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풍경 - 글자에 아로새긴 스물일곱 가지 세상
유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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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의 힘" 유지원, <글자풍경>


국민학교 시절 나는 글자를 표어와 포스터를 통해 배웠던 세대였다. "내가 보내는 위문편지, 국방력에 도움된다" 이런 표어로 글짓기 경진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국민학교 때 88올림픽 포스터를 만들며, 그림 하단에는 언제나 글을 써야했다. 글자에 대한 감각은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감각하고 있는 셈이었다. 


촛불 혁명을 지나며, 유독 산돌격동체와 활자공간의 꼬딕씨의 사용이 두드러지는 것을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이제는 40대 중반이 되어가는 이른바 'X세대'라는 내가 거쳐왔던 세대의 정서가 그토록 부정하고자 했던 국가주의적인 글자체로부터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세삼 감각하고 있던 터였다. 


'글자풍경'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러한 글자에 대한 감각들을 유지원이라는 글자 전문가의 시선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감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들고, 저자 유지원의 서문을 읽으며 첫 페이지에서 압도되었다. 어느 책방에 당도한 할아버지가 찾은 '법전'에서 저자는 '글'의 쓸모를 찾게 된다. 또한 '글'의 내용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잘 전달 할 수 있을것인가에 형식과 미학의 세계로 저자는 우리를 안내한다. 


"도달하기 어려운 지식과 정보˙이야기˙진실 들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공해서, 특히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촘촘하게 닿도록 하는 일. 꼭 '법'은 아니더라도, 외진 곳의 노인 한명이라도 필요한 지식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하고, 그로 인해 불편이나 억울함을 겪지 않도록 힘을 실어 주는 일. 비언어적인 메시지까지 잘 갈고 닦아서 사람들의 감정과 마음에 다가서는 일" (10p) 


조선의 왕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다. 그것은 중국의 글과 다른 말을 사용하고 있는 조선에 제 언어를 보급하기 위함이었고, 집현전 학자들과 더불어 '언어'를 창제했다. 한국은 이미 구텐베르크의 활자술 보다 앞선 1377년 금속활자를 사용했고, 조선 세종의 시대는 활자 사용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또한 중국의 한자가 남성의 언어였다면 여성을 중심으로 한글 사용이 보편화되었고, 궁녀들을 중심으로 '궁서체'가 발전했다. 언어의 창제 뿐만 아니라, 글자의 정치사에는 모두를 평등하게 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글자는 생명을 다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허균의 의학관련 글들에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고 있었기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고, 글자의 형태나 정확도가 생명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글자풍경>은 글자를 다루고 있기에 한 글자 글자를 예민하게 읽어 내려가야 했다. 문학적 수사가 아닌 내용의 전달이 예민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의 글자체와 구성이 편안함을 주고자 노력함을 알 수 있었고, 전체적으로 무게가 있지 않으면서도 한장 한장의 두께감이 느껴져 책을 읽는 손의 땀이 묻어 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구텐베르크의 활자는 기계를 사용하지만 한국은 직지심경 활자에 바로 조판 위에 등사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제지술의 발달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 역시 다른 책의 질감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왔다. 


사람이 글자를 쓴다는 행위를 통해 글자의 운동성과 물질성에 대한 과학적 사고를 요구한다는 것도 새로운 점이었다. 인간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에 몸의 운동성과 철학이 담겨 하나의 글자가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글자를 하나의 표현의 수단으로 감각하였지만, 이 책 <글자풍경>을 읽고 나서는 분명 글자를 하나의 보고 읽는 대상으로 부터 행동의 원천으로 인식을 확장해주었음을 이야기해야 겠다. 좀더 주체적인 글자의 힘을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의 미학들은 사회적 산물과 모두를 위한 접근성 차원에서만 이루어 진 것은 아니며, 예술적 상상과 전환을 거친 행동과 과학적 분석의 산물임을 인식하게 된다. 


글자의 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한다. 일방적인 표현이 아닌 소통의 그릇으로 글자를 읽는 풍경을 좀더 예민하게 감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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