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광인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무려 70년의 세월이 걸려 만들어진 옥스퍼드 영어 사전. 

현대 학자들에 의해, "남녀 성차별주의, 인종 차별주의 및 야단스럽고 케케묵은 제국주의적 태도"로 비판받기는 하나, 

훌륭한 사전이며, 쉽게 이룩할 수 없는 대단한 성취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 사전을 편찬하는데 큰 공을 세운 머리와 마이너, 그리고 또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대와 열정과 아이러니가 담겼다. 


교수, 제임스 머리: 

타고난 공부광. 열다섯 살에 라틴어는 기본이며,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그리스어를 습득하고, '아는 것' 자체를 위한 공부를 계속한다.

그가 직접 쓴 글에 의하면, 로망스어(이탈리아, 프랑스 등), 프로방스어(포르투갈 등), 튜턴어(네덜란드), 플라망어(독일, 덴마크), 켈트어 등등을 할 줄 안다고. 

가난 때문에 열네 살에 학교를 떠나야 했으나 계속된 공부로 1869년 언어학회의 평의회 회원이 되고, 1878년 옥스퍼드 사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광인,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 

선교를 위해 실론으로 간 미국인 선교사 가정에서 탄생. 생모와 형제들 대부분이 이른 나이에 사망.

훌륭한 교육과 여행, 다양한 문학과 신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 덕분에, 일찍이 여러 나라 언어를 습득. 

열세 살 때 원주민 여성들을 상대로 한 '외설스런 생각'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고 섹스와 죄책감이 결합되어 평생 고통스러웠다고 후일 고백한다. 

열네 살, 부모에 의해 귀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무난하게 의사가 되어, 남북전쟁이 벌어지던 1864년 군의관으로 입대한다. 

그 후, 광기가 전면적으로 드러난다. 

육탄전으로 붙어 싸우는 잔인한 전투, 열악한 의료 상황, 그야말로 "미친 전쟁"이 그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 존경받는 삶은 세 줄로 요약했으나, 실패한 삶은 간단히 요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느낀다. 실패란 이렇게도 매력적인가. -


군의관인 마이너는 명령에 의해 아일랜드 탈영병의 얼굴에 낙인을 찍어야 했고, 그 후 아일랜드인에게 보복 당할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사건 직후에는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던 마이너는, 그로부터 몇년 뒤 총을 상시 소지하기 시작하고, 매춘굴의 단골손님으로 각종 성병에 걸리게 된다.

군에서 강등당한 후, 그는 두통과 현기증을 호소하기 시작하고, 1868년 그의 정신 이상에 대한 확실한 진단이 나와 강제 퇴역하게 된다. 

유럽을 여행하다 매춘이 쉬운 런던의 빈민가에 머무르던 중, 지나는 행인 조지 메리트를 살해하고, 정신이상이 인정되어 브로드무어 수용소에 구금되게 된다. 

망상은 갈수록 심해진다. 침입자를 주장하며, 밤새 어린 소년이 괴롭힌다는 등의 망상은 물론, 사회의 부정부패가 자기 때문에 벌어진다는 망상까지. 

구금 이후의 그의 삶 48년 중 47년간을 국가가 운영하는 수용소 몇 곳에서 보내게 된다. 


세대를 뛰어넘어 칭송받는 옥스퍼드 사전의 편집자 머리와, 수용소에 구금된 정신이상자 마이너.

이들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엔 옥스퍼드 사전이 있다. 

사전을 만드는 과정, 사전에 대한 학자들의 열망, 그렇게 만들어진 사전의 성취 등이 이야기될 땐 흥분과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옥스퍼드 사전의 특별함은, 다른 사전과는 달리 각종 문서에서 인용문을 발췌해 어휘의 뜻을 정의한다는 것이다.

"영어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심지어 그 모든 것을 설명하는 여러 문장의 인용문이라니. 불가능해보이는 목표는 결국 성취된다.

"빅토리아 시대는 위대한 사람들과 위대한 비전과 위대한 성취가 넘쳐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의 노력으론 불가능하기에 보수를 받지 않는 아마추어 수백 명, 바로  '자원봉사자'가 필요했다. 

