 덕분에 서양 신화를 공부할 때 '서양의 친구들도 비슷한 관점이겠거니..' 하면서 그들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근원지는 생각보다 깊다. 절대적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항우가 한신의 계략에 빠져 물소용돌이에 휩쓸려 가는 것 마냥 무력하게 죽어갈 때의 감정은 아킬레우스의 삶과 함께 이야기되어져야 하지 않을까.

2. 학교에서 배운 중국 신화도 매력적이었다. 추석 때마다 경험하는 '차례'는 조상신을 섬기는 의례다. 그 조상신이 어떻게 신이 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은 유교 자체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왜 유교문화권의 사람들은 신을 '특별한 존재'로 캐릭터화하지 않고, 자신의 조상으로 생각했을까? 기독교의 입장에서 왜 유교의 조상신은 '잡신'인가? 동양에서 역사적으로 구축해 나간 신의 모습은 무엇인가? 즉, 극동아시아의 신에 대한 관념은 무엇이었을까?


3. 학교 특성상 외국인이 많은 편이다. 특히 팀플을 하면서 중국에서 오신 교환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겉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인지는 짐작할 수 없다. 나는 심지어 입학했을 때 한 중국 학생에게 건물을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국어로 말이다. 당연히 한국 사람인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영어 관련 교양 시간에, 대만에 대한 주제가 나왔었고, 그 수업에는 중국인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 중국인 학생은 수업 주제에 대해 하는 학생에게 화가 난 듯이 반박했다. 그 때 느꼈다. 우리가 보는 세계에 대한 시각과 그들이 보는 세계에 대한 시각이 다름을. 그들의 반박에 반박하거나, 찬성하기 이전에, 적어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성해보니 ‘중국’이라는 나라는 가까이 있었지만,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중국어를 하면서 학교 계단을 뛰어 내려가도, 그냥 나와 비슷한 사람이겠거니 마음대로 생각했다. ‘당연히’ 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족 친구들의 정체성은 명확한 ‘중국인’이었고, 그저 할머니/할아버지 중 한 분이 조선인이었을 뿐인 적이 많았다. 분명 내가 몰랐던 세상이었다. 궁금했고, 더 알고 싶었다.

이 세가지 이유가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였다. 한 교양 강좌를 학점 없이 청강으로 듣는 느낌이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질문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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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일요일들 - 여름의 기억 빛의 편지
정혜윤 지음 / 로고폴리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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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고 선하신 하느님은 세상을 6일 동안 만드셨고, 마지막 하루 쉬셨죠.
일요일은 그런 날입니다. 완벽하고 선하신 하느님이 쉬는 날.
어쩌면 행복과 선이 일치하는 기적같은 날일지도 몰라요.
그런 기적은 '완벽한 행복'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행복은 있을까? 나는 어려웠어요. 행복의 완벽함은 늘 영원하지 못하잖아요. 하느님의 기적도 하루 뿐이었죠. 그렇다면 결국 완벽하지 않은 거 아냐, 헷갈렸거든요. 그 친구는 수녀님이 되겠대요. 수녀님은 매주 일요일마다 나를 돌보아 주셨죠. 그 친구는 일요일이 되고 싶었나 봐요. 친구와의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아요. 세면대에 빨려들어가는 물처럼, 뱅뱅 도는군요. 원은 영원하죠.


질문을 따라 기억들이, 의문들이 돌고 돌아요.


이번 주 내내 세면대의 물처럼 빙빙 돌다가, 이해했어요.


나는 완전히 실패했어요. 마지막 문고리의 입장마저도 닫혀 버렸어요. 나는 빈 집을 바라보죠.
이보다도 완벽한 실패는 있을 수 없어요.
행복 말이에요. 행복의 문이 닫혔고
이 곳은 깜깜해요. 이 곳은 내 관입니다. 장례식이 필요하겠군요.
나지막히 누군가 말하죠.
실패에 완벽을 붙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자다.


하지만, 어쩌면 내 실패마저도 완벽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드문드문 나는 완벽하게 행복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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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바다
쿄 매클리어 지음, 캐티 모리 그림, 권예리 옮김 / 바다는기다란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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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면 패턴은 조금 독특하다. 10시에 자지 않으면 잠이 영영 오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은 10시 안에 끝나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잠에 잘 들지 못하는 편이다.
 
내가 태어나서 첫 번째로 한 거짓말을 기억한다. 의사 선생님이 어젯밤 무슨 꿈을 꾸었냐고 물으셨고, 아마 그 꿈이 끔찍했던 것 같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다 속에서 돌고래를 타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들킬 것을 조마조마 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 때 그 꿈 이야기보다 어떻게 내 어린 팔뚝에 주사 바늘을 꽂을 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다행이었다.
 
왜 하필 돌고래였을까, 아마 돌고래를 타고 바다를 쏘다니면 좋을 것 같았나 보다. 어린아이의 꿈에 적절할 거 같았다. 물속에서 보는 햇빛은 참 예쁘니까. 어쩌면 그게 내 첫 환상, 내 첫 꿈이었다.



이 동화책의 매력적인 부분은 ‘나쁜 놈’이었던 바다가 어떻게 평생 한 사람의 기억 어딘가에 아름답게 자리를 펴고 앉는지 이야기해준다는 점에 있다. 동화 속 주인공 소녀가 스스로 사는 별을 상상한다면 아마 어딘가에는 그날 갔던 그 바다가 햇빛에 반짝여 찰랑, 대고 있을 것이다. 동화를 읽으면서 그런 기억들이 났다. 내가 바다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리고 그 펄떡거리던 생생한 기억들이 어떻게 퇴색되어 갔는지.
 
