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나르시시스트와 그 희생자들 - 악성 나르시시스트의 정체와 그 희생의 메커니즘을 찾아서
장 샤를르 부슈 지음, 권효정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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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뿐만 아니라 그 희생자들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쩌다 그들은 나르시시스트의 희생양이 되었는가.


(책은 악성 자기애자, 악성 나르시시스트, 도착자라는 말을 혼용하고 있다. 다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악성 자기애자는 외면적으로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며, 동정과 연민을 가장한다. 

그러나 실은 스스로 죄책감을 모르면서, 타인에게는 죄책감을 안겨준다. 

자신이 타인보다 위에 있으며, 특별한 존재로서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만족적이고, 겸손이 부족하고, 타인을 무시하고 자신에게 과도하게 몰두한다. 애정에 대한 욕구는 사회관계 속에서 어느 정도 조율될 수 있고,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도 있다. 

자신의 장점은 과대평가하고, 실패나 인간관계를 악화시키는 스스로의 과오는 과소평가한다. 질투심이 강하다.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외동, 혹은 첫째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특징 중 일부를 못견뎌한다. 물려받았음을 알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에, 타인에게 그 부분을 떠넘긴다.

도착자는 피해자를 비난하고, 자신이 옮긴 일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한다. 본인은 좋은 사람, 심지어 자기가 피해자라는 인식을 상대에게 심어준다. 

가령 자신의 외도에 대한 책임을 상대에게 묻고, 스스로는 그 책임에서 벗어나 피해자가 된다.


악성 자기애자의 주무기는 '말'이다. 역설적 명령을 통해 피해자의 자아를 약화시키고, 현실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한다.

상대방을 폄하하고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며 자신의 갈등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본인은 우울증에서 벗어난다. 

도착자가 상대를 조정하며 기쁨을 느끼는 동안, 희생자는 큰 혼란에 빠진다. 


악성 자기애자는 자기애의 결핍으로 고통받는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부정적인 자기상을 갖는다. 스스로 사랑받지 못할 존재로 느끼고, 자존감이 없고, 인격 형성이 잘 되지 않았다. 이를 보상 하려는 듯, 자신에 대한 과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혼란스러운 내면과 약한 자존감, 그렇기에 어떻게서든 지켜내야 할 자신에 대한 과대한 이미지가 공존하는 것이다. 

악성 자기애자들은 연인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착취 행위를 가한다. 그 누구에게도 고마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세상의 모든 이가 자신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진짜 자아상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가치가 아닌 타인(혹은 집단)의 가치만을 높이 산다. 

진정으로 타인과 교류하는 것이 힘들다. 세상과 절연하지 않기 위해 피상적 인간관계를 유지해 갈 뿐이다. 

내면의 자아를 용기있게 마주할 필요가 있다. 장점과 단점 모두를 포함한,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상담치료사 또한 악성 자기애자의 정체를 쉽게 식별해내기 어렵다. 그들이 투사의 기제를 써서 피해자처럼 가장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잘못이 없다고 말하기보다, 그들 자신의 가치관과 내면에 대해 숙고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희생양은 대체로 인심이 후하고 진정성이 있고 타인에게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스스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는 것도 공통된다.

누군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완벽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계를 바라며,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잘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그들은 타인을 보호해주려 하며 사랑하고 위로하고 달래준다. 쉽게 스스로를 비난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비판적 시각과 자율성과 존엄성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 노력하며 자신의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주려 한다. 타인에게 쉽게 종속되고, 사랑하는 대상에 환상을 품고, 그것을 오래 지속한다. 자신의 사랑을 자랑스러워하고 현실을 직면하길 원치 않으며, 스스로 희생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때때로 그들은 마조히스트 기질을 보이기도 한다. 

도착자도, 희생자도 모두 자기애가 결핍된 사람들이다. 


공격자는 이를 쉽게 간파하고 이용한다. 악성 자기애자는 희생양이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것을 허락지 않고, 그들의 관계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없도록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도 용인하지 않는다. 피해자를 계속 비하하며 고립시켜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피해자가 그를 대신하여 광기의 증상을 나타내게 만든다. 희생양들은 우울증과 폭력상태로 이끌어진다. 

악성 자기애자 앞에서 이성을 잃고 화를 낸다면, 그들의 시나리오에 말려든 것이다. "이제야 너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가장 이상적 해결책은 악성 자기애자와 완전히 인연을 끊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며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우선하는 일은 없다." 도착자 또한 새로운 희생양을 찾거나 자신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다. 

도착자를 떠나기 위해서는 관심을 완전히 자신에게로 돌려야 한다. 스스로를 잘 알기 위해, 본질과 조우하기 위해.

스스로를 깊이 이해함으로써 상대의 비난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 


악성 자기애자는 희생자들의 욕망뿐 아니라 주체성 또한 완전히 무시한다. 문제는 피해자 자신 역시 그것을 모두 부정하게 되는 위험이다. 그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던짐으로써 혼돈을 일으킨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한, 혼란은 지속된다. 아예 무시하는 것이 혼돈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악성 자기애자는 영유아기 때 정신발달 상태에 머물러 있다.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재창조하길 원하며 주변 사람들을 파괴하면서까지 자신의 전능함을 확인하려 한다. 


악성 자기애자를 잔인하리만치 끔찍하게 이야기한 것 같지만, 저자는 동정심을 보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악성 자기애자를 관찰하다보면, 그들 역시 또 다른 도착자로부터 상처입은 피해자였음을 알게 된다. 도착이 대물림되는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대해 깊이 연구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묶어놓았던 속박의 사슬을 끊고 자신이 자유로워져야만 곁에 있는 타인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고, 가해자에 대한 용서는 신의 몫이라고. 

"그들도 과거 어느 시절에는 학대에 고통 받았던 힘없고 조그만 아이였단 사실을 잊지 말자.

 희생양은 어느 순간 지옥을 벗어날 수 있지만, 도착자는 자신의 정신세계에 갇힌 가여운 포로다."


퍽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스스로의 인간관계에서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면, 자신의 문제를 냉정하게 돌아볼만 하다.

(상대방 혹은 스스로) 나르시시스트는 아닌지, 번번히 그들을 찾아다니는 자발적 희생자들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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