머리는 적극적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수용소에서 그 소식을 접한 마이너는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사전을 만들기까지의 우여곡절도 매우 흥미로울뿐 아니라, 그들의 열정도 놀랍다. 때로는 반어적 의미로. 

"하나님이 영국인이라고 생각했던 런던의 언어학회 사람들은 하나님이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기본장치로서 영어의 보급을 허락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하나님이 영어를 전세계에 파급시킨 뜻은 전세계에 퍼진 기독교의 성장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영어와 기독교를 동일화한 것은 아주 간단한 일로 그것은 세상의 선을 독려하기 위한 공식이었다."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 마이너는 사전 제작에 몰두하게 된다. 사전 제작은 그에게 곧 "사회의 일원"임을 의미했으므로. 

그 이유 때문일까. 옥스퍼드 사전 제작에 큰 공을 세운 광인-으로 알려진 사람-은 한 명 더 있다. 닥터 피체드워드 홀. 


머리는 처음엔 마이너의 상황을 몰랐지만, 알게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교류하며 친분을 쌓는다.

또한, 그는 옥스퍼드 사전에 대한 홀과 마이너의 공을 치하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마이너는 1902년 끔찍한 자해를 저지르는 등 병은 더 깊어가고, 여러사람의 도움 끝에 1910년 고국으로 돌아가 그곳의 수용소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여전히 정신병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 당시보다는 -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 환자에 대한 대우, 치료, 병의 호전 등이 다르다뿐.  

저자는 아이러니한 사실에 주목한다. 

만약 마이너가 좋은 치료를 받았다면 사전 편찬 작업에 그렇게 열심이진 않았을 것이라는 점.

그의 편집증이 치료되거나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었다면, 그가 그렇게 몰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 

"마이너에게 사전 편찬을 위한 인용문은 약이었고, 인용문 작성 작업은 치료과정이었다."

"좀 이상한 얘기지만, 그가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사전 편찬에 그토록 집착하게 된 데 대해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 그는 정신 이상자였는데, 그것이 우리에겐 다행스러웠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잔인한 아이러니다. 그 생각을 하면 인생에 대한 깊은 좌절감이 느껴진다."


책은 풍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되, 합리적 추론과 저자의 상상력이 결합되어 독특한 결과물이 되었다. 

(줄리언 반스의 <용감한 친구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저널리스트가 쓴 소설이라는 점 역시 그 독특함에 한 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 전반에 걸쳐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의 생각은 의도가 있든 없든 드러나고 있지만, 

교수와 광인, 즉 머리와 마이너가 굉장히 유사한 인물이라고 주장하는데 있어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마이너가 돌이킬 수 없이 깊이 미쳐 있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을 제외하면 두 사람의 조건은 똑같았다."

"여러 가지 비슷한 요소에다가 수염까지 더해져서 두 사람이 마주섰을 때, 낯선 사람을 만난 게 아니라 거울 속의 자기를 보는 것 같았다."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본 사람이 있다면, 두 사람의 환경이 이상하게도 양쪽으로 대칭을 이룬다는 사실에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 모두 어마어마한 책더미에 파묻혀서 오로지 숨겨진 지식 탐구에만 온 정신을 쏟고, 매일 폭풍우처럼 밀려들어오는 종이와 잉크의 홍수 속에서 유일한 배출구는 서신 왕래뿐이란 점에서 말이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이 결합해 만들어진 패기 넘치는 소설이다.

인류의 역사적 쾌거가 된 사전을 만들 수 있게 한 시대의 열정, 그 시대의 불운아, 그 불운으로 이룩한 성취 등이 커다란 아이러니를 이룬다.

내가 느끼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뜻밖에도, 저자가 마이너의 손에 불운하게 죽어야만 했던 조지 메리트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이 책을 그에게 바치고 있다. 

"예상치 못한 때에 그가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면, 여기 나오는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이 이야기도 결코 하지 못했으리라." 


<교수와 광인 -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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