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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저기까지만, - 혼자 여행하기 누군가와 여행하기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빨리 '어른'이라는 장소로 도망쳐 오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에게, 그녀에게 빔을 보냈다.
어른이 되면 좀 자유롭단다. 혼자 여행을 떠나도 괜찮아.
29살 처음으로 떠난 파리 여행 이후, 나는 혼자서 여행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어갈수록 혼자 여행하는 것이 편해졌다. 예전에는 여행을 함께 갈 친구가 없으면 어디 갈 생각도 못했지만, 이젠 함께 갈 누군가가 없으면 '혼자 가지 뭐' 하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혼자보다는 마음 맞는 누군가와 여행하는 것이 더욱 좋지만.
이번 2박 3일간의 짧은 여름 휴가 기간 동안 함께한 마스다 미리의 책 「잠깐 저기까지만」은 이번 휴가 동안 나의 친구가 되어줬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그리고 지하철 안에서, 카페에서 버려질 수 있는 시간들을 알차게 채워주었다. 무엇보다도 어른이 되어서 이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돌아다녀도 부모님이 뭐라고 하지 않는 여자 어른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나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책은 40대의 여자 어른인 마스다 미리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일본에서의 국내 여행과 핀란드 해외 여행 등 19가지의 소소한 여행기를 담은 책이다. 마스다 미리 혼자 떠난 여행도 있고, 일흔을 바라보는 엄마와 떠난 여행도 있고, 마음 맞는 여자 친구나 남자친구와 떠난 여행도 있다. 혼자 핀란드로 떠난 여행 말고는 대부분 '잠깐 저기까지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여행들이다.

마스다 미리와 나는 여행하는 방법에서 같은 점도 있고, 다른점도 있다. 여행지에서 맛있는 것을 지나치지 못하고, 여행지에서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 줄을 서고, 여행지에서는 사고 싶은 건 꼭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 등이다. 그렇지만 다른 점이라면 마스다 미리는 여행사에서 나온 상품들, 패키지 여행 상품을 잘 이용한다는 점이다.
혼자 간 파리 자유 여행 이후로 패키지 상품보다는 자유 여행을 선호하게 되었는데, 여행사의 특가 상품이나 저가 상품으로도 근교를 여행하고 오는 마스다 미리를 보면서 나도 다음엔 여행사를 한 번 이용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 여행에서는 보고 싶은 것을 볼 때, 사고 싶은 것을 살 때, '나중에'는 금물이야. - p. 74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다음에도 같은 여행이 될리는 없다. 기분, 날씨, 몸 컨디션. 각각의 균형으로 여행의 온도는 결정된다. 같은 여행은 두번 다시 할 수 없다. 그걸 알기 때문에 언제나 헤어지기 섭섭한 것이다. - p. 141
여행이란 비일상이어서 때때로 '일'을 집어넣지 않으면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지도 모르곘다. 탁탁 빨래를 펴서 욕실에 걸어두면 내 여행을 하루가 끝난다. - p. 150

여행지에 대한 거창한 설명이나 정보는 없지만 소소한 마스다 미리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여행에 대한 단상, 그리고 삶에 대한 단상들을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마스다 미리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청춘'이란 지난 뒤에도 어딘가 가까이 있다가 이따금 얼굴을 내미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 p. 38
마흔을 넘어 뭔가가 해결된 게 아니다. 막연한 불안을 떨쳐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순간의 행복을 인정할 수 있는 힘을 갖추었다. 헬싱키 거리를 마음대로 걷고 있을 때 나의 '행복'은 완벽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나를 현혹시키는 것은 무엇 하나 없었다. - p. 174

특히 나도 재미있게 봤던 영화 《카모메 식당》의 배경인 핀란드 여행기를 읽으며 핀란드가, 북유럽이 너무나 가고 싶었다. 원래 유럽은 나에게 항상 가고 싶은 장소였지만, 이 책을 보니 유럽병이 다시 도지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은 익숙하지 않은 일본의 지명이었다. 교토나 오사카, 나라 등 익숙한 곳도 있었지만,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이 지역이 일본의 어디쯤에 있는지 검색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도 '잠깐 저기까지만' 하는 마음으로 여행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