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한국사회 - 단지 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박인석 지음 / 현암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거의 평생을 아파트에 살았지만 아파트를 싫어했다. 높디 높아 산이나 하늘을 가리고, 주변 마을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틀에 찍은 듯 동서로 길쭉한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들은, 아무리 좋게 봐주고 싶어도 답답하고 지저분하단 생각이 든다.
건축에서도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한 조상을 뒀으면서, 왜 이런 못난 구조물을 대량 생산하고, 그 안에 살지 못해 안달일까.

<아파트 한국사회>에 따르면 집을 사도 아파트를 사려는 건 일단 돈 때문이다. 오르는 집값으로 앉아서 돈 버는 신화가 30년 넘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정부에선 1960-70년대에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할 주거단지를 대량생산했다. 그 과정에서 투기를 방관했고, 오랜 세월 집값 폭등에 일조했다. 박근혜 정부도 집을 사도록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정책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집값이 오르면 좋을 사람은 집이 두채 이상인 사람이다. 올랐을 때 처분할 수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우리나라에 6%를 좀 넘는다고 한다.
집값이 오르면 임대료도 오르고, 물건 값도 덩달아 오르게 된다. 결국 집값은 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적어도 94% 의 사람들은 집을 사거나 더 큰 집으로 옮기기 힘들어지고, 물가는 물가대로 오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은 정부에서 알리기를 꺼려한다. 인구가 적은 지역까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사이 대형 건축회사만 돈을 벌고 집이나 작은 건물을 짓는 중소기업은 거의 사장되었다.

그 외에도 작가는 다방면으로 아파트의 무엇이 문제인지 일반인들에게 정리해준다. 그 중 와닿는 다섯 꼭지만 뽑아보았다.

첫번째는 ˝아파트가 아닌 아파트 단지가 문제˝라는 것이다.
획일적이고 주변과 어울어지지 않거나 너무 높은 모양새가 가장 큰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지, 이런 생각은 미처 못했다.
단지가 문제인 이유는 마을은 생태계처럼 주변 발전에 따라 주거지도 상점이나 오피스로 변화하기 마련인 반면 한번 대단지가 들어선 곳은 개인 마음대로 용도 변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지가 들어서면 결국 재건축 외엔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지은이는 단지를 해체하거나 잘게 쪼개기, 그리고 높은 담장 없애기, 저층부에 상가나 정원, 별채 만들기 등을 통해 외부와 단절되어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어울리는 생태계의 일부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두번째는 ˝꼭 높지 않아도 낮은 아파트로 용적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파트가 높은 이유는 국가에서 조성해야 할 공원이나 녹지를 만들지 않아 아파트 단지 안에서 찾게 되었다. 그것은 개개인의 돈을 들여 만든 것이 되는 셈이다.

세번째는 ˝건설사의 베란다 악용˝이다.
베란다는 전용면적으로 치지 않아서 값을 매기지 않는다. 이를 이용해 건설사는 좀 더 양옆으로 길쭉한 설계를 하면서 베란다를 확장하게끔 유도한다. 확장비도 따로 받는다. 확장하면 20평형대는 30평형대로 변신한다. 하지만 겉으로는 20평형대이므로 20평형대에 맞는 세금을 낸다. 건설사가 고객이 세금을 속여 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럴거면 처음부터 30평형대로 설계했어야 한다.

네번째는 ˝햇볕 잘 드는 4bey 구조도 고층화하는데 한몫한다˝는 것이다. 개개인에겐 그게 선호되는 구조이니까. 그럼 유럽이나 일본은 왜 낮고 아름다운 아파트가 많을까? 그건 아파트가 공공임대주택으로 건설됐기 때문이다. 146p 구매자가 사주어야만 지을수 있는게 아니었으므로..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졌다.

다섯번째는 ˝서울에서 제주까지 평면도가 다 똑같다˝는 것이다. 청약예금이 규모(85m2, 102m2 등)별로 정해져 있어 그 규모에 근접하는 평수들 몇가지로 수렴되었다. 그냥 제곱미터 별 얼마,로 정했다면 특정 크기로 통일되는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외 획일적인 남향 아파트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기후에 가장 알맞는 설계라 어쩔 수 없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미 아파트 공화국이 된 현실, 특히 한번 단지화 되어버린 곳은 변화가 어렵고 세월이 흐른 뒤 재건축밖에 할 수 없는 땅이라는 말이 참 암담하다. 그나마 재건축도 하고 나서 이익이 남아야 주민들이 하려고 할 것인데, 이미 고층화, 조밀화 된 아파트는 재건축한다고 이윤이 나지 않아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입장에선 녹물과 집 뒤틀림으로 살기 불편하기 짝이 없다. 단독주택이라면 고쳐 살기라도 하지 이건 내 집만 고친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앞으로 인구는 줄고 주택공급률은 올라, 재건축은 더 요원하게 될 것이다. 일단 개인입장으로선 그런 전망을 알고 집을 구할 수 밖에 없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