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핵심 강의 - 최소한의 중국 인문학
안계환 지음 / 나무발전소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 안에 다 있다. 

가장 나쁜 놈도, 가장 선한 자도, 

가장 슬픈 이야기도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도...

1. 어릴 적, 집에는 고우영 만화 시리즈가 있었다. 삼국지, 초한지, 십팔사략, 심지어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열국지까지 모두 있었다. 특히 초한지를 좋아했다. 아무도 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우영 화백의 그림 속에서 그려진 이들은 다들 결점이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그 결점 가득한 사람들이 하는 짓들을 보고 웃고, 울고, 싫어해 보기도 하고, 좋아해 보기도 하면서 '나'를 확립해 갔던 것 같다.


그래서 중국 '역사'는 나에게 이야기의 근원지에 가깝다. 덕분에 서양 신화를 공부할 때 '서양의 친구들도 비슷한 관점이겠거니..' 하면서 그들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근원지는 생각보다 깊다. 절대적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항우가 한신의 계략에 빠져 물소용돌이에 휩쓸려 가는 것 마냥 무력하게 죽어갈 때의 감정은 아킬레우스의 삶과 함께 이야기되어져야 하지 않을까.

2. 학교에서 배운 중국 신화도 매력적이었다. 추석 때마다 경험하는 '차례'는 조상신을 섬기는 의례다. 그 조상신이 어떻게 신이 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은 유교 자체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왜 유교문화권의 사람들은 신을 '특별한 존재'로 캐릭터화하지 않고, 자신의 조상으로 생각했을까? 기독교의 입장에서 왜 유교의 조상신은 '잡신'인가? 동양에서 역사적으로 구축해 나간 신의 모습은 무엇인가? 즉, 극동아시아의 신에 대한 관념은 무엇이었을까?


3. 학교 특성상 외국인이 많은 편이다. 특히 팀플을 하면서 중국에서 오신 교환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겉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인지는 짐작할 수 없다. 나는 심지어 입학했을 때 한 중국 학생에게 건물을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국어로 말이다. 당연히 한국 사람인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영어 관련 교양 시간에, 대만에 대한 주제가 나왔었고, 그 수업에는 중국인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 중국인 학생은 수업 주제에 대해 하는 학생에게 화가 난 듯이 반박했다. 그 때 느꼈다. 우리가 보는 세계에 대한 시각과 그들이 보는 세계에 대한 시각이 다름을. 그들의 반박에 반박하거나, 찬성하기 이전에, 적어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성해보니 ‘중국’이라는 나라는 가까이 있었지만,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중국어를 하면서 학교 계단을 뛰어 내려가도, 그냥 나와 비슷한 사람이겠거니 마음대로 생각했다. ‘당연히’ 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족 친구들의 정체성은 명확한 ‘중국인’이었고, 그저 할머니/할아버지 중 한 분이 조선인이었을 뿐인 적이 많았다. 분명 내가 몰랐던 세상이었다. 궁금했고, 더 알고 싶었다.

이 세가지 이유가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였다. 한 교양 강좌를 학점 없이 청강으로 듣는 느낌이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질문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의 일요일들 - 여름의 기억 빛의 편지
정혜윤 지음 / 로고폴리스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일요일, 그러고 보니 진짜 일요일을 산 지 오래 된 것 같다.
일상적인 삶이라는 건 육체적 노동 뿐만이 아니라, 감정적 노동도 큰 법이니까.


나는 약간 집순이 기질이 있어서, 일할 때에나 놀 때에나 집에 가고 싶어하는 버릇이 있다. 불을 하나도 켜지 않은 깜깜한 방 안, 침대 위에 처박혀 있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침대 위에서 딱히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마음껏 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문득 심심해지면 보고 싶은 영화를 달달구리한 것을 먹으면서 보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 카카오닙스를 올린 바나나 자른 건 요즘 내가 푹 빠진 달달구리다.


친구들은 이러한 나를 존중해서, 술을 마시러 나가는 불금에는 굳이 나를 부르려 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너무 좋지만 나는 이렇게 해야 에너지가 충전 되는 것 같아' 라고, 이렇게 글로 쓰는 것은 잘하지만 말로는 표현을 잘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으로서는 다행인 일이다. 친구들은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고, 나는 침묵으로 푸는 것이다.


