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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평점 :
세종대왕때의 천재 발명가이자, 과학자인 장영실을 모르는 우리나라 국민은 없을것이다. 또한 장영실은 몰라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함께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 천문학 등 여러 분야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장영실을 만났었고, 더 나아가 장영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이었다고 한다면? 처음 들으면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이상훈의 장편소설 《한복 입은 남자》를 읽는다면, '그럴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방송국 피디인 진석은 바로크의 화가 루벤스가 그린 <한복 입은 남자>라는 그림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준비해오고 있었다. 자료 수집차 들른 박물관에서 세계 최초의 비행기라고 할 수 있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비차의 모형물을 보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 설계도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에 의아해한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만난 엘라나 꼬레아라는 묘령의 여자로부터 조상의 비망록이라는 책을 건네받게 된다. 한자와 한글, 그리고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몇백년전의 비망록, 진석은 고서점을 운영하는 한문학에 유능한 친구 강배에게 비망록의 번역을 부탁한다.
그리고 비망록에 숨겨진 진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세종 때의 과학자 장영실의 남긴 것이었다.

장영실은 경상도 동래현의 관기의 아들로 태어나 노비라는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신분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하는 도천법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궁에 들어가게 되었고, 종3품 벼슬까지 오르게 된다. 자격루, 천문관측용 간의, 혼천의, 해시계인 양부일구, 측우기, 금속활자인 갑인자 등 장영실의 업적은 실로 어마어마 하다.
그렇지만 관기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언제 태어났는지를 알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가 궁에 들어가서 이룬 업적들은 모두 조선왕조실록 등등에 기록이 남아 있어서 우리가 잘 알 수 있다. 종3품의 벼슬까지 오르며 실력을 인정받고 뛰어난 활약을 보이던 장영실은 ,그가 감독해서 만든 임금의 가마가 부서지는 바람에 불경죄로 곤장 80대를 맞고 한양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의 행적은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정도의 벼슬이었다면 낙향한 후에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언제 죽었는지는 나와야 당연한 것인데, 유독 장영실의 행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는 사라진 장영실의 행방을 픽션의 세계로 만들어냈다. 동서양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조합해서 '있음직한' 장영실의 노년의 행적을 구성해나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너무나도 닮은 조선시대 비차와 레오나르도의 비행기 설계도, 그리고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였다.
장영실이 1400년대에 어떻게 이탈리아까지 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명나라 시대 7차례에 걸쳐 서양 원정을 떠난 정화 대장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인류 최초로 지구일주 항해를 한 마젤란이나 처음으로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서양 원정에 나섰던 명나라 시대의 정화 대장은 거의 모른다. 나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환관 출신이었지만 당나라 영락제의 신임을 받은 정화 대장은 함대를 이끌고 7차례에 걸친 서양 원정에 나선다. 동남아시아, 인도양, 페르시아만과 홍해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갔다고 한다. 정화 대장의 함대가 유럽까지 도착했냐는 것은 아직도 갑론을박에 쌓여있지만, 최근의 나타난 증거와 연구들로 인해 사실인 것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고 한다. 정화 대장의 해도가 후에 마젤란이 콜럼버스의 항해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장영실은 재능을 인정받아 여러차례 명나라에 갔다왔었기 때문에, 둘 다 노비 출신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등의 공통점이 있는 장영실과 정화 대장이 만났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의 행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장영실이 이탈리아까지 갔다는 작가의 주장을 완전히 허무맹랑하다고만 치부할 수는 없는것이다.
우리나라의 천재 과학자였던 장영실, 그리고 마젤란과 콜럼버스에 앞서 서양원정길에 나섰단 정화 대장의 극적인 만남을 통해서 '엉뚱한 상상은 점점 현실화 되고, 역사적 가정이 아니라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픽션이라는 것을 알지만, 충분한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에 읽으면서 마음은 점점 두근두근 떨려왔다.
한편으로는 장영실이 이탈리아까지 갔다면 어떻게 이탈리아에 장영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수도 있다. 그것에 대한 것은 책을 읽으면 충분히 수긍이 갈 것이다.

어떤 진리도 처음에는 부정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진리 그 자체가 변화하진 않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의 발표가 시발점이 되어 서양 위주의 역사관이 바뀌어 나가길 고대합니다. 여러분의 당당한 역사를 되찾으십시오. - p. 490
작가는 잊혀졌던 우리나라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과 동양의 대항해 시대의 선구자였던 정화 대장의 이야기를 통해서 '있음직한' 역사적 사실을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서 서양 위주의 역사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에게도 각성을 이끌어낸다. 콜럼버스보다 90년이나 앞서 세계 일주에 나선 명나라의 정화 대장과 우리나라의 천재 과학자였던 장영실을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동양에도 콜럼버스나 다빈치에 견줄만한 인물들이 있다고 말이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크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하지. 그러나 세상의 밖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들이 많이 있어.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는 얘기지. 그래서 내가 목숨을 걸고 세상 끝까지 항해를 하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아 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 p. 180
역사란 우연을 가장하여 때론 치밀한 각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 p. 265
처음에는 얼토당토 않았던 장영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만남은 점점 '있음직한' 역사적 사실로 여겨지게 된다. 물론 지나친 억측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상상은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완전히 억지도 아니다. 또한 잊고 지냈던 우리나라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다시 떠올리고, 장영실과 세종 시대 이루어진 과학과 천문학계의 업적이 서양과 견주어 봐도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하다는 것을 다시 인지하는 기회가 되었다. 영화화 하기로 결정되었다는 <한복 입은 남자>, 영상으로 만나볼 날이 기다려진다.
* 루벤스의 다른 그림인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기적> 속에도 <한복 입은 남자>에 나오는 인물과 비슷한 조선인이 숨겨져 있다. 또한 <한복 입은 남자> 속에 숨겨진 다른 비밀도 책과 책 뒷편에 첨부된 자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