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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그 제목에서부터 이미 ‘억압’을 상징하고 있다. 휜 모습으로 선, 작고 볼품없는 난장이. 그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생활에 필요한 최저수준에도 미치는 못하는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 자유가 박탈 된 1970년 사회의 유신 독재 체제를 배경으로, 이 작품은 은밀한 언어로 당시 사회의 문제를 꼬집고 내고 있다.
읽고, 쓰고, 비판할 자유도, 표현할 자유도, 부당한 상황에 대해 호소하고 권리를 외칠 자유도 없었던 비틀어진 사회 안에서, 사람들은 모두 권력이라는 거인 뒤에 초라하게 선 난장이었다. 산업화, 공업화라는 과제를 안고 급하게 선진국을 쫓기 위해 쉼 없이 달음질을 하는 동안, 그 뒤에 선 난장이들의 등은 더욱 굽고 작아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 때. 달나라로 떠나기를 희망하면서, 난장이 ‘김불이’는 그 시대 사회의 부조리와 어두운 권력의 산 유물이었던 커다란 공장의 굴뚝에 서서 힘껏 공을 쏘아 올린다. 그러나 달의 근처에도 닿지 못하고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버린 공처럼, 난장이도 결국 공장 굴뚝에서 떨어져 죽어버린다. 여전히 ‘꿈’으로만 남은 그의 미련한 희망이, 안타깝게 불발되어 낙하해 버린 것이다.
어두운 골목 한 귀퉁이에 떨어져,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이 되고 결국 망가지거나 썩어버릴 공. 그러나 그가 공과 함께 쏘아 올린 어리석은 희망은,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웠다. ‘자각하라.’, ‘일어나라.’, ‘대항하라.’, ‘쟁취하라.’ - 그의 작은 공은 그렇게 커다란 희망과 뜻을 품고 하늘에서 신의 소리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30여 년. ‘1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급속도로 변해가는 최첨단 과학의 21세기, 작은 우주선을 빌려 무엇이든 달까지 쏘아 올릴 수 있는 꿈같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문명이 발전한 만큼, 우리는 경제적으로나 혹은 문화적으로 이전보다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많은 난장이들로 붐벼댄다. 여전히 성황 하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 미해결 된 복지문제,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사는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들은 경제적으로 훨씬 뒤쳐졌던 그 70년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확실히 현실이라는 벽은 너무나 거대하고 또한 높아서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경우도 더러 있다. 높은 사다리를 만들어 오르고 또 올라도, 중도에 힘이 다 해 결국 바닥으로 떨어질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겨우 흠집을 낼 정도라고 하여도, 우리는 그 벽을 부수기 위해 커다란 망치를 들어 쳐내려야 한다. 벽 어딘가에 부딪혀 다시 떨어진다 해도, 작은 공 하나를 그 위로 힘껏 던져 보아야 한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나 ‘과학’이 아니라, ‘희망’이기 때문이다.
변화 한다는 것, 변화 시킨다는 것은 의외로 아주 쉬운 일이다. 단단해 보이는 벽의 가장 낡은 곳을 찾아 힘껏 내리치고, 가장 낮게 내려앉은 곳을 향해 공을 던져보면, 그 작은 시작이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마음을 움직여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벽을 때리는 망치가 두 개가 되고, 아흔 개가 되고, 백만 스무 개가 된다. 공을 더 높이 던질 수 있게 사람들이 탑을 만들고, 단단한 사다리를 만들고, 쏘아 올릴 수 있는 기발한 발명품을 만들어 낸다.
희망이란 그런 것이다. 실패를,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과정’이라고 여기는 것, 불가능이 없다고 믿는 것. 내가 죽은 후에라도, 언젠가는 이 벽이 허물어질지 모른다는 믿음. 나는 지금, 작은 공을 손에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