하지만 바빠진 요즘, 한 번에 한 가지 일 밖에 못하는 나로서는 너무 힘들어졌다. 자주 피로함을 느낀다. 개강 때문인지, 나가야 할 모임도 많고, 사야 할 책도 많고, 기숙사에 필요한 물건들도 사야 하고, 1학기와 달리 한 강의당 예습을 위해 일주일에 봐야 할 책들도 많아졌다. 택배도 받아 와야 하고(택배는 왜 이렇게 오지 않는 것인지), 다시 보낼 것도 많고, 요즘 부쩍 추워져서 옷도 사야 하고. 아, 이 전공책들은 왜 이렇게 비싼가. 책을 어떻게 하면 가장 싸게 살 것인가, 옷은 어디가 예쁜가, 립스틱 색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살도 빼야 하는데, 돈은 얼마나 써야 하는가, 그런 고민도 많다. 그렇다. 나는 원래 생각도 많고 빨리 피곤해지는 성격이라,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고달파 한다. 게다가 해야 할 일도 많다. 학교 외로 따로 공부하고 있는 책들도 빨리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리가 아파진다. 으아아..


이럴 때면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는 나 자신을 재촉하면 재촉할수록 되는 일이라는 것은 없다는 교훈이다. 그리고 둘째는 지금까지 잘해왔으므로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짐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나 같은 베짱이에게는 정말 중요한 생각이다. 내가 경상대를 다니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내 삶을 정리하는 법이다. 분류하고, 대안을 제시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이끌어 내는 것. 이거 하나는 교수님 지도 아래 잘 배웠다. 이전에는 힘들어하기만 하다가 포기하기 일쑤였기에.


그리고 '일요일'은 반성이랄까, 그런 것들을 하기 딱 좋은 날인 것 같다. 그 날이 딱 일요일이 아니라도 상관 없다. 비는 날이라면, 언제든지 괜찮을 것 같다. 왠지 공기도 맑은 것 같고, 약속도 없는 그런 좋은 날, 베짱이인 나를 침대로부터 끌어 내서, 정리해 보는 것이다. 내 삶이 지금껏 어떠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책을 읽어 보고 싶은지, 지금 당장은 뭘 하고 싶은지, 앞으로는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시간들이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스트레칭을 쭉쭉 하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


스스로 교훈과 다짐을 곱씹는 요즘, 그리고 그리스어의 괴랄함에 괴로워하는 대학생으로서, 이 책은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만의 바다
쿄 매클리어 지음, 캐티 모리 그림, 권예리 옮김 / 바다는기다란섬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다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세요?
바다를 처음 만난 순간, 나는 기억한다. 만났다는 것은 양방향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바다를 보았음을 인정해야 하고, 바다도 나를 보았음을 시인해야 한다. 하지만 바다는 대답을 해줄 방도가 없다. 있다면 내 기억일 것이다. 바다가 '이리 와 이리 와' 했다면 그것은 만난 것이다. 그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부모님이 신혼여행 날 가져온 소라가 있다. 어릴 적 엄마께서는 그 소라 껍데기를 내 귀에 대주셨고, 바다 소리가 나지 않냐고 하셨다. 정말, 신기하게 바다 소리가 났다. 깊은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물들의 소리. 내가 처음 만난 바다는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여름, 바다를 가자 부모님께 떼를 썼던 것 같다. 바다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바다의 꾐에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내 바다의 입구는 소라 껍데기다.




그리고 그 속에는 많은 바다가 있다.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하면서 미친 척 뛰어 놀던 밤바다. 뜨거웠던 햇빛 아래 시원히 몸을 담그던 바다. 튜브 타고 빙빙 돌던 바다. 달빛 비친 바다. 배를 타고 뱃물결 지켜보던 바다. 동생은 바다만 보면 가슴이 뛴다고 어릴 적 해적왕이 될 거라고 장난삼아 말했다. 하얬던 피부는 바다에서 뛰어놀더니 까매졌다. 지금은 열심히 선장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다. 미래의 나는 바다를 보며 동생과 동생이 지키는 사람들의 안전을 기도할 것이다. 동생은 바다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바다는 그런 곳이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바다가 있고, 그래서 바다를 주제로 한 성찰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그림책이 어떤 물음을 나에게 던져줄 지 궁금하다.

하지만 오빠는 몰랐던 거야. 이름이 두 개인 장소도 있다는 걸.
하나는 소리 내어 말해도 되는 이름,
다른 하나는 나 혼자 속으로 부르는 이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