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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서태후 - 개정판
펄 벅 지음, 이종길 옮김 / 길산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중 1, 해가 쨍쨍 내리는 날이었던 것 같다. 더움에 지쳐버린 나는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무심히 교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는, 말하자면 책벌레인 어떤 남자아이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보았다. 그 책은 이 책보다 더 크고 검은색 바탕이었던 같다. <연인 서태후>라는 재목에 끌려 그 아이에게 다가가 표지의 그림을 살짝 보았고,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과 동시에 여인의 눈에 쓰여있는 ‘날카로움’과 입술에 쓰여진 ‘단호함’과 ‘유혹’은 내 마음을 온통 흔들어놓았다. 하지만 그 후로 항상 그 책을 생각했으면서도 읽으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달전, 서점에 갔다가 눈에 띈 그 책을 조금 읽게 되었고 결국 너무나 갖고 싶어 주문하고 말았다. 그리고 역시, 이 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꽤 영향력 있는 가문의 후손인 난아는 황제의 황후와 후궁을 간택하는 처녀후보로 선정되고, 대담하지만 매력있는 그녀는 황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아 그녀를 간택하게 한다. 하지만 황후가 아닌 일개 후궁인 그녀에게는 황제와 함께 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태후를 잘 섬겨 황제가 그녀를 찾도록 할 때 까지 학문을 닦고 그림을 그리며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그리고 자신의 사촌동생이자 황후인 사코타가 임신을 하게 되고 황제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교태와 지식을 섞은 대담한 매력을 발산해 황제를 자신에게 빠지게 하지만 점점 불안하고 슬퍼져 황제의 부름을 거절했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했고 또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 영록을 불러 자신의 고민을 고백하고 사랑을 나눈 다음 아이를 갖게 되는데...
정말 흥미진진하고 아름답고 무섭고 유혹적인 이야기이다. 한낮 후궁(그것도 몇천명인지 모를 후궁 중 한명)이 황제를 유혹하고 태자를 낳은 후 모든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차없이 그 싹을 잘라버린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앞에서는 무기력해지고, 황제를 향한 감정이 사랑이 아닌 동정이라는 것을 아는 그녀이기에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녀는 참 고집불통인 것 같다. 당돌하고 야심이 커 감히 용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무언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황제의 부름까지 거절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지르다니! 솔직히 그런 것들은 황후가 될 조건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녀는 매력적이고 대담했다. 황제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영록의 사랑을 원했고, 수많은 충신들이 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해가 되면 가차없이 죽여버렸다. 그녀는 생각한다. ‘나를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있으나, 진정 사랑해 주는 사람은 한 명 뿐이다.’ 결국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존귀하신 마마님이셨으나 그들이 감히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권력과 옥좌를 위해 아들도, 충신들도, 사촌동생이자 동태후인 사코타도, 죽임을 당한 안덕해도, 태자비도 모두 포기하고 죽게 만들었지만 단 한명, 그녀에게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은 차갑고 냉정한 그녀도 결국에는 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줌이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