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 소중한 것을 지키는 삶에 대하여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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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사회주의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속 사회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첫 문장 : 강사님, 차별과 착취가 없는 평등한 세상은 언제 가능할까요?




언젠가는 삼성 사단에서의 (임승수의 자본론 강의)를 기대하는 독자로서, 저자 임승수만큼이나 (어쩌면 더 많이?)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독자로서, 매우 기대했던 그의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을 읽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의 책은 아주 쉽게 요점을 파악하고 현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훌륭한 글쓰기 능력이 포인트다. 적절히 재미있는 그의 사적 경험들, 합리적이라 생각되는 그의 사고를 접할 때마다 그의 생각이 담겨있는 그의 책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재주가 그에게 있다.

그의 모든 책을 보았으므로, 당연히 이번 수오서재에서 발행된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도 보아야했다. 역시나 아주 빠르고 쉽게 읽어낼 수 있었고 나도 잡혀가고 싶다는 겁 없는 반항심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잡아가 봐라! 자본주의의 악마들이여!






내가 태어났을 때에는

이미, 누군가 모두 차지하고 난 후였다

나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땅도 집도 모두 소유해 버린, 작금의 대한민국은 조만간 산소마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공포감으로 자본주의의 불편한 진실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 누군가는 먼저 차지한 조상들의 노고?(진정한 노고인지는 모르겠으나....) 착취?로 집도 땅도 가지고 있지만,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도 내 소유의 땅과 집은 사실상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첫 문장의 내용처럼, 차별과 착취는 평등과 자유를 부르짖는 자본주의가 과연 공평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법과 질서는 과연 누구에게서 만들어지고 누구에 의해 추앙받는가. 내가 사회주의 시스템에 살고 있으면서도 사회주의를 비난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은 누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가?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난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산소를 들이마시고, 태양을 만끽하고 바람과 비를 누구나 만날 수 있듯이 말이다. 자본주의는 그러나 그런 자연이 내어주는 것조차 소유해 버린다. '소유권'이라는 사적 권한과 권력은 사실상 불공평한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는 있는 것일까. 사회주의라는 말의 어감은 왠지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를 혼합시킨 결정체로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어느 책에선가 미국의 한 보수정권 인사가 한 말이 떠오른다. 부유한 사람들이 복지를 반대하는 이유는 인간은 누구에게나 노력하고 성취함에 따른 만족감을 느낄 자유가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런 자유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 복지를 반대하는 것이라던.......... 한참이 지났지만 잊히지 않는 이 어이없는 말이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모두의 의견은 아니겠지만 자본가들이 전반적으로 복지에 인색한 건 사실이기에 그들이 자신들의 사적 소유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자본가들이 싫어하는 억지 복지 혜택을 받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자본주의 보수당을 옹호하는 근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상교육, 의료보험 적용, 국공립 어린이집, 임대주택....... 등등,,, 이런 시스템을 잊고 있었다면 상기하자. 우리는 이미 사회주의 시스템을 만끽하고 있다는 것을. 직업에 따라 소득차가 매우 심하면서도 버스비는 동일하다는 것을. 재산을 소유한 정도와 무관하게 급식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과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시스템은 절대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을. 많이 가진 자들에게서 더욱 많은 복지에 가능한 세금을 깎아주고 서민들의 전기세와 교통비와 모든 비용이 오르는 현실과 이 현실을 감내할 수 없는 소득에 대한 불편한 통장 잔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노동력,

안녕하신가요?

열심히 일해도 그에 따른 보상의 차등이 심한 자본주의에서 와인 한 잔 마시는 것조차 통장 잔고를 아쉬워해야 하는 서민이라면 '혁명'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싸구려 와인 한 잔도 편하게 마실 수 없는 현실에서도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서민이라면 이 책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당신의 노동은 누구를 위해 이루어지는가. 작가 임승수는 말했다. -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꼭 내가 거둘 필요는 없다. 후대가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씨를 뿌릴 이유가 충분하다. -라고. 세상이 쉽게 변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나는 아마도 자본주의에 태어나, 자본주의에서 생을 마감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후대들은 좀 더 공정하고 자유로운 자연을 만끽하고 와인을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세상에서 살길 희망해 본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경제활동의 내용과 범위가 급속도로 바뀌는 21세기. 나의 노동력은 나의 소비력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맞다. 내 밥그릇 지키기 위해 코로나 시국에 파업하는 의료진도 있고, 내 자리 지키기 위해 권력 앞에 자신의 도덕과 영혼을 저당잡히는 고위 공직자도 있다. 그들이 너무 가엽게 여겨지기에 그들의 영혼을 이제는 좀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

그들은 국민 개인들에 의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 개인 개인의 사고가 바로 서고 그 사고가 모아지면 우리 세상은 가여운 영혼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며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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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 스티븐 핑커의 역사 이론 및 폭력 이론에 대한 18가지 반박
필립 드와이어.마크 S. 미칼레 엮음, 김영서 옮김 / 책과함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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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시기는 얼마나 폭력적이었나? 가 아니라

어떻게 폭력적이었나 가 문제다.

