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폭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서른살 마루야마 겐지의 여행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십 대의 대부분을 소설에만 매달려 살다가, 오토바이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총 5장 중, 1장은 "바람과 도로의 사자"로 호주 사막을 오프로드 바이크로 30여일 달린 경험,

2장은 "폭주 오디세이"로 케냐의 사파리 랠리를 취재하며 경험한 기록,

3장은 "미드나이트 선, 백야"로 노르웨이의 바이크 여행기, 

4장은 "흐르고, 쏘다"로 미국 서부에 대한 여행기..라기보다는 생각들, 

5장 "동경과 두려움"은 바다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거대한 유조선에 직접 탔던 경험이 쓰여졌다.


호주 사막에서의 바이크 여행은 모두가 말리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고, "거의 매일 위험과 조우했다"고 강조되고 있다. 


"오토바이는 남자가 혼자서 타야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오토바이를 도피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한, 무언가를 잡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그가 학창시절 <백경Moby Dick>을 보고 "그때껏 읽은 책이 전부 쓰레기로 여겨질 정도로" 좋아했다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많은 것을 담은 <모비딕>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순 없지만, 어쨌든 첫장부터 나를 웃게 한건 주인공의 허세였다. 

이 책 역시 허세가 가득. 그 이야기를 하려면 끝도 없어 이것으로 접는다.


그는 남자와 여자의 성향에 대해 무 자르듯 정확하게 구분한다. 

그가 구분하는 인간은 세 종류. 남자와 여자, 여자에 가까운 타입의 남자다. 

불편한 부분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여자들 대부분은 지속적인 안정을 원한다. 여자에 아주 가까운 타입의 남자도 안정을 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상적인 남자라면 똑같은 나날의 반복을 견디지 못한다."


"여자와 여자에 가까운 남자는 자기라는 존재를 그렇게 의심하지 않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다."


"진정한 감동은 언제나 형태의 바깥쪽에 존재한다. 이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러나 그런 감동은 땀과 흙 범벅이다. 여자나 여자에 가까운 남자는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이래서 여자와는 말을 섞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남자는 용기를 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을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쓱 내뱉는다. 망설임이나 주저 따위는 애당초 알지 못한다는 말투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뉴트럴 기어 기능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일까."


"여자는 하늘하늘한 옷을 차려 입고 남자들이 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해도 살아갈 수 있다. 남자들의 시선 하나로도 충실감과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여자와 동성애자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처음부터 자기만의 답을 갖고 있고, 타인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그 답을 긍정해 주기를 원할 때 뿐이다. 또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말밖에 원하지 않는다."


와닿았던 그의 통찰들을 옮기자면 이러하다. 


"텐트 안에 누우면, 어떤 동물이든 이 대지에 함께 사는 불행한 동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인간과 마찬가지로, 왜 그런 꼴의 몸을 지니고 왜 이런 공간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전혀 모르는 채, 열심히 살고 있었다."


"야생동물과 공존할 수 없으면 진정한 문명국가라고 할 수 없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사는 삶은 중단해야 한다.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또 타인을 말로 부정해 자신을 긍정하려는 태도도 허접하다. 타인의 삶을 문제 삼기 전에 자신의 삶을 확립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의 감동을 나눠가지려 하기 전에 스스로 감동을 찾아 나서야 한다."


소설가로서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런 점은 그의 심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술고래에 종일 움직이지 않고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 대는 소설가가 많다. 나는 그들의 생활을 도저히 흉내낼 수 없다. 그들의 작품을 간혹 읽어보는데, 역시 군데군데에서 피로감이 느껴진다. 허접한 스토리를 적당한 문장으로 엮어내고 있다. 자제력도 말을 듣지 않아 들떠 있다. 그런데 그런 작품을 좋다고 달려드는 독자가 세상에는 참 많다."


"들새와 들풀을 사랑하는 고상함과 선함만으로는 소설을 절대 쓸 수 없다. 그 점을 오해하는 문학 팬이 많은 듯하다. 그리고 그들의 오해 위에 성립한 일본 문학은 알게 모르게 왜곡되고 말았다. 작품의 주인공이기도 한 작가는 자신이 얼마나 나이브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인지를 다투는 거짓 세계로 방향을 틀었다."


"나는 소설의 소재를 찾기 위해 외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소설가에게 중요한 것은 소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그의 성차별적인 발언 등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것을, 작가 스스로 분명하게 알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위험한 글을 쓰는 작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한국의 장 모 소설가가, 쪽바리도 타는 노벨문학상을 한 번도 타보지 못한 한국이라며 개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표현이 좋다기보다, 논란이 될 수 있는 말이라도 내뱉을 수 있는 그 깡이 좋았다. 

모든 예술가에게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예술가는 그러했으면 좋겠다.

문제가 되든 말든, 세상을 놀라게 하든 말든, 제 안에 품은 생각들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용기. 


이 에세이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그의 소설이 보고 싶어졌다.

이런 그의 시각들은 소설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 것인가. 교묘할 것인가, 혹은 드러나지 않을 것인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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