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숙녀들의 사회 - 유럽에서 만난 예술가들
제사 크리스핀 지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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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기자는 "아,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뜨거운 문장으로 이 책의 추천사를 맺었다.

나로선 이렇게 쓸 것은 꿈조차 꾸지 못하고,

이 책을 읽은 사람과 간절히 대화하고 싶다. 


세상 곳곳에서 나를, 우리를 발견하는 요즘. 

저자는 죽은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나를, 그리고 우리를 생각한다.


"내 인생은 정말로 내 것인가, 아니면 남이 나를 위해 골라준 것인가? 이 모든 게 정말 나답긴 한가? 이런 질문들이 내 존재를 잠식해나갔고 마침내 나의 성채는 몇번이고 절망으로 붕괴했다."(p11)


저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러니까 순간일지언정 자살을 떠올리기까지 했을 때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택한 여행의 동반자는 죽은 사람들이다. 

불면의 밤들을 함께한 작가, 화가, 작곡가 등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 

"나는 언제나 기존 인생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다른 곳에서 새로 시작한, 실을 끊어내고 방황한 영혼들에게 매료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버텼는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아야 했다."(p13)


다음 문장들을 보며, 나폴리4부작의 릴라를 떠올렸다. 

"나라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게 거의 원자 수준에서 지겨웠다. 내가 해체되기를, 나를 한데 묶고 있는 화학적 결합이 약화되고, 나의 모든 조각들이 천천히 공기 중으로 용해되기를 바랐다. 내 소망은 더는 죽는 게 아니었다. 내 새로운 소망은 나를 둘러싼 환경의 무언가로, 좀더 튼튼하고 독일적인 원자들로 대체되는 것이었다." (p19)


마치 릴라를 통해, 직접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증발하고 싶었다고. 


그녀가 찾은 첫번째 죽은 사람은 베를린의 윌리엄 제임스다.

"불확실성의 무게"(p28),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흘려보낸 수십년의 세월"(p41)을 딛고, 19세기 가장 훌륭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우뚝 선 사람. 

저자는 윌리엄 제임스를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세상의 영광과 결핍, 재난과 아름다움을 고요히 이해한다. 철학자 제임스는 세상의 모든 슬픔과 폭력과 고통을 머리로 받아들이면서도 어떻게든 낙관을 유지한다. 세상의 나쁜 것들은 세상의 좋은 것들을 파괴하지 않는다. 단지 그 옆에 나란히 존재할 뿐이다." (p24)

그는 기록한 바 있다. "내가 처음 자유의지로 행한 건 자유의지를 믿는 것이었다"(p48)라고. 

절망의 순간을 승화시킬 줄 알았던 철학자다.

그의 이야기는 저자가 택한 '죽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 타자는 트리에스테의 노라 바너클이다. 위대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아닌, 그의 아내를 찾아 나선 것. 

저자는 우리가 예술가의 아내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갖는다고 지적한다.

아내가 예술가의 뮤즈일 때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바가지를 긁고 천재의 발목을 잡을 때 그녀를 용서하지 못한다고. 


"그게 지금껏 노라가 문맹, 재미없는 사람, 잡년으로만 그려진 이유일 거다. 노라가 저지른 대죄는 천재 제임스 조이스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는 거다. 그녀는 남자 제임스 조이스와 사랑에 빠졌다."(p56)


저자는 노라 바너클을 문학 시대의 아내로, 자신을 또 다른 문학 시대의 정부(情婦)로 규정한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게 가능한 선택지가 이 둘뿐인 것처럼 보이는 건 어째서일까." (p72)

"친구들이 아내로 변신하는 걸, 남편을 위해 자기 존재의 일부를 닫기 시작하는 걸 목도했다. 남편의 소망을 위해 자신의 소망을 포기하는 사례들을 봤다. (...) 나도 그런 여자의 손에 길러졌다. 부부라는 단어 자체가 상대를 끌어당기지 않고서는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서로 얽힌 채 실로 기워진 두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아내로서의 삶이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는지를 보았기에 이를 바탕으로 아내의 삶 자체를 경멸했다." (p74)


그녀의 글은 시종일관 솔직하고 뜨거웠다. 


"나는 내 연인을 사랑하지만 새로운 남자를 만날 때마다 그가 데려다줄 멋진 신세계를 함께 여행하는 정교한 환상에 젖는다. 

 나는 내 힘으로 트리에스테에 왔다. 트리에스테행은 내가 결정한 일이고 기차표도 내가 번 돈으로 구입했다. 이 근사한 장소까지 지도를 그린 사람도, 낙타를 이끈 사람도 나 자신이다. 

 그러나 나의 이자벨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묻는다. 같이 짐을 끌고 이국 땅에서 내 동지가 되어줄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머릿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속삭인다. 그녀를 나타나게 하려면 우선 내가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임을 인정해야 한다고."(p83)


세번째 죽은 사람, 사라예보의 리베카 웨스트.

리베카 웨스트에 대한 평가는 통렬하지만, 자신에 대한 성찰 역시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저자는 웨스트의 삶의 이면, 인간 리베카를 들여다본다. 

그녀가 어머니로서 훌륭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전기 작가들과 비평가들에게 비판당하고 있음을. 

아버지는 쉽게 면피권을 얻지만, "어머니는 딱 두 발자국만 앞서 걸어도 자식을 버린 이기적인 년"(p127)이 되고 만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리베카는 그녀의 책에서 인간 리베카를 철저히 배제한 대신, 전쟁의 의인화로서의 여자가 아닌, "이름이 있고, 생각과 인생과 욕망이 있"(p134)는 여자들을 등장시켰다는 것을 정확히 짚어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계속 걷는 거다. 웨스트가 만난 그 여인처럼,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하지만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조차 사실은 우리 머리에 농간당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 (p139)


그외 마거릿 앤더슨, 모드 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서머싯 몸, 진 리스, 클로드 카엉의 삶을 색다른 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여행을 마치며 저자는 말한다. 

"이 여정에서 나는 하나의 도시를 선물로 받지 못했지만, 그만큼이나 넉넉한 것을 얻었다. 세상 속을 누비는 능력을 얻었다." (p374)

"집을 찾으러 나섰다가, 그 대신 세상을 발견했다." (p378)


책은 유머러스하다, 절망을 말할 때조차. 

페미니즘을 기술하는 유려하고, 세련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나아가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찾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할 이야기들이다.

젠체도, 당위론도, 엄숙주의도 없다. 

삶의 모든 방식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 타인의 삶에서 선택지를 뺏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즘을 설파하고, 

연대를 말하지 않으면서 연대의식을 고취시킨다.

이토록 유려한 문장들이라니. 

그녀에게 감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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