첫 문장 : 스티븐 핑커의 2011년 저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역사에서 폭력의 감소와 그 원인>의

엄청난 상업적 성공은 학계의 많은 이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인문 도서를 대할 때의 자세랄까, 한 번 더 느끼지만 누군가의 견해가 기록된 글을 볼 때는 항상 비판이라는 안경을 착용해야 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통계나 이론)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는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그 판단 기준이라는 것은 저자가 옮겨놓은 통계나 근거가 될만한 자료에서 취득하기 마련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누구나 만족하고 누구나 호평하는 통계에 의한, 이러저러한 근거에 의한 특정인의 기록물을 보면서 왜 나는 공감할 수 없는가. - 이런 생각이 드는 인문서가 꽤 있었다.- 한국 독자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스티븐 핑커의 저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지금 다시 계몽>을 대놓고 반박하는 흥미로운 도서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를 읽게 되면서 그간 공감하지 못했던 폭력에 관한 이러저러한 나의 생각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보기로 했다.

첫 문장에 나와있듯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많은 학계(사회 과학 전 분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에 더해 역사 학자이자, 폭력 연구센터 설립자인 필립 드와이어는 다양한 분야의 역사 학자들과 협력하여 본격적으로 스티븐 핑커의 저술에 반박하기 위한 최초의 도서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를 세상에 내놓았다. 17인의 저자가 18가지의 주제를 서로 도맡아 스티븐 핑커 1인의 저술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설명한다. 그들의 역사적 근거는 나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소한 당신도

나만큼 무지하다는 것 정도는 고백하라


폭력은 일탈 현상이지 결코 자본주의가 가차 없이 전 지구적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징후가 아니다 (P43)라는 핑커의 주장이 매우 당혹스럽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긍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인류 발전이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는 장점의 이면에 폭력 외 부작용을 함께 가져온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핑커가 생각하는 폭력은 무엇인가? 살인, 살해, 전쟁 등 사망의 결론만이 폭력인 것인가. 핑커가 옹호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수준이 높아진 작금의 살인 없는 무전쟁 시대가 과연 폭력 없는 안녕한 세상인 것인지에 대해 부정할 사람들은 너무나 많을 것임에도 핑커의 논리는 매우 타당하지도 않을뿐더러, 폭력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마저 무지에 의한 오류로 해석되기까지 한다.

폭력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어 본 경험이 없는 나에게 폭력이라는 단어는 '때리는 것, 부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폭력이란 '막말', '학교 내 따돌림', '인종차별', '누군가의 시선', '악성 댓글', 심지어는 '보고 싶지 않은 것,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을 보고 듣는 것 자체가 폭력일 수 있다. 이처럼 과거(역사)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폭력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새로운 방식과 모습으로 만들어지고 증가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피에서 눈물로 바뀐 폭력 역시 다루어지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핑커는 자본주의를 옹호함에 전력을 다하는 듯 보이고,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일반인이 폭력을 그저 일탈로 판단하였다.

이 책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대한 반박은 결과적으로 핑커의 저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생각해야 할 점! 폭력이 정말로 감소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더불어 핑커가 하지 못했던 폭력의 감소를 위한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비논리적인 그의 저술을 비판하는 시각과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해결책을 마련함으로써 폭력 감소한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제목부터 유사한 이 두 도서가 너무나 흥미로웠다. 우리는 정도와 고통이 다른 폭력 속에 살고 있다. 어쩌면 오늘도 새로운 방식의 폭력이 만들어지고 성장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과 함께에서 독자들에게 선보인 <우리 본성이 악한 천사>에 더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실려있는 자료(통계)와 내용들이 당시 많이 불편했었기 때문이다.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각 장의 논리와 반박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내용을 모두 실을 수는 없지만, 결국 스티븐 핑커의 주장은 틀렸다는 것이다.

우리의 본성에 천사가 있다면 그 천사는 악한지, 선한지 누구라도 비평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유를(누군가의 이론을 무조건적 맹신하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이다) 누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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