실컷 바다에서 놀다가 몸이 달달 떠니 아빠가 안아 줬던 기억, 튜브에 둥둥 떠서 얼굴을 찡그리며 맑은 하늘을 봤던 기억, 파도 넘기를 하느라 그 백사장에서 엎어져서 모래를 먹고, 짠물을 먹고.. 그래도 막 웃었던 기억. 밤에 뽀송하게 몸을 말리고 텐트에서 수박이랑 컵라면을 먹었던 기억.



내가 이 동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바닷물 한 컵만 가져가려는 주인공을 오빠가 말리는 장면이다. 아니, 이 세상에 바닷물이 얼마나 많은데, 가져가면 뭐 어떤가. 하지만 오빠는 끝까지 말리고, 주인공은 결국 가져가지 않는다. 이상한 고집이다. 하지만 덕분에 주인공의 ‘고유의 바다’는 영원히 그 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다를 가질 방법이 기억밖에 없는 소녀는 그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소중히, 꺼내보았다가 다시 넣고, 그렇게 간직할 것이다. 사람은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앞에서 내가 이상한 불면에 시달린다고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불면을 벗어나는 방법이 요즘 생겼다. 바로 햇빛으로 조금 데워진 따뜻한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사람들이 막 뭐라고 말하면서 웃고 있고, 햇빛은 나른하고, 딱 좋으니까, 나는 더 깊은 바다로 간다. 그 곳에서는 다큐에서 본 예쁜 해마가 새끼를 대동하고, 은갈치떼도 있고, 바다거북도 있고, 그렇게 점점 어두워지고, 말미잘이 나를 감싼다. 나는 흰동가리의 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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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일요일들 - 여름의 기억 빛의 편지
정혜윤 지음 / 로고폴리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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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그러고 보니 진짜 일요일을 산 지 오래 된 것 같다.
일상적인 삶이라는 건 육체적 노동 뿐만이 아니라, 감정적 노동도 큰 법이니까.


나는 약간 집순이 기질이 있어서, 일할 때에나 놀 때에나 집에 가고 싶어하는 버릇이 있다. 불을 하나도 켜지 않은 깜깜한 방 안, 침대 위에 처박혀 있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침대 위에서 딱히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마음껏 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문득 심심해지면 보고 싶은 영화를 달달구리한 것을 먹으면서 보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 카카오닙스를 올린 바나나 자른 건 요즘 내가 푹 빠진 달달구리다.


친구들은 이러한 나를 존중해서, 술을 마시러 나가는 불금에는 굳이 나를 부르려 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너무 좋지만 나는 이렇게 해야 에너지가 충전 되는 것 같아' 라고, 이렇게 글로 쓰는 것은 잘하지만 말로는 표현을 잘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으로서는 다행인 일이다. 친구들은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고, 나는 침묵으로 푸는 것이다.


하지만 바빠진 요즘, 한 번에 한 가지 일 밖에 못하는 나로서는 너무 힘들어졌다. 자주 피로함을 느낀다. 개강 때문인지, 나가야 할 모임도 많고, 사야 할 책도 많고, 기숙사에 필요한 물건들도 사야 하고, 1학기와 달리 한 강의당 예습을 위해 일주일에 봐야 할 책들도 많아졌다. 택배도 받아 와야 하고(택배는 왜 이렇게 오지 않는 것인지), 다시 보낼 것도 많고, 요즘 부쩍 추워져서 옷도 사야 하고. 아, 이 전공책들은 왜 이렇게 비싼가. 책을 어떻게 하면 가장 싸게 살 것인가, 옷은 어디가 예쁜가, 립스틱 색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살도 빼야 하는데, 돈은 얼마나 써야 하는가, 그런 고민도 많다. 그렇다. 나는 원래 생각도 많고 빨리 피곤해지는 성격이라,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고달파 한다. 게다가 해야 할 일도 많다. 학교 외로 따로 공부하고 있는 책들도 빨리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리가 아파진다. 으아아..


이럴 때면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는 나 자신을 재촉하면 재촉할수록 되는 일이라는 것은 없다는 교훈이다. 그리고 둘째는 지금까지 잘해왔으므로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짐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나 같은 베짱이에게는 정말 중요한 생각이다. 내가 경상대를 다니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내 삶을 정리하는 법이다. 분류하고, 대안을 제시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이끌어 내는 것. 이거 하나는 교수님 지도 아래 잘 배웠다. 이전에는 힘들어하기만 하다가 포기하기 일쑤였기에.


그리고 '일요일'은 반성이랄까, 그런 것들을 하기 딱 좋은 날인 것 같다. 그 날이 딱 일요일이 아니라도 상관 없다. 비는 날이라면, 언제든지 괜찮을 것 같다. 왠지 공기도 맑은 것 같고, 약속도 없는 그런 좋은 날, 베짱이인 나를 침대로부터 끌어 내서, 정리해 보는 것이다. 내 삶이 지금껏 어떠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책을 읽어 보고 싶은지, 지금 당장은 뭘 하고 싶은지, 앞으로는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시간들이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스트레칭을 쭉쭉 하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


스스로 교훈과 다짐을 곱씹는 요즘, 그리고 그리스어의 괴랄함에 괴로워하는 대학생으로서, 이 책은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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