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저자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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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감독님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이길보라 지음, 창비) 을 읽었습니다. 도서재고를 정리하는 와중에 호호 두손을 불면서 한장 한장 넘겨 본 것입니다.

책 소개에는 "우리의 공감은 훼손되었다"라는 선언적인 질문이 담겨있습니다. 이 책이 노력한다고 해왔지만, 그럼에도 '단순하고 납작한 착각'을 하는 무지한 나를 꾸짖는 책이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책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농인의 자녀로 태어나 몇가지 세계를 넘나들며 감각하는 저자는 그 세계를 이야기해냅니다. "장애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다"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저자 스스로 바로 넘나들었던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사실 농인도 청인도 그리고 수어라는 개념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작가의 말처럼 '어떤 몸을 중심으로 세계를 설계할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만든 세계로부터 나와 우리가 만드는 세, 고통에 공감한다는 단순하고 납작한 착각을 넘어설 때 비로소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소년의서에는 서가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장애, 여성, 소수자 등 책이 있습니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을 읽으며, 소년의서에 있는 책들을 만날 수 있어서 또한 반가웠습니다. <장애의 역사>(킴 닐슨 지음, 김승섭 옮김, 동아시아), <망명과 자긍심>(일라이 클레어 지음, 전혜은, 제이 옮김, 현실문화), <짐을 끄는 짐승들>(수나우라 테일러 지음, 이마즈유리, 장한길 옮김, 오월의봄),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유 지음, 국가인궈위원회 기획, 창비),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히미나 지음, 동아시아), <학교가는길>(김정인, 발달장애인 부모 7인 지음, 책풀), <보통이 아닌 날들>(미리내 지음, 양지연 옮김, 사계절), <여성, 정치를 하다>(장영은 지음, 민음사), <난민과 국민사이>(서경식 지음, 이규수, 임성모 옮김, 돌베개) 등입니다.

이렇게 많은 책이 공유되고 있음도 놀랍지만, 영화도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책의 시작에 이길보라 감독님은 소리없는 침묵의 세계에서 TV가 하나의 창이 되어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영화로, 그리고 문자로 기록된 책이라는 매체가 또 하나의 창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계와 세계를 잇는 책이라는 창을 통해 이 책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은 착각을 냉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를 더 열어젖힐 것을 제안합니다.

공감되고 밑줄 그은 대목들을 몇군데 공유하고 싶습니다.

""농인 때문 방법 없다"고 말하는 농인부모의 얼굴 표정을 떠올린다. 그건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유구한 억압과 차별의 역사 속에서 생겨난 생존전략이다.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음성 언어로 말할 수 있는 나는 얼굴 표정과 손을 움직여 말하는 부모를 경유하여 이 사회를 바라본다. 장애아동을 둔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보게 되었다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그들의 말처럼 그건 좀 괜찮은 일이다" -이길보라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창비) 92p

"나의 부노는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건강하다. 우을즐을 앓는 나의 파트너도 건강하다. 장애와 질병은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만들어진다. 어떤 고통은 사회적인 담론이 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누가 그것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당신과 나의 고통은 보다 적극적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여기서부터 다시 쓴다" 이길보라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창비), 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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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풍경 - 글자에 아로새긴 스물일곱 가지 세상
유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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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의 힘" 유지원, <글자풍경>


국민학교 시절 나는 글자를 표어와 포스터를 통해 배웠던 세대였다. "내가 보내는 위문편지, 국방력에 도움된다" 이런 표어로 글짓기 경진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국민학교 때 88올림픽 포스터를 만들며, 그림 하단에는 언제나 글을 써야했다. 글자에 대한 감각은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감각하고 있는 셈이었다. 


촛불 혁명을 지나며, 유독 산돌격동체와 활자공간의 꼬딕씨의 사용이 두드러지는 것을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이제는 40대 중반이 되어가는 이른바 'X세대'라는 내가 거쳐왔던 세대의 정서가 그토록 부정하고자 했던 국가주의적인 글자체로부터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세삼 감각하고 있던 터였다. 


'글자풍경'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러한 글자에 대한 감각들을 유지원이라는 글자 전문가의 시선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감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들고, 저자 유지원의 서문을 읽으며 첫 페이지에서 압도되었다. 어느 책방에 당도한 할아버지가 찾은 '법전'에서 저자는 '글'의 쓸모를 찾게 된다. 또한 '글'의 내용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잘 전달 할 수 있을것인가에 형식과 미학의 세계로 저자는 우리를 안내한다. 


"도달하기 어려운 지식과 정보˙이야기˙진실 들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공해서, 특히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촘촘하게 닿도록 하는 일. 꼭 '법'은 아니더라도, 외진 곳의 노인 한명이라도 필요한 지식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하고, 그로 인해 불편이나 억울함을 겪지 않도록 힘을 실어 주는 일. 비언어적인 메시지까지 잘 갈고 닦아서 사람들의 감정과 마음에 다가서는 일" (10p) 


조선의 왕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다. 그것은 중국의 글과 다른 말을 사용하고 있는 조선에 제 언어를 보급하기 위함이었고, 집현전 학자들과 더불어 '언어'를 창제했다. 한국은 이미 구텐베르크의 활자술 보다 앞선 1377년 금속활자를 사용했고, 조선 세종의 시대는 활자 사용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또한 중국의 한자가 남성의 언어였다면 여성을 중심으로 한글 사용이 보편화되었고, 궁녀들을 중심으로 '궁서체'가 발전했다. 언어의 창제 뿐만 아니라, 글자의 정치사에는 모두를 평등하게 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글자는 생명을 다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허균의 의학관련 글들에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고 있었기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고, 글자의 형태나 정확도가 생명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글자풍경>은 글자를 다루고 있기에 한 글자 글자를 예민하게 읽어 내려가야 했다. 문학적 수사가 아닌 내용의 전달이 예민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의 글자체와 구성이 편안함을 주고자 노력함을 알 수 있었고, 전체적으로 무게가 있지 않으면서도 한장 한장의 두께감이 느껴져 책을 읽는 손의 땀이 묻어 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구텐베르크의 활자는 기계를 사용하지만 한국은 직지심경 활자에 바로 조판 위에 등사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제지술의 발달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 역시 다른 책의 질감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왔다. 


사람이 글자를 쓴다는 행위를 통해 글자의 운동성과 물질성에 대한 과학적 사고를 요구한다는 것도 새로운 점이었다. 인간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에 몸의 운동성과 철학이 담겨 하나의 글자가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글자를 하나의 표현의 수단으로 감각하였지만, 이 책 <글자풍경>을 읽고 나서는 분명 글자를 하나의 보고 읽는 대상으로 부터 행동의 원천으로 인식을 확장해주었음을 이야기해야 겠다. 좀더 주체적인 글자의 힘을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의 미학들은 사회적 산물과 모두를 위한 접근성 차원에서만 이루어 진 것은 아니며, 예술적 상상과 전환을 거친 행동과 과학적 분석의 산물임을 인식하게 된다. 


글자의 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한다. 일방적인 표현이 아닌 소통의 그릇으로 글자를 읽는 풍경을 좀더 예민하게 감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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