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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어서 죽도록 쓸쓸한 서른두 편의 이야기
김종관 글.사진 / 달 / 2014년 8월
평점 :
책 표지와 제목을 보고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누워서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갔다. 읽은지는 오래 되었는데,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까 오랫동안 망설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학창 시절 부모님 몰래 친구들과 성인 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이 서른이 넘은 성인이지만, 아직도 내게 이런 사랑 이야기는 낯설었다.
참기 어려운 욕망, 분출하고 싶은 욕구, 가슴이 쿵쾅거리고, 몸에서 열이 나고 땀이 흐르는 순간, 이 책에는 그런 묘한 순간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단순히 야한 섹스 한담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사랑의 페이소스와 짙은 서늘함이 들어 있다. 세상이 무너질 듯 간절했다가 또 어느샌가 세상에 더없이 시시하고 시큰둥해지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그 시작과 끝이 들어 있다. 물론, 그 중간 어디쯤도 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굴곡이 모조리 들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 권으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가 된다. - 출판사 리뷰 중에서

처음에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하다가 깜짝 놀랐다. 표지에 19세라고 적어놔야 하는건 아닌가 괜한 걱정도 들었다. 남녀의 관계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들 때문이다. 그렇지만 너무나 솔직하고 담담해서, 그냥 계속해서 읽어나가게 된다. 신체접촉으로 시작된 사랑 이야기들이 씁쓸하고, 쓸쓸하지만 계속 읽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픽션이기도 하고 논픽션이기도 한 이야기들이 어디까지가 논픽션일까 궁금해진다.
손을 꽉 잡고 어둠을 가르는 연인들의 성욕은 항상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손을 꽉 잡고 비에 젖은 밤길을 걸으며, 음식물 냄새 나는 골목을 돌아서며, 인파들의 어깨를 부딪히며 아름다운 세계를 본다. 둘은 같은 공간을 보고 같은 추위를 느끼며 같이 아름답다 느낀다. 새벽이 다 되도록 잠이 오지 않는다. 술은 늦게까지 깨지 않으며 감각은 모두가 살아 있다. 그들은 걷는다. 사랑하기 위해서. - [단잠] 중에서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어서 죽도록 쓸쓸한 서른두 편의 이야기'들은 어쩌면 나도 모르는 내 속에 감춰친 내면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나이 서른이 넘고, 결혼한 친구들 혹은 아직 미혼인 친구들과 함께 만나면 우리들도 자연스레 남자 이야기, 성적인 농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래서 마냥 낯설다고,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헤어지려고 백 번을 잔 커플이 있다. 다시 타오를 수 없는 불씨가 오래갔다. 그들은 증오의 침을 뱉고 발기하고 같이 자고 서로 다른 꾸을 안고 헤어진다. 어느 한쪽에서 불씨가 댕겨지고 둘은 주먹을 쥐고 만난다. 한 방 먹이고 싶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안기고 싶은 서로의 가슴을 본다. 그들은 헤어졌고 불씨는 겨우 꺼졌다. 고무를 태우는 것 같은 역한 냄새가 남았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보냈고 냄새는 옅어지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아직 무언가를 태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 p. 238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아름답고 밝은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처럼 지긋지긋하지만 끊을 수 없는 관계들도 있다.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어서 죽도록 쓸쓸한 이야기들, 이것도 결국은 사랑 이야기다.
시간은 흐르고 무수한 선택으로 우리는 현재를 만났다. 변한 것과 그대로인 것,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이 남았다. 어둠 속에 가둔 가능성들 속에서 다른 운명으로 흘러간 나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야기들은 가끔 그곳에서 온다. 벽 너머 어둠 속에 잊혀진 기억 몇 개와 선택하지 않은 길들에 상상을 덧대어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나와 다르게 움직이는 거울 속의 나를 보게 되지만 그 환영들이 빛이 닿는 곳에 머물 수는 없다. - [도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