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량의 상자 세트 - 전2권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아메미야는 지금도 행복할까?”

“그야 그렇겠지. 행복해지는 것은 간단한 일이거든.”

교고쿠도가 먼 곳을 보았다.

“사람을 그만둬 버리면 되네.”
 


개인적으로 국내 발간 된 교고쿠도 시리즈 중 최고작이라고 꼽는 ‘망량의 상자’.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전율과 공포, 혐오감(?)을 동반한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다시 읽었을 때는 처음보다 충격이 감소되었지만 부분부분 소름 끼치고 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관찰력도 형편없는 나는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다가 이번에 읽을 때야 하나하나 드러나는 복선을 알아차리는 등 새로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다시 읽어도 충격적이긴 하다. 어디까지나 처음보다 충격이 덜하다는 말이지만.

 

전작 ‘우부메의 여름’과 ‘망량의 상자’ 다음 작인 ‘광골의 꿈’(국내 발간 기준)에서도 그렇지만 어김없이 등장하는 엽기적인 사건들과 진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을 읽으려면 감수해야 하는 거지만 생리적으로 혐오스럽고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마치 나도 세키구치처럼 저 너머의 세상으로 가 버릴까 두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교고쿠 나츠히코 작품의 묘미가 아닐까?

 

여러 가지로 느낀 점이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거다. 미마사카는 나름 열변을 토했지만 나는 우수해지지 못해도 상관없고 행복해지지 못해도 상관없다. 설사 미마사카의 주장이 옳다 하더라도 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이런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그리고 내가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했어도 말이다. 난 오로지 사람으로 남고 싶다. 구보도 마지막 순간에야 느꼈지만 물리적으로만 살아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살아있다’는 말은 단지 물리적으로만 살아있는 건 아닐텐데... 뇌사상태, 식물인간 등 이미 우리의 현실은 ‘망량의 상자’에서 나오는 문제들을 보이고 있다. 안락사 문제처럼. 그리고 안락사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사람마다 다들 주장하는 바가 다를 것이고 그 모든 것들이 다 맞는 말이 수도 있다.

 

그냥 나는 내가 가나코와 같은, 구보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역시 나는 그냥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거다. 물리적으로만 살아있는 건 싫다. 그냥 그렇다는 거. 요코로 대변되는 어머니, 가족들의 입장도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싶다. 사람마다 다르려나? 하지만 ‘나’에게 묻는다면, 역시 답은 ‘싫다’이다. 내가 가나코, 구보처럼 된다면 정말, 우리 가족이라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너무 극단적인 설정인 탓도 있고 지금의 안락사 문제와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누구라도 가나코, 구보와 같은 상태는 싫을 거라 생각한다.(작품 기준에서)

 

교고쿠도도 세키구치도 행복해지지 못한다. 교고쿠도의 말에 따르면 말이다. 그럼 나도 행복해지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러고 싶다. 왜냐하면 난 사람을 그만두고 싶지도 않고 끝까지 사람으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 마지막에서 세키구치는 아메미야가 몹시 부럽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세키구치는 절대로 아메미야처럼 될 수 없으니까, 아무리 고민해도 사람을 그만둘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나도 그렇고.

 

교고쿠도 시리즈 중 여러 가지로 여운을 많이 남기는 작품이었다. 황량한 대지를 아름다운 소녀가 든 상자와 함께 걸어가는 남자....

그래도

나는 왠지 몹시

남자가 부러워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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