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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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티브이를 보던 어린 날의 저녁, 드라마에서는 종종 슬픈 장면이 나오곤 했다. 그럴 때면 나의 아버지는 늘 채널을 다른 프로로 돌려 버리셨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가상의 이야기 속 주인공의 슬픔을 보는 대신 우리의 배꼽을 잡게 만드는 웃음이 가득한 코미디언들을 보곤 했다. 그렇게 나의 아버지는 늘 의식적으로 슬픈 것들을 피하셨다.

  아버지가 슬픔을 피하는 이유는 별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기가 싫어서였다. 나는 그로부터 많은 날들이 지나면 서야 차츰 그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타인의 눈물을 보기 싫어하는 것은 그게 아버지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게 설령 지어낸 이야기일지언정. 나의 아버지는 타인의 슬픔이나 고통을 그냥 무던하게 넘기고 지나치기 힘든 분이라는걸. 그래서 언제나 가슴이 함께 울어버리고 마는 누구보다 여린 사람이라는걸. 

 


  그런 환경에 자라서 그런지 나 역시 인생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순간들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시작이 유독 힘들었다. 시작과 동시에 벅차 오는 김동영 작가의 슬픔은 숨이 막혔다. 서문에서부터 한 줄 한 줄의 문장을 이어가려는 나의 노력은 몇 번이고 수포로 돌아갔다. 시작도 못하고 수 없이 책을 덮었다. 마치 슬픔을 의식적으로 피하려던 나의 아버지처럼 그랬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슬픔이 많다. 아픔도 많고, 고통도 많다. 굳이 티브이 속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가슴이 메는 순간들, 울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들이 도처에 널렸다. 우리는 그 순간마다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럽다. 나는 늘 밝고 행복한 것을 보고자 했던 아버지의 삶이 비단 그렇지마는 못했다는 것을 잘 안다. 지어낸 슬픔이 아니더라도 그의 삶에는 충분히 어두운 그늘이 많았기에, 나의 아버지는 굳이 지어낸 슬픔까지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내가 책을 그냥 덮어 버린 이유 또한 이것이었다. 슬픔과 대면하기, 나는 그런 것에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특히나 김동영 작가의 아픔은 허구가 아닌 실재이기에, 더욱이 내 앞에 닥친 날 것의 그 감정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이 직접 만나본 적 없는 타인의 글일지언정.


 


   이렇게 책 읽기를 몇 번이나 실패한 후, 표지의 까만 점이 다시 보였다. 처음 책을 받아 들었을 때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다시 보니 그게 꼭 작가의 아픔같이 느껴졌다. 불현듯 그 점은 결코 다시 하얗게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또 마음이 아팠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는 김동영 작가가 너무도 안쓰러워서 큰 결심이라도 한 듯 힘껏 주먹을 한번 꽉 쥐었다 피고 다시 책을 잡았다. 펼쳐진 나의 손 위로 책 속의 슬픔들이 스멀스멀 물밀듯 흘러넘쳤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안에 까만 점을 마주했다. 내게 다가온 슬픔의 감정 속에서 송장처럼 둥둥 떠 있던 내 안의 까만 점. 그건 나도 모르는 사이 잠시 자취를 감췄던, 그래서 죽어 버린 줄 알았던 내 마음속 아픔의 응어리였다.

 

 

 

 


  어쩌면 이 책의 시작이 어려웠던 것은 이 때문이다. 나 역시 김동영 작가처럼 마음에 까만 점이 있기 때문에. 숨기기 바빴던 그 아픔을 거울 보듯 마주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웠다.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다.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누구도 슬픔과 마주하는 것이 쉬운 사람은 없다. 그만큼 극단적인 마음의 고통을 다스리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우리에게는'당신'이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나의 아픔을 대면해 줄 수 있는, 그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함께 해 주는 존재. 그 자체로 나에게 안정이 되는 존재. 나의 아픔에 궁극적인 치료제가 될 수는 없지만 언제나 그것들을 사그라들게 하는 '
당신'이라는 '안정제


  우리는 누구나 이 안정제가 필요하다. 스스로의 아픔이 벅찰 때, 그것을 대면하며 가만히 토닥여 줄 어떤 존재. 날이 선 현실에서 위태로운 내 안의 검은 점을 사그라 들게 하는 어떤 것들.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잠시나마 망각하게 하던 티비 속 코미디언들의 웃음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렇게 내 안의 아픔을 대면하는 것이 쉬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대로 타인의 아픔을 대면하였을 때, 그것을 제대로 토닥여 줄 수 있는 일 또한 아무나 할 수 없다. 두 작가의 책이 특별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환자와 주치의였기에 가능했을법한 너무나도 솔직한 내면의 이야기. 시작도 힘들었던 이 책이 결국 너무나도 고맙게 다가온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자신의 치부일 그 아픔을 거리낌없이 솔직하게 표현한 김동영 작가의 솔직함이 고맙다. 그리고 '할 수 있어!'나 '힘내!' 식의 대책 없는 응원이 아닌 내 속의 감정을 한번 더 생각하고 돌아 보게 만드는 김병수 작가(주치의)의 글들 또한 고맙다. 책을 읽은 나는 김동영 작가의 글 덕분에 언제든 내 안의 아픔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고, 김병수 작가의 글 덕분에 언제 어디서 마주하게 될 그 아픔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마지막 김병수 작가의 에필로그 속 마지막 온점까지 마음에 담아본다. 그리고 드디어 완독한 책을 다시 덮어 한번 더 표지 속 까만 흑점을 들여다본다. 김동영 작가의 아픔 같았던 그 점은 여전히 까맣다. 그 점은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고,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속 까만 점은 결코 감추거나 지워질 수는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이후, 나는 되려 그 까만 점이 점점 더 퍼져나갈 것을 소망하게 되었다. 김동영 작가님의 마음 속 까만 점이 점점 더 퍼져가길,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우리들 마음 속의 까만 점 또한 혼자서만 까맣게 웅크려 들지 않기를......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퍼져 가고, 우리의 안정제가 되어 주는 당신들로부터 퍼져 가고, 결국 스스로의 아픔을 당당하게 마주하는 것으로 만연하게 퍼져가기를.
  
  그리고 그렇게 퍼져간 까만 점들이 그 과정에서 점점 옅어질 것을, 결국에는 희미해질 것을...... 끝내 그 흔적마저 모호하게 사그라들 것을 믿는다. 이 책은 그런 현실적인 희망을 주는 책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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