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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어록 - 인간과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문장들 ㅣ 사기 (민음사)
김원중 지음 / 민음사 / 2020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소설체(小說體)로 집필한 글을 읽다보면 이야기에 몰입하여 정작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원문 속의 문장과 핵심을 놓치기 쉽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원본 『사기』가 총 130권 5부로 구성된 만큼 그 내용이 방대하여 수많은 『사기』 번역본을 읽다 보면 분명 있어야 할 내용이 온데 간데 사라져 버린 경우도 허다하며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사기』 완벽본을 모두 탐독하는 것이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전(古典)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원문을 충실하게 번역한 내용 뿐만 아니라 그 글을 작성한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작가가 처한 상황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중국 고전 분야에 대해서 전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명품 번역서를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 중국 고전의 경우 저자의 프로필을 유심히 보는데 해당 정식으로 오랜 시간 공부한 저자의 글을 읽거나 아예 중국 현지에서 정평이 있는 학자의 서적을 읽어 보는게 최상의 선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국 역사를 성찰한 최고의 서적으로 평가 받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를 오래 전에 읽었습니다만 완전한 내용 모두가 아니라 선별 발췌한 내역이란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사마천의 『사기』를 전문적으로 강의하시는 김중원 교수님의 『사기어록(史記語錄)』을 통해서 사마천의 『사기』 속에 담겨진 200여개의 명구를 다시 읽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사기』 역사서와는 달리 이번에 민음사에서 출판한 『사기어록』은 다음과 같은 특정이 엿보였습니다.

첫번째로 『사기어록』에 담겨져 있는 200개의 명언은 점층적인 구성 즉 자신 → 타인 → 세상 → 시대로 확대되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흔히 고서를 발췌한 어록의 경우 개별 내용이 단편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이 서적은, 사기의 고사 내용을 (A) 자아성찰(自我省察) - 나를 다스리다, (B) 역지사지(易地思之) - 타인을 이해하다, (C) 여세추이(與世推移) - 세상과 더불어 살다, (D) 수신제가(修身齊家) - 통치의 기술과 같은 맥락으로 묶어 구성해 놓았습니다.

두 번째로 『사기어록(史記語錄)』의 본문은 (1) 요약과 해석, (2) 원문과 출저와 더불어 (3) 상세 해설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약된 지면 상에서 최대한 간략한 서술을 통해 사마천이 원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사상을 끄집어 내려 고심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저의 경우 사마천의 『사기』 내용 중에서도 사마천과 비슷한 입장 즉 발분저술(發憤著述 : 고난에 직면했을 때 정당하게 울분을 표출하는 방법)의 정신으로 인생 역작을 저술한 중취독성(衆醉獨醒 : 모두 취했는데 나홀로 깨어있음)의 시인 굴원(屈原)의 이야기를 특히나 관심있게 정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기어록』에 언급된 굴원의 『가생열전(賈生列傳)』을 예로 들면 아래와 같이 원작에서 사마천이 말하고 싶어하는 이야기 내용을 최대한 잘 살려서 전달해 놓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예컨데 본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아래와 같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요약] 곤궁하면 근본을 돌아본다.
[해석] 무릇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이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런 까닭에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자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 굴원은 도리를 바르게 행동하고, 충성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여 군주를 섬겼지만, 참소하는 사람의 이간질로 곤궁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받는다면,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굴원이 『이소(離騷)』를 지은 것은 대개 원망스러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원문] 夫天者, 人之始也, 父母者, 人之本也.
人窮則反本, 故勞苦倦極, 未嘗不呼天也;
疾痛慘怛, 未嘗不呼父母也.
屈平正道直行, 竭忠盡智以事其君,
讒人閒之, 可謂窮矣, 信而見疑,
忠而被謗, 能無怨乎, 屈平之作離騷,
蓋自怨生也.
[출저]
-『굴원 가생열전』
[상세 해설]
소극적인 엘리트로 처세에 능하지 못했던 비운의 정치가 굴원(屈原)이 억울하게 참소를 받아 쫓겨난 후 근심하고 깊이 사색에 잠겨 『이소(離騷)』를 지은 것을 사마천이 평가한 것이다. 굴원은 온 지혜를 다하여 군주를 섬겼다. 하지만 결국 주변의 참소를 받아 벼슬에서 쫓겨났다. 쫓겨난 굴원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방랑하다가 원망의 마음을 바깥으로 토해 낸 것이 저 유명한 『이소』이다. 그가 작품을 통해서 자신이 살아온 나날을 되돌아 보고자 한 것은 주변에 대한 원망이 일차적인 것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에 대한 격정의 토로가 아니겠는가? 어려움을 겪은 뒤에 행동이 단정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사람은 절망을 겪은 뒤에 깊은 사유를 하고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다. 어차피 인간의 본성이란 과거의 은의 혹은 은정보다 원한과 원망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사마천의 경우 기원전 110년 부친 사마담의 사후에 태사령의 직에 올라 부친 유언에 따라 역사서의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흉노에게 패퇴한 명장 이릉(李陵)을 단죄하는 한무제 앞에서 모든 중신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 사마천이 홀로 이릉을 변호하고 나서다 사형을 언도받게 되고 이를 사면받기 위해서 생식기를 제거당는 형벌인 궁형을 받고 환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후 한무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에 올라 불멸의 역사서인 『사기』를 집필하게 되었는데 그와 비슷한 처지인 굴원이 집필한 『이소』에 대해 논평한 것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울분을 담은 것이었다고 봅니다.

모쪼록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소설체(小說體)로 읽은 독자라면 민음사의 『사기어록(史記語錄)』에서 사마천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200개의 명언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이를 통해 자아(自我)를 성찰(省察)함은 물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타인을 이해하며, 여세추이(與世推移) 관점에서 세상과 더불어 살면서, 통치의 기술을 익혀 수신제가(修身齊家)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