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기괴하다. 살인과 출산의 조합이라니.

탄생과 죽음, 아니 '죽임'의 조합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가 평범한 일상을 그리되 한 가지를 바꿔 모든 것을 바꾼 것처럼, 

이 소설 역시 그렇다. 

내게도 익숙한 평범한 일상이 그려진다. 직장생활, 한여름의 매미, 자외선 차단제. 

 다른 것은 하나, 살인의 의미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뒤가 배경이다. 연애-결혼-섹스-출산으로 이어지는 체계가 무너졌다.

인구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생명을 낳는 좀 더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이 요구된다. 

그렇게 도입된 것이 '살인출산 시스템'이다. 

'출산자'가 되기로 자청한 사람은 열 명을 출산하면, 한 사람을 직접 살해할 수 있는 당당한 권리를 획득한다. 

열 명을 탄생시킨 출산자에 의해 '망자'로 지목된 사람은, 한 달 뒤 출산자에 의해 합법적으로 살해당한다. 

망자에게 선택권이란 없다. 굳이 찾아준다면, 타살 되기 전에 자살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인류의 멸망을 막을 생명을 출산하는 것만이 최대의 윤리다. 사람들은 이 세계에 익숙해진다.

망자의 장례식에서, 조문객은 유족에게 감사를 표한다. 우리 대신 죽어 줘서 고맙다고. 

사람들은 망자를 기쁜 마음으로 보내고, 축복한다.


인간의 손에 의해 처절히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큰 죄를 지었어야 한다. 

아무리 큰 죄를 저질렀어도 이것이 정당하다고 결단코 생각지 않지만, 적어도 그랬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치정의 원한에 사무쳐,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누군가의 뱃 속의 태아였다는 이유로 죽여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죽어도, 이 세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망자의 죽음을 태연하게 말한다.

"새하얀 꽃이 웨딩드레스 같았잖아. 난 감동했어."(p68)


"(...) 망자의 유해는 누군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p57)

그들의 살의는 그토록 강력했을까. 열 번의 출산을 견디는 동안 끝내 유지될 정도로? 

열 번의 고통스러운 출산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던 살의를 증폭시킨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혹은, 이미 살의라곤 사라져버린 시점에 전신마취한 망자가 앞에 놓여져 있으니, 잃어버린 시간을 떠올리며 광기에 휩싸이는 건 아닐까. 

이것은 조작되고 의도된 광기임에 틀림없다. 인간을 믿는 나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의 온기를 잃은 정부에 의해, 인간의 광기가 집단적으로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역사적으로 그래왔듯이.

"정부에서는 최대한 빨리 열 명 중 한 명이 '출산자'가 되는 사회를 목표로 삼고 있대. 그렇게 되면 '출산자'만으로 인구를 유지하는 게 꿈은 아닌 거지!"(p60)

출간되는 책들은 인간의 살의가 당연한 것이라고 암시하며, 출산자가 되길 종용한다. 

말하자면, 예고살인의 합법화다.


책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쿠코는 “특정한 정의에 세뇌당하는 건 광기(p49)라고 말한다.

"세상의 변화는 막을 수 없어요. 아무리 외쳐 본들 '갱생'되는 건 당신 쪽이에요. 당신이 옳다고 여기는 세상을 믿고 싶으면, 당신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세상을 믿는 사람을 용서할 수밖에 없어요."(p90)

"세상은 긴 시간 속에서 그러데이션 돼서 대극으로 여겨졌던 두 색채도 결국은 이어지죠. 그래서 지금 서 있는 세상의 '정상'이 한순간의 신기루로 느껴져요."(p91)


이쿠코의 시각은 슬프게도, 변해간다. 

"우리는 이 얼마나 올바른 세상 속에 살고 있는가."(p116)

"설령 100년 후, 이 광경이 광기로 간주된다 해도 나는 이 한순간의 정상적인 세상의 일부이고 싶었다."(p118)


결국, 이 세계의 시스템에 회의적이었고 때로 혐오마저 느꼈던 이쿠코도 이 세계에 흡수되고 만다.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정의를 버리고 세상의 일부가 되길 선택하는 사람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표제작 <살인출산> 외에도 <트리플>, <청결한 결혼>, <여명>이 실려있다. 

각각 세 사람이 연애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상황, 커플 없는 가족,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가정되어 있다.

모두 현실을 비틀어 바라보게 하고, 결국 같은 질문을 하게 한다. 

당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정녕 옳은가? 확신하는가? 

세상에 널린 비합리성의 일부는 아닌가? 


<살인출산 - 무라타 사야카 소설집, 이영미 옮김/ 현대문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