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주거 (양장) 일상성.일상생활연구회 9
대안사회를 위한 일상생활연구소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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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관한 이야기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의 현대사는 급격한 변화를 이루었고, 이에 따라 집의 형태 역시 급속히 변했다. 책에 의하면, 한국의 아파트 주거 비율인 60%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든 수치이며, 총 공동주거의 형태는 75%를 점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주택정책은 물론 공동주거로 인한 많은 갈등이 야기되었다는 것에 책은 주목한다.
"이에 이 책에서는 일상생활론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집의 의미를 현재적 주거 문화로의 이행 과정과 특징, 국가의 주거정책, 다양한 주거 문화 등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p9)


집의 기본적 기능과 의미부터, 한국의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주거 생활이 어떻게 변했는지, 왜, 어떤 과정을 통해 아파트가 우리사회에서 지금의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는지 등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아파트를 최초로 주장한 르코르뷔지에는, "못사는 사람들도 햇빛을 받고 바람을 쏘일 수 있게 하기 위해"(p114) 고층 아파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최초엔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대책으로서 등장했던 아파트가 표준적인 주거양식으로 굳어져가는 과정은 들을 때마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고로, 정부의 주거정책은 두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되기까지의 현대사를 돌아보려면 강남 개발의 역사도 빠지지 않는다. 민간 자본에 의존한 저소득층 밀어내기 식의 개발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것이 비단 70-80년대 군사정권 시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비통함을 더한다.

"2014년의 세월호 참사와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 그 진상 규명에 대한 회피, 시민집회에 대한 차벽 설치와 폭력적 진압, 백남기 씨 사망 사고에 이르기까지,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은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p88)


책에 의하면,
 한국은 '세계 슬럼 퇴거 사건사' 규모면에서 2위를 차지한다고 한다(p150). 미얀마 양곤의 100만명 규모의 강제 퇴거 사건 다음으로 가장 큰 규모로서, 1988년 서울시가 80만명을 퇴거시켰다는 것이다. 

살 집을 직접 만들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절로 <월든>이 떠오르기도 한다. 현재, 모든 것은 세분화된 직업인들에게 맡겨졌고, 그리하여 집의 다른 어떤 가치보다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모든 물건이 상품화되는 사회로의 이행에서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p130)
먹을 것, 입을 것이 그렇듯, 살 곳 역시 상품인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것이 내포하는 것들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자본주의는 내게 애증의 대상이다. 

책은 교외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별장처럼, 제2의 집처럼 어떤 로망을 품고 찾아가는 곳, 누군가는 더이상 갈 곳이 없어 쫓기듯 몰려나게 된 곳, 교외의 집이다. 책은 이를 경제적 의미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역사회와의 충돌이나 통합 등의 측면에서도 바라보고 있다. 교외를 설명하는 다음의 말은, 어느 곳에나 해당될 수 있을 듯하다.
"(...) 교외 특성이 고착화되었을 때 그것이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방향으로든 내면화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사람의 목적과 조건, 지역의 환경이 만나서 특정한 '교외'를 만들어냈을 때, 그 '교외'는 다시 사람들의 일상에 내면화될 수 있다. 즉, 하나의 교외가 특정 이미지로 고착된다는 것은 그 속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로든 하나의 꼬리표가 된다."(p155)
누군가에게는 등에 달고 다니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떨쳐내고 싶은 꼬리표가 되리라.
"급격한 산업화 및 물질 중심주의 아래 우리의 주거 문화와 주거 환경은 올바로 정착되기 어려웠으며 집을 통한 구별 짓기, 즉 차별화 및 양극화 현상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사회의 변화는 '집=돈=높은 경제적 위치=높은 사회적 지위'라는 인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집을 통한 차별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p167)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에 산다는 것으로 나를 드러내려는 천박함, 그것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몰상식함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책은 이보다는 고상하게 표현한다. 다음의 말은 고지식하고 태평하게 들리지만, 원칙을 살피는 것은 문제 해결의 시작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을 과시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는 진솔한 생활공간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도시에서의 가족과 이웃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첫번째 조건일 것이다."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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