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트의 별 - 우주 크기의 실마리를 푼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리비트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조지 존슨 지음, 김희준 옮김, 이명균 감수 / 궁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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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허블은 "거리가 증가하는 만큼 우리의 지식은 희미해진다"고 유창하게 웅변할 흔하지 않은 기회에 언급한 적이 있다. "결국 우리는 우리 망원경의 최종 한계인 희미한 경계에 도달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림자를 측정하고, 귀신 같은 측정 오류들 틈에서 비슷하게 실체가 불분명한 획기적인 이정표를 찾는다."

퀘이사의 거리를 확립하는 데는 허블 법칙뿐 아니라 아인슈타인 상대성의 전반적 틀이 필요하다. 거리 측정은 이론을 확인하는데 필요한 데이터를 얻는 수단으로 출발했다. 이제 측정에 쓰이는 잣대 자체가 테스트할 또 하나의 이론이 되었다." 187p


과학의 근본은 관찰이다. 무릇 대부분의 학문이 그렇겠지만, 특히 자연과학은 꾸준하고 정확한 관찰로 쌓인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학문이다.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얼마나 지루하고 고된 작업인가. 까치 발목에 인식표를 달아주든 선충의 길이를 재든 술집 바닥에 성냥개비를 떨어뜨려 원주율을 측정하든, 실험실 문턱을 잠시라도 밟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꾸준하고 정확한 관찰'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임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그 점에서는 천체학자들만큼 답답한 사람들도 없다.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이 다른 과학 분야에 혁명을 가져다주는 동안에도 근본적으로 천체학자들의 일은 바뀌지 않았다. 한번 둘러보고 오기엔 우주가 너무 넓기에, 최근 오천년간 천체학자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이중맹검법도 설문조사도 아닌 오직 천체 관측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발자욱도 떼지 않고 광막한 우주를 그려내는 천체학자야말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히파르코스가 삼각측량법으로 달의 거리를 측정하면서 어두운 밤의 커튼을 걷어낸 이래 천체학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별과 별 사이의 진공을 재어보려는 측정의 역사였다.

헨리에타 리비트는 우주의 끝을 측정하는 역사의 가장 극적인 시기인 20세기 초를 살았던 천체학자였다. 이 때 학계는 실체가 불분명한 몇몇 천체들이 우리 은하 내의 '나선 성운'인지 훨씬 멀리 떨어진 다른 '은하'인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그녀는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와 주기 사이의 비례관계를 찾아내면서 우주의 크기를 극적으로 넓히는 데 공헌했다. 논쟁의 대상이 된 천체들 내부에서 세페이드 변광성들이 발견되어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은 그 천체들이 수백만 광년 떨어진 은하임이 밝혀졌다. 리비트의 별이 우주를 은하수의 크기에서 현재의 크기로 넓히는데 일조한 것이다.


<리비트의 별>은 엄밀히 말해 헨리에타 리비트의 삶이 아닌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그 확장의 역사가 중심이 되는 책이다(리비트의 죽음 이후로 세 개의 장이 더 소개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저자는 관측 기술의 발달에 따라 우주가 어떻게 커졌고 우주가 인간 중심의 프레임을 어떻게 벗어나는지를 보여준다. 과학의 눈으로 본 세상이 결국 인간을 정의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디까지나 그 기초에는 관찰이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리비트의 별>은 과학의 인식론적 본질의 한 끝을 들춘다.


흠,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공 리비트는 우주의 크기에 관한 거대한 논쟁에 밀려 책에서 잊혀진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과학사를 다루는 대중서적으로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언제나 차별에 시달려야 했던(그리고 한 세기가 지났지만 STEM 분야에서 여전히 시달리고 있는) 여성 과학자의 삶을 조명했다는 데 있다. 작가가 찾아낸 그녀의 꿋꿋한 마지막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다.


"그녀가 죽기 1년 전 1920년에 인구 조사원이 린네가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파트에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이웃 중에는 교사, 캔디 회사 판매원, 은행원, 감사가 있었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자 리비트는 솔직하게 그러나 약간 도전적으로 "천문학자"라고 답했다." 175p


02/21에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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