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S. E. 힌턴 지음, 신소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계급이 존재할까? 이 책을 읽기 전 잠시 생각해 보자. 여기서 말하는 계급은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같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의식하고 순응하지만 직접 언급하기에는 너무나 예민한 것을 뜻한다. 어른들에게는 학벌, 경제력, 직업 그리고 사회적 지위 등에서 발생하고, 청소년들에게는 외모, 성적, 용돈,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계급. 누구나 한번쯤 느껴보았을 것이다. 
 

  <아웃사이더>에서는 대체로 경제력을 기준으로 한 계급이 존재한다. 소셜과 그리저,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그 계급에 이름을 붙이고 또 그 이름을 직접 부른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그리저인 주인공인 포니보이와 함께 어울리는 댈러스와 자니, 소셜인 밥과 랜디, 체리를 통해 각 계급에 속한 인물들의 내적 갈등과 그 것을 이용해 계급에 대한 불만을 토하고 있다. 

  간략하게 소설의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포니보이와 자니는 영화관에서 체리와 그녀의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잠시 어울리게 된다. 그 모습을 본 체리의 남자친구 밥과 그의 친구들은 그날 밤 포니보이와 자니를 습격하고, 친구의 목숨이 위험해 지자 자니는 밥을 찔러 죽인다. 잠시 다른 마을에 숨어있던 그들은 패거리인 댈러스와 함께 자백을 하려고 동네로 돌아가던 중, 화재가 난 교회 안에 아이들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불 속으로 뛰어든다. 아이들을 구했지만 생사를 헤매게 된 자니는, 소셜들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포니보이와 댈러스의 말을 듣고 끝내 눈을 감는다. 자니의 죽음은 냉혈인간 같았던 댈러스를 고통스럽게 했고, 결국 죽음을 자초하게 만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 중에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하고 섬세하게 신경을 쓴 작품인 것 같다. 주인공인 포니보이와 자니, 체리와 밥뿐만 아니라 댈러스, 데리, 랜디...... 하나같이 아픔과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것을 표현하고 대처하는 방법이 각자 다른,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다. 그 중 가장 나에게 다가왔던 인물은 바로 랜디와 댈러스이다. 

  소셜들은 선택받은 자, 특권층으로 돈도 많고, 머리가 좋고, 사회진출기회도 많은 소위 ‘엘리트’들이다. 랜디는 밥의 친구로, 술에 취해 자니를 초죽음으로 만들어 놓았었던, 나중에 자니가 밥을 칼로 찔러 죽이는 것을 본 소셜이다. 그는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그 계급을 그대로 인식했고, 그 결과 포니보이와 자니가 화재 속에 갗인 아이들을 구해준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떤 사람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갑동보다는 충격이 훨씬 컸다. 왜일까? 

  그것은 사회가 ‘소셜은 엘리트, 그리저는 쓰레기’라는 문구를 개인에게 세뇌시켰기 때문이다. 소셜이든 그리저든 똑같은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의 교육수준이나 생활수준과는 별개로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도덕적인 의식이 몸에 배여 있다. 하지만 사회는 개인을 쓰레기가 아니면 엘리트라는, 경제력과 학력을 바탕으로 한 흑백논리를 세웠는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그 흑백논리에 의해 그들의 도덕적인 면모까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학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도덕적인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으로 나누다니, 말도 안 돼, 라고 작가는 외치고 있다. 

  그 흑백논리와 세뇌된 문구 때문에 많은 그리저들이 상처를 입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댈리스. 그의 패거리들조차 그가 폭발할 때에는 건들지 못할 정도로 냉정하고 폭력적인 그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듯 행동했고, 실제로 거의 그랬었다. 하지만 자니의 죽음이 그의 죽음을 불러온 것은 곧 댈러스에게도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애정이 있었고, 또 다른 이의 애정이 절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리저라는 신분을 떨칠 수가 없었던 그는, 점점 세상을 증오하고 멸시하게 되고, 어떤 일을 해도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니가 죽음으로써 자신이 표현하지 못했던 애정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흑백논리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그리저뿐만이 아니다. 소셜들은 사회적으로 ‘엘리트’라는 인식이 박혔고, 그 인식 덕분에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자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남들도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 그들이 무슨 일을 벌이든 소셜이잖아, 하고 통제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또 자신을 방치해두는 사회에 반항하기 위해 더욱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잘못들은 쌓이고 쌓여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밥과 같은 결과를 낳게 만들었다. 
 

  “그게 그가 바란 거였어.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 돼’라고 말해주는 것, 누군가가 원칙을 정해주고, 한계선을 그어주고, 녀석에게 굳건히 딛고 설 무언가를 주는 것이.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것을 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계급이 형성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계급이 형성된다고 해도, 그 계급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경제력이나 학력을 기준으로 한 계급이 아니라, 인간성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계급을 형성하도록 노력해 보자. 가장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그 아래 계급의 사람들도 그들을 동경하고 닮으려고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