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쓰여 있었다 -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일기에는…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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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과 오십 사이,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어느 날 문득. 어른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안타까움, 서글픔, 아름다움을 엮은 매혹의 에세이, 마스다 미리의 신간 그렇게 쓰여있었다가 나왔다. 이미 마스다 미리의 만화나 에세이에 매료된 독자로서 이번 신간 역시 두말할 것 없이 기쁘게 읽어나갔다.


마스다 미리. 그의 책은 언제나 나의 하루를 돌아보게 한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틈나는 시간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차는 몇 잔이나 마셨는지. 마시며 어떤 디저트를 함께 곁들였는지, 혹은 곁들이고 싶었는지. 시시콜콜한 일상의 일들도 이상하리만큼 생경스럽게 느끼게 하는 것. 그리고 그런 하루하루에 감동하게 하는 것. 아마도 이것이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은 후의 공통되는 감상이지 싶다. 


이런 감상은 이번 마스다 미리의 신간 에세이 '그렇게 쓰여있었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일기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작가가 써 두었던 일기장의 한 구절에서 따온 책의 제목,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이 문장을 썼을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의 작가는 어렸을 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상한 감정이 못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그 말을 써 버리면 더 이상 어리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게 서글퍼서인지 아니면 괜스레 아쉬워서인지, 어느 날 작가가 쓴 옛날 일기장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중년이 된 지금의 나는 ‘어렸을 적’이란 말이 이미 아무렇지도 않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젊었을 적에는……’이라는 말조차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젊었을 적에는’이라는 말은 아직 살짝 마음이 따끔하다. 
따끔한 것이다.
- 86쪽 [옛날 일기장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중에서


그리고 지금의 그는 아주 담담하게 이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다. 게다가 이제는 그보다 더한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마음이 조금은 따끔하지만. 

이렇게 작가의 이번 에세이는 마흔의 중반에 들어선 그가 현재 보고 느끼는 오늘의 이야기와 어릴 적이라는 말을 쓰기가 두려웠던 과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함께 교차하며 이어간다. 때문에 과거와 현재, 그 사이 시간의 간극은 명백히 존재하지만 신기하게도 글에 묻어나는 작가의 모습들은 전혀 이질감이 없다. 

아마도 이 이유는 어렸을 적이라는 수식어가 꼭 어울리는 어린 시절 작가의 모습과 마흔의 중반을 넘어 쉰을 바라보는 현재 작가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어느새 자연스레 어른이 된 작가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새롭게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릴 적이라는 말을 두려워했던 그 시절 어린 내 모습들이 하나씩 하나씩 쌓이며 내 안에서 차분히 성장한 것일 테니. 





“엄마, 아이도 없는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는 어쩌나 걱정돼?”
엄마는 잠깐 사이를 두고는, “응. 걱정돼.” 하고 대답하신다.
나는 그날 밤 레스토랑에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내 뜻대로 살아서 행복해. 혹시 혼자 죽음을 맞게 되더라도, 괜찮아.”
엄마는 “그래, 그렇구나.” 하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 48쪽 [엄마, 내가 걱정돼] 중에서


"1미터 50센티 정도의 거리를 오가는 동안
쉽게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특기가 내게 있습니다."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엄청난 일도, 아무것도 아닌 일도. 과거라는 이름 아래 놓이게 되면 그 자체로 아스라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 아스라한 감정은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든다. 소중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에겐 그런 아름다운 날들이 있다. 바로 평범했던 우리의 어제, 그리고 오늘.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하지만 돌아보면 아스라하게 남을 하루의 소중함. 오늘의 내 모습들. 오늘보다 더 많은 날들이 지나도 내 안의 어린 내 모습들은 그대로 아스라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그 시간들을 힘이 닿는 만큼 사랑하고 싶다. 그 아스라한 감정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소중한 추억들일 테니까. 


서평의 마지막은 몹시도 마음에 들어 몇 번을 읽고 또 읽으며 가만히 되뇌어 본 책 속 한 구절로 끝내본다.


"있잖아, 우리 다음에는 예약하고 오자."
이렇게 날마다 계속해서 쌓여가는 '있잖아, 우리 다음에......' 쌓인 것을 다 쓰지 못한 채 우리의 인생은 끝나겠지만, 그래도 쌓을 수 있을 만큼 쌓아두고 싶다. 


나 역시 그러고 싶다. 다음에 만날 그의 새로운 책을 기대하며......




* 책을 읽은 후에는 사은품 노트에 나만의 일기를 써 보기도 했다.

   온전한 나만의 감상을 한 듯,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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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나보다 일곱 살 어린 나의 친구가 내일의 미래를 걱정하며 조언을 구했다. 그건 '이 옷이랑 이 옷, 둘 중에 무엇을 입을까?' 같은 일회성의 표류하는 고민이 아닌 어쩌면 그의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만한 가치 있는 고민이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이 중요한 이야기를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태연하게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속으로는 몹시 조심스러웠다. 나의 한마디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그는 지금 어떤 대답이 필요한 것일까? 같은 염려로.

내일을 위한 더 좋은 결정이 필요했던 그는 사회적 통념으로 자신의 시기를 겪어 보았을 나이 많은 누군가의 경험이 필요했을거다. 그의 생각대로 칠 년 전 나는 지금 그가 고민하는 시기를 비슷하게 겪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내 방식대로의 삶이었을 뿐. 나는 과거 나의 선택과 그에 따른 오늘의 내 모습마저 그의 삶에 있어서는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함부로 더 어린 사람의 인생을 재단하거나 조언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거기에 가치 있는 삶이란 타인의 말을 빌려 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깊이 믿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의 삶을 뒤흔들만한 플라톤급 인생의 진리는 아니더라도 친구로서의 따뜻하고 진심 어린 격려로 그의 삶을 응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말을 가장 먼저 말해 주었던 거다.

'오 마이 디어, 넌 젊잖아!'

흔히들 이야기하는 '젊은 게 무기'라는 말은 비단 의미 없는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어떤 결정도 괜찮게 만드는 대단한 힘이 있다. 과거의 내가 내린 바보 같은 결정도 내일의 나에게는 젊은 날의 경험으로 반짝이게 기억되며 치하되는 것이다. 그건 어떤 선택도 나름대로의 의미로 내 인생의 경험이 되어 나의 삶을 의미 있게 채워갈 것이란 뜻이다.

물론 이 말을 건넨 나는 상대적인 젊음을 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었지만 나보다 젊은 나의 친구는 상대적으로도 나의 말이 힘이 된 것 같았다. 어쨌든 니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어.

이렇게 생의 가장 젊은 날을 나누던 어제의 우리는 오늘 또 다른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을 맞이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그 사실을 까맣게 망각한 채 너무나도 덤덤하게.

이 글을 읽게 될 미래의 나는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것 역시 나중에 그렇게 써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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