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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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이긴 하지만 각각이 꽤 완결성이 높은 단편집. 나름의 위트와 자연스러운 전개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일부 일본 작품들 중 나의 비위를 심하게 거슬르는 점 하나가 이 책에서는 너무나 농도 짙게 풍겨나와 썩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바로 전쟁에 대한 묘사. 묵직하고 아련한 슬픔에 참회의 모습이라곤 코딱지만큼도 없다. 거대한 비극이며 되풀이되어서는 안되는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이들의 가슴에 단지 그 순간을 견뎌야만 했던 민초라는 이유만으로 받은 면죄부만 가득하다. 

나는 여기에 쏘쿨하게 반응하고 문학적 아름다움과 즐거움만을 찾는 것은 아무래도 할 수가 없다. 종전기념일이라느니, 방공호의 죽음이라느니, 사실은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낸 피의 역사라는 것을 좀 똑똑히 직시했으면 한다. 그리고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본토전으로 이어졌으면 더 끔찍했을" 그 일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났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끔직한 사건 - 예를 들면 토막살인과 같은 - 을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느껴지게끔 쓰는 글을 "대단하다"며 칭송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야말로 소름끼치는 일 아닌가? 잔인한 일에서 잔인함을 느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폭력에 찌들다 못한 사람들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구멍은 이런 식의 쏘쿨하고 시크한 잔혹함 뿐인가? 그것도 이렇기 지극히 일본적인 방식으로. 